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끄러운 K-컬처는 어찌하면 좋을까요?
살면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어느 나라보다 빨리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났으며,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으며,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한국민으로 최근에 본 다큐 영화 한 편, ‘케이넘버’.
112분의 러닝타임 내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고, 외국 양부모에 입양되어 성장한, 우리와 똑같이 생겼으나 우리말은 못하는 성인 해외 입양인들이 친부모를 찾겠다고 우리나라 방방곡곡을 뒤지고 다니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웠고, 우리 국가 기관의 주도로 수출된(?) 이들에게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분노했다.
몇 년 전부터 해외 입양인들이 뿌리를 찾겠다고 한국을 방문하고 있고, 여러 기관의 도움으로 친부모와 상봉했다는 꿈과 같은 소식이 매스컴에 소개되었을 때, 나의 어린 시절 경험이 떠올랐다. 1970년대 초반 우리 집에서도 입양 보낼 아기를 기른 적이 있었다. 딸만 넷을 낳았다고 아버지를 빼앗긴 어머니가 어찌어찌하여 어렵게 아들을 얻은 것은 1971년. 이 아들이 채 100일도 넘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어머니는 그 큰 상심을 딛고 다시 살아오셨는데, 이즈음 우리 집에서는 해외 입양 갈 아기를 잠시 위탁받아 키우게 되었다. 이 위탁 양육 사업은 그 당시 홀트아동복지회(이하 홀트)에서 주관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위탁모 역할을 하셨는데, 그렇게 아기 한 명을 돌보면서 받은 돈으로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해결하셨다. 너무 오래전 일이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아기가 남자였다는 것, 네덜란드(정확하지는 않음)로 입양 갈 예정이었다는 것, 거의 핏덩이의 아기를 서너 달만 기른 후 보냈다는 것, 그 당시 종이 기저귀는 없었지만 아동에게 필요한 물품은 거의 다 홀트에서 가져다주었는데, 이 중에서 아기가 먹을 분유를 어머니의 친자식, 그러니까 나와 내 형제들에게 일부 ‘삥땅’하여 먹이기도 하셨다. 일정 기간 돌본 후 아기를 홀트로 보낸 후 어머니는 그 아기에게 덜 먹이고 남은 분유통을 잡고 우셨다는 것 등이 기억된다. 두 명 정도를 길렀던 것 같고, 아기를 돌려보낸 후에는 몇 달 동안 기른 정 때문에 온 식구가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집에서 길러진 그 아동은 지금 55세의 성인이 되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위탁모의 사진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는데, 나는 잠깐 긴장했다. 우리 어머니 사진일까 봐.
‘케이넘버’는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입양 보내는 아기들에게 붙여진 일련번호이고, 이 해외 입양인들이 자신들이 있었을 곳으로 추정되는 보육원 등의 시설에서 찾아낸 서류 아래에 붙어 있는 번호를 뜻한다. 그 영화의 내용에도 나오지만 해외 입양을 보내는 기관이 홀트 외에도 두어 군데 더 있었다.
갖가지 사연으로 친부모에 의해 양육되지 못한 아동들에 대한 해외 입양은 당사자인 아동의 인권이 계속적으로 침해되고 있다. 국내 단기 위탁모에 의한 위탁 기간 중의 관리 감독 소홀로 인한 피해, 비행기 이동 시 아동 동반 여행에 무지한 사람에 의해 수하물처럼 이동되면서 받은 피해. 기계약된 해외 양육 부모에 의한 파양 피해, 성장한 입양인들이 자신의 친부모를 찾겠다고 했을 때 우리 정부의 비협조적 태도 등, 이들에 대한 인권 침해 사례는 복합적이고 다중적이다. 입에 올리기조차 두려운 말이지만, 이들이 해외에서 장기가 적출된다는 소문이 돈 적도 있다.
해외 입양은 갖가지 사연으로 친부모와 생이별을 당한 아기들을 살리기 위한 대책의 하나였으나, 이 일에는 굉장한 이권이 걸려 있었고 제5 공화국 시절에는 최고권력자의 형님이 직접 이 일에 관여하고 있어서, 제발 형님이 이 ‘고아수출’하는 사업에서 손을 떼게 하라는 야당의 정치 압력도 거세었었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해외 입양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공식 통계로만 17만 명, 비공식까지 고려할 때 20만 명 이상의 우리나라 아동들이 해외로 입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고아 수출국 1위의 지위를 유지해 왔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국가 위신이 추락할 수 있다고 하여 국제 입양을 잠시 중단했으나, 그 후에 다시 재개되어, 2020년에도 해외로 입양 보낸 어린이의 숫자가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세계 3위라고 한다.
‘케이 드라마, 케이 팝’라는 용어가 일반명사가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며, 이제 ‘케이 방역, 케이 민주주의’라는 용어도 낯설지 않을 정도로 ‘케이 컬처’가 세계적으로 당당한 위상을 점하고 있는 이 시점에 아직도 ‘고아수출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혈연을 중시하는 관습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며, 아울러 그 해결책도 다양하게 찾아져야 하지만 국가 주도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스웨덴에 지속적인 입양 어린이 수요가 있을 때, 이런 말이 있었다고 한다. “국가는 국민들의 입양 요구를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 국가에 입양되어 오는 우리나라 아동들은 모두 전라도에서만 왔는데, 이를 두고 이 영화에서는 아동들의 해외 입양 시스템이 우리나라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것과 같은 시스템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여러 정부에 걸쳐서 ‘고아수출’을 하면서 아동의 인권을 유린하고 부당하게 막대한 이익을 취한 사람 및 조직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그들은 지금도 권력을 쥐고 있거나 권력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국제 입양으로 국가를 이동하는 아동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인 ‘헤이그국제아동입양협약’에 서명은 하였으나,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정부를 거쳐오는 동안 아직도 국회 비준, 정식 가입은 되지 않고 있는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인권이 소중한 가치임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지나간 역사에서 저질러졌거나 지금도 저질러지고 있는 우리 아동의 해외 입양에 대하여 실태를 밝히고, 그들이 지금은 어떤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지, 그들이 우리 대한민국에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적극적인 도움과 지원을 촉구한다.
2025.05.29.
참고자료 및 사진출처 1. 영화 <케이넘버> 감독 조세영, 2025년.
2. ‘출산율 세계 최저인데… 아동 해외 입양 3위’ 조선일보 2023.06.02. 김경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