판타지: 8화 불타는 베롯성

별을 잇는 다리

by 구름과벗

8화 불타는 베롯성

오리온 별자리가 눈부시게 빛나던 밤, 말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자신이 선택한 운명을 되새겼다.


‘나는 북아루 왕이 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겠다! 나라를 통일하여 느랏의 현신이라 불릴 것이다!’


저 빛나는 별들처럼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자 그는 베롯성을 함락하기 위한 마지막 준비에 착수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험준한 산맥을 20여명의 용막의 최정예 요원들은 쉬지 않고 달렸다. 그들은 목이 타들어가는 듯 갈증을 느끼면서도 10일 동안 끝없이 전진해 마침내 베롯성의 동쪽 게이트에 다다랐다. 그곳은 험준한 산과 연결되어 있어 오랫동안 폐쇄된 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문이었다.


그들은 숨죽이며 적의 경계를 파악한 후, 성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방어가 되어있지 않은 그곳에서 횃불이 밝혀지고, 이내 성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에 맞추어 강을 건너기 위해 말흔의 병사들이 작은 배와 나무 판자를 사용하여 만든 부교를 강에 띄웠다. 물 위에 떠 있는 다리는 물살에 흔들리면서도 병사들이 하나씩 건너기 시작했다. 병사들이 위치를 확보하자 공성추가 다리를 건넜다.


안팎으로 공세가 이어졌지만 베롯성의 수비는 단단했다. 하지만 철문으로 된 정문이 공성추의 공격으로 마침내 부서졌다. 베롯성 안으로 2천의 호국대가 선두에 서서 용감하게 침투했다. 그들의 기개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1만의 베롯성 병사들과 3만의 말흔 병사들이 치열하게 충돌했다. 칼과 창이 부딪히는 순간, 날카로운 금속 소리가 전장을 가득 채웠다. 전투의 소음과 피비린내 속에서도, 말흔의 마음은 단 하나의 목표에 집중되어 있었다. 피와 땀이 뒤섞인 전장 속에서, 말흔의 병사들은 용맹하게 싸웠다.


두려움에 휩싸인 왕과 왕비는 용맹한 장수에게 명하여 카이란을 데리고 유르 왕성으로 급하게 달아나게 했다. 그리고 엘리온을 키찰에 태운 채, 급히 모아산 쪽으로 달아났다.


두 아들을 분산시킨 건, 만일의 경우 한 아이가 죽더라도 다른 아이가 대를 이어갈 수 있게 함이었다.


키찰을 타고 달아나는 왕과 왕비의 얼굴에는 공포와 긴박함이 가득했다.



말흔은 자기 진영, 높은 망루에서 망원경으로 이를 보고 있었다.


“랑크! 지금이야. 저들을 뒤쫓아라. 죽여도 좋아!”


말흔과 랑크는 각자 자신이 탄 바르샤로, 베롯성을 벗어나 달아나는 두 마리의 키찰을 뒤쫓기 시작했다.


500살이 넘은 말흔의 바르샤, 바쿠는 날개가 크고 힘이 엄청나게 강했다. 그것은 말흔을 태우고 밤하늘을 힘차게 날아갔다. 저 멀리서 베롯성이 불타고 있었다. 자삿왕은 왕만이 탈 수 있는 키찰, 막스를 타고 달아나는 중이었다. 바쿠가 점차 따라붙자 막스가 고개를 뒤로 돌려 그것을 쳐다봤다.


“워워. 막스… 진정해… 뒤를 보지 마. 전력으로 앞으로 달려!!”


왕은 손을 뻗어 막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키려 했다. 막스는 천년을 살고 있는 남아루 최고의 키찰이다.


용맹하고 강인한 그것은 황금 안장에 주군을 태우고 얼굴에는 뿔 달린 황금 면갑을 착용하고 있었다. 안장에 좌우로 달려있는 푸른 리본에는 왕의 것임을 나타내는 아루국 문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예상보다 말흔의 바쿠가 빠르게 접근해왔다. 순식간에 다가온 그것이 입에서 불을 뿜었다. 막스는 뜨거운 열기가 뒤에서 느껴지자 괴성을 지르며 날개를 돌려 바쿠와 마주섰다.


자삿왕은 칼을 뽑고, 그에 맞추어 말흔도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마주 칼을 뽑았다.


막스는 바쿠의 목을 노리고 용맹하게 달려들었다. 엄청나게 큰 송곳니로 목을 물어 그것을 죽이려고 했다. 위기를 느낀 바쿠가 몸을 비틀었다. 그 여파로 말흔과 자삿왕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 순간, 말흔의 칼이 허공을 가르며 왕을 향했다. 붉은 선이 그어지는 순간, 왕의 몸이 뒤로 흔들렸다. 피가 허공에 흩날리며, 막스의 울부짖음이 전장을 가득 채웠다.


막스는 분노하며 말흔에게 돌진했다. 하지만 바쿠가 꼬리로 얼굴을 세차게 후려쳤다. 막스가 정통으로 얼굴을 맞고 휘청거릴 때 바쿠가 그것의 얼굴에 불을 뿜었다. 막스는 눈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채 주인과 함께 추락했다.



한편 랑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앞서가는 실리의 키찰을 주시했다.


“반드시 잡겠다!!”


그는 스스로 다짐하며 바르샤의 등을 두드렸다. 바르샤는 네 개의 날개를 힘차게 펄럭이며 속도를 높였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지만 랑크의 눈은 목표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키우센! 힘을 내!!”


왕비 실리가 탄 키찰은 남아루에서 왕이 탄 막스와 더불어 제일 빠르고 힘이 센 것으로 대대로 왕비가 타는 것이었다. 그것의 이름은 키우센이었다. 키우센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날았다.


드디어 모아산 신전이 보였다. 엘리온은 울음소리를 그치지 않고 있었는데 차가운 밤바람과 흔들리는 키우센의 등 위에서 공포를 느꼈기 때문이다.


키우센이 옴니아 신전 입구에 다다르자 그곳을 지키는 병사들이 석궁에 큰 화살을 장전했다. 그리고 곧바로 랑크가 타고 있는 바르샤를 향해 날카로운 촉이 있는 쇠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곧바로 날아가 바르샤의 얼굴을 관통했다.


“으헉…!!”


랑크는 바르샤가 죽어 땅으로 급강하하자 숲의 나무들 사이로 뛰어내렸다. 풍성한 나뭇잎들이 낙하하는 랑크의 속도를 줄여주었다. 랑크는 땅에 떨어졌고 이내 두 다리가 부러졌다.


왕을 죽인 후 랑크를 도우러 날아오던 말흔은 신전 앞 10명의 병사들이 랑크의 바르샤를 죽이는 것을 본 후, 땅으로 내려와 랑크를 태우고는 베롯성으로 돌아갔다.




“베버! 왕께선 어떻게 되셨지? 지금쯤 도착하실 시간인데….”


실리는 아들을 신녀에게 맡기고는 제사장 베버에게 급하게 물었다. 왕비의 얼굴은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가득했고 머릿결이 흩어져 있었다. 느랏의 돌 앞에서 신전의 모든 이가 모인 채, 왕비와 아들을 바라봤다.


“라디님, 잘 모르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곧 도착하실 겁니다.”


베버 또한 멀리서 불타고 있는 베롯성을 보며 두려움에 휩싸여 있었다. 베롯성이 함락되면 성에서 가까운 이 곳 모아산도 적의 수중에 떨어질 것은 자명했다.


느랏이 잠든 신성하고 성스러운 신전이 북아루 수중에 들어간다면 백성들이 크게 동요할 것은 자명했다. 그 때 병사들이 그들에게 급히 다가왔다. 병사들의 수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라디님, 전령에 의하면 베롯성이 적의 수중에 들어갔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뭐란 말이냐? 어서 말해 보라!”


“영원하신 라께서 말흔의 칼에 맞으셨답니다. 시신은 적의 병사들이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아… ….”


실리는 병사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아 몸을 휘청거리다 기절했다. 왕비가 넘어지며 곁에서 아기를 품에 안고 있던 신녀를 밀쳤다. 그녀는 중심을 못 잡고 옆으로 넘어지며 아기를 놓쳤다.


엘리온은 느랏의 돌 위에 떨어졌는데 그 충격으로 크게 울기 시작했다. 엘리온의 울음소리가 돌 위에서 메아리치자, 그 순간 공기가 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돌이 흔들리며 듣기가 힘들만큼 괴이한 소리를 냈다.

끼이이… 끼잉… 끼이이이….


돌이 빛에 휩싸였다. 아기도 빛 속에 잠겼다.


“라디님! 아기가…!”


신녀가 손을 뻗었지만, 엘리온의 모습이 완전히 빛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돌은 다시 고요히 식어 갔다. 신전 안에는 깊은 적막이 흘렀다. 그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아이도, 빛도, 흔적도 없이.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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