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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험심 Apr 27. 2021

굴곡 있는 삶이 더 경이롭다

배우 윤여정과 아카데미

너무 평탄한 삶보다 굴곡 있는 삶이 더 경이롭다. 매일이 동화같이 행복하기만 한 삶보다 슬픔도 어려있는 삶이 더 깊이 있고, 또 매력 있다.




'우리네 삶을 닮아있구나.'

영화 '미나리'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척박한 땅 그리고 절박한 일상 속에도 희망이 스며들고 꿈이 피어나듯, 모든 것이 다 끝났다는 생각으로 돌아본 곳에는 미나리가 생명력 있게 자라 있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또 다시 희망을 품는다.


<이미지 출처: Koreatimes.co.kr>




내가 살아온 삼십몇 년의 세월이 굴곡 있는 삶이었다고 하기에는 민망하리만큼 순조로운 편이었으나, 내 인생길에도 돌부리와 언덕은 있었고, 나를 단련시키는 '시련'들은 분명 존재했다.


수시로 지원한 대학에 합격하지 못했을 때,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 그리고 파혼했을 때, 나는 슬펐고, 실패를 맛봤다. 비록 그 실패는 씁쓸했고, 아팠으나 세월이 가면서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법을 배웠고 또 그 과정에서 단단해지기도 했다.


우리는 모두 나이를 먹으면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한다. 때로는 실패의 쓴 맛에 좌절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 성공하기도 한다. 한 치 앞이 안 보여 두렵기도 하지만, 지금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대로만 펼쳐지는 것은 아니기에 인생은 지루할 틈이 없고 참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게 영화 '미나리'와 배우 윤여정의 수상 소식은 내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영화 '미나리' 속, '순자'(윤여정)는 어린 손자 '데이빗'(앨런 김)이 수풀 속의 뱀에게 돌을 던지자 말한다.


"데이빗, 그냥 둬. 그러면 뱀이 숨어버려. 보이는게 안 보이는 것보다 더 나은거야. 숨어있는 것이 더 위험하고 무서운거란다."


그렇다, 숨어있는 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이 항상 더 무섭다.


인생에 찾아오는 시련들이 모두 예측 가능하다면,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해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삶은 때때로 우리 모두를 속인다. 가장 맑은 날 뒤통수를 후려치고 가듯, 시련은 예측하지 못한 때 찾아오고 이제는 굳은살이 배긴 것 같다고 생각할 때쯤, 또 생살은 벤 것 같은 아픔이 찾아오곤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그저 별일 없는 일상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배우 윤여정의 인생에도 분명 시련은 존재했을 것이다. 결혼을 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가정을 꾸렸지만 그녀는 십수 년 후에 혼자가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두 아들이 미국에서 자라는 동안 그녀는 배우로서 다시 밥벌이를 하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그녀가 떠날 때와는 달리 그녀에게 들어오는 역할은 크지 않았다. 예전의 영광을 뒤로 한채 다시 필모그래피를 차근차근 쌓아온 그녀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생계형 배우가 되니, 절실함에 연기가 절로 늘었다는 말도 했었다.


전남편의 새로운 결혼이 공표되었을 때, 그녀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리고 엄마로서의 책임감은 또 얼마나 막중했을까. 엄마가 되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가늠도 되지 않지만, 그래서인지 때로는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안쓰러웠고, 또 과거를 담담하게 말하는 그녀가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열심히 한 까닭이겠지만 그녀에게 찾아온 시련은 그녀를 다시 시작하게 했고, 꾸준히 한 우물을 판 덕분에 그녀는 74세에 한국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본인의 이름이 호명되자 상기된 얼굴로 무대에 올라가 첫 문장부터 버벅거리는 그녀는 사랑스러웠고, 또 그 떨림이 TV 밖까지 고스란히 느껴져 나까지 덩달아 설레였다. 단순히 그녀의 수상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서, 또는 영화인 모두가 동경하는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그녀에게 지금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비 온 뒤의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개인적인 시련을 딛고 올라선 그녀를 통해 용기를 얻고 또 그런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이들이 많아서 일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그녀의 수상 소감 중에 "Mommy worked so hard"라는 말을 하며 두 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때, 그녀의 삶을 지탱한 가장 큰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엿 볼 수 있었다. 자식을 향한 그 사랑이 인생의 원동력이자, 그녀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끔 해주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트로피를 앞에 두고 반짝반짝 빛나는 그녀를 보면서 잠시 엄마와 할머니를 떠올리기도 했다. '아카데미'가 주는 금빛 트로피는 못 받으셨지만 그녀들도 모두 자식을 원동력 삼아 그렇게 열심히 살았기에 더 뭉클했다.

  

<이미지 출처: Getty Images Korea>


나는 그녀의 연기도 즐겨보지만, (특히, '계춘할망'이라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녀가 나오는 예능도 즐겨본다.


전형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한 자신을 보여주듯, 그녀는 할머니 룩을 고수하지 않는다. 내 나이에도 입고 들고 싶은 옷과 가방을 척척 소화하는 그녀의 스타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지만 세상 쿨한 말투와 약간 무심한 듯, 힘을 뺀 듯한 그녀 특유의 유머 스타일은 독보적이라 빙그레 따라 웃게 된다.


광고 업계의 스피디 함을 보여주듯, 벌써 그녀가 나오는 광고의 수가 많이 늘었다. 나만큼이나 그녀의 성취와 삶이 경이로운 사람이 많고, 그녀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지.


끝으로, 그녀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그녀처럼 멋진 할머니가 될 수 있기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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