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길. 하지만 오늘은 여느 때와 사뭇 다른 날이다. 광화문으로 다가갈수록 바깥 풍경이 심상치 않다. 8시를 막 넘긴 이른 시간인데 경복궁 부근에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도보 옆으로 경찰 버스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경찰 버스의 긴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더니 광화문 광장에 경찰복을 입은 무장 경찰들이 여기저기 지키고 서있다. 그리고 광화문 사거리마다 경찰들이 점점 더 모이기 시작했다. 역시 뭔가 심상치 않다.
계엄령 : 계엄 (군대를 민간 행정 또는 사법에 투입하는 국권의 발동)을 선포하는 행정명령
12월 3일 오늘 새벽. 바로 역사 교과서에서만 보던 “계엄령”이라는 것이 선포되었다.계엄령 선포에 밤새 걱정으로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람도 있고 마트에서 라면이나 물 같은 비상식량을 사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 역시 일찍 잠에 든 탓에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일어나 뉴스를 보니 드라마 같은 일들이 밤새 벌어졌고, 국회 창문을 부수는 군인들의 모습에 내가 2024년에 있는 게 맞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회사로부터 달리 연락이 없으니 출근은 해야겠지라는 생각으로 여느 때처럼 빨간 버스에 올라탔다. 매일 듣는 뉴스에서도 온통 계엄령 이야기뿐이었다. 반쯤 졸고 반쯤 뉴스를 들으며 오는 길에 버스는 어느새 종로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에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는 경찰들과 늘어나는 바리케이드들에 계염령이 몰고 올 후폭풍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광화문은 뉴스에서 듣거나 들을 예정인 일들을 그 어느 장소에서보다 먼저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오늘 뉴스를 보지 못했더라도 광화문에서 움직임이 시작되면 ‘아 오늘 뭔가 일이 있구나. 집회가 있겠구나’는 좋지 않은 예감을 받게 된다. 그리고 예감은 적중한다. 몇 년간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며 수없이 많은 집회를 보았다. 광화문에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작은 집회든 큰 집회든 집회가 열리고, 그 안에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모여 함께 구호를 외친다.
집회가 열리는 날이면 광화문 거리에는 경찰 기동대 버스가 보도블록을 따라 길게 주차해 있고, 그 앞에 경찰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집회 참가자들은 지정된 위치에서 음악에 맞추어 구호를 내지르거나 준비해 온 팻말을 들고 있다. 나는 버스를 타고 다니기에 집회가 있으면 그것은 곧 도로가 막힐 거라는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집회로 인해 막히는 것이 불편하고 짜증 나기만 했다. 막히는 버스 밖으로 한숨만 푹푹 나왔다. '집회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었다.
출퇴근 시 종종 보았던 집회 모습들
그러다 점점 집회를 자주 보면서부터는 집회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 집회 구호를 외치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시선이 갔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 열심히 집회에 참가해서 목소리를 내는 걸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리 집회에 열성을 다 바치는 걸까?'
나는 국가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에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그렇기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무관심한 내가 과연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이 불필요한 일을 한다고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자격이 있을까 싶었다. 그들이 당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난다면 과연 나는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며 비난만 하던 나 자신의 생각도 바뀌게 된 것이다.
계엄령은 다행히 해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아직 더 큰 이벤트 없이 여느 때처럼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광화문에서의 집회는 이제 시작처럼 보인다. 당장 이번주 토요일부터 2만 명이 모일 대규모 집회가 예고되어 있다. 광화문 광장은 여느 때보다 더 많은 집회 참가자들의 열기로 가득 매워질 것이다.
이번만큼은 나도 출퇴근을 방해하는 집회에 비난만 하기보다는 그들의 외침과 부르짖음에 귀를 조금 기울여보며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