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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진 Aug 02. 2022

엄마, 시집(詩集)을 남기고 떠나다

 이틀 겨우 아프시다 의리 없이 함께 살던 엄마가 서둘러 돌아가셨다. 육체에 갇혀 88년을 이곳에서 지내시다 살아있는 자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어딘가로 돌아가셨다. 머무르기 좋은 곳에서 편안함에 온전히 이르셨길 그저 바라본다.


 엄마는 늘상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셨다.

 '느그들 고생 안시키고, 나도 험한 꼴 안 보여주게 딱 이삼일만 아프다가 가부렀으면 좋겄다. 하룻밤만에 가면 좀 서운허니께, 딱 이삼일만 아프다가 가부렀으면 좋겄네. 맨날 새복마다 교회서 기도하고 있응게 느그들도 기도해라......'


 난 퉁명스레 엄마의 이런 말에, 그게 바란다고 되는 거냐고 했다. 기도한다고 이루어지는 게 있을까 늘 의심하는 나는 나이롱 신자다. 엄마는 사실 기도만 하신 건 아니었다. 어디서 안내를 받으신 건지, 아니면 나 몰래 직접 알아보신 건지 어느 날은, 당신이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서류를 작성했다고 자랑처럼 내게 말씀하시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나와 달리 신실한 신자였던 엄마는 나 보란 듯, 내 뒤통수를 시원하게 날리시며 기도와 소원대로 이틀 만에 몸이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두고 본향(鄕) 집으로 돌아가셨다. 엄마의 기도는 간절했고 준비는 철저했던 것이다. 우리 자식들은 불효자가 되어 엄마의 바람대로 연명치료를 중단했다. 마지막까지 쿨한 엄마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 주말에 가족들이 아버지 추도식 예배로 다 모였다. 즐겁고 또 화기애애했다. 특히 몇 년 동안 질질 끌어 왔던 엄마의 시집 출간을 목전에 두고 있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정식 출간 전에 가편집 본 몇 가지를 함께 보면서 표지와 삽화를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엄마와 우리들의 의견을 모아 제목의 글씨체와 책 사이사이 들어갈 그림과 사진까지 열심히 골랐다. 몇 부를 출간할까에 대해서 엄마와 우리사이에 줄다리기가 있었고 200부라는 타협안에 이르렀다. 엄마는 넉넉하게 300권은 나와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부족하면 나중에 더 인쇄하자고 엄마를 르고 달래 200부 출간으로 결론을 냈다. 내심 난 100부만 인쇄했으면 했다. 집도 좁은데 이삼백 권을 어디다 두나 난감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많이 기쁘셨을까.

엄마 시집 <일곱 빛깔 보석함>

 자식들이 지들끼리 정치와 연예 이야기로 떠들고 있을 때 말없이 꼼꼼하게 가편집된 시집을 한 장 한 장 넘겨보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온전히 몰두해서 들여다보시다 오타도 찾아내시고 비어있는 표지 날개 부분에 대한 의견도 내셨다. 몰두하시던 엄마, 시집에 진심이셨던 그날의 엄마 표정이 유독 생생하게 기억의 하구(口)에서 거슬러 올라온다. 친절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었던 엄마의 와일드했던 생에 대해 엄마가 취했던 태도의 단면이 문득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고 말해야 할까. 어쨌든 그 단단하고 단호한 동시에 자의식 또한 넘쳐나던 엄마의 독특한 삶의 태도가 아빠 없이 남겨진 칠 남매를 진창에 빠지게 하지 않고 키워낸 원동력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의 마지막 십 년은 온전히 시 짓는 맘이셨다. 물론 맘 쓰이는 막내를 위해 밥도 짓고 홍삼도 달였지만, 시인이 되어 시를 읽고 쓰는 일에 전심을 다하셨던 십 년이다. 시라고 엄마에게 다를 바는 없었다. 닥쳐오는 삶의 시련들 앞에서 늘 그러하셨듯, 전투적이고 맹렬하고 단단하게 시를 대하셨다. 대충 하는 여가 활동이 아니라 또 하나의 삶이자 신앙이셨다. 맞춤법이 틀렸을까 봐 늘 노심초사하시며 내가 집에 있으면 자주 물어오셨다.

 '갔고냐 갖고냐?' '안자 있다가 맞냐?'...... 엄마의 질문은 참으로 다양하고 끊임없었다. 내 몸과 맘이 너그러울 땐 '갖고가 맞아!' '안자가 아니라 앉아야!' 하고 차근차근 고쳐드렸지만 귀찮아 바쁘다고 자리를 피한 적도 많았다.


 이제 더 이상 맞춤법으로 날 귀찮게 할 엄마는 없다. 덩그러니 가편집된 엄마 시집 한 권 장례식장 제단에 올려놓고 문상객을 맞이하자니 시집 말고 진짜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아무리 시집을 들여다봐도 엄마는 없다. 엄마는 돌아갔으니까. 하지만, 이 시집마저 없었다면 난 미쳐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시집 출간을 재촉하는 엄마에게 알았다고, 곧 나온다고 말한 지가 오 년이 다된 것 같다. 결국 출간 직전에 엄마의 최종 승인을 받았으니 지옥불에 떨어질 불효자 신세는 면했지만, 엄마의 가장 큰 즐거움은 실현시켜 드리지 못했다. 시집이 나왔다고, 내 시집이 나왔다고 즐겁고 뿌듯하게 교회 사람들과 향우회 사람들에게 그리고 문예창작반 문우들 손에 한 권 한 권 쥐어주며 누리셨을 그 기쁨을 완성해 드리지 못했으니 천국에서든 어디서든 엄마를 다시 볼 면목이 없어야 될 것 같다. 그래서 불효자는 더 크게 울어야 하는데 부끄러워서 크게 울지도 못하겠다.


 형과 누나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 엄마 집에 쉰 밥처럼 남겨졌다. 이제 진짜 엄마와 나의 시간이다. 엄마의 남은 유품에 섞여 있는 육필 시들을 한 장 한 장 들춰본다. 새벽이면 잠든 아들 깰까 봐 화장실도 조심히 다녀오시던 엄마가 새벽기도 갔다 와서, 늦는 아들놈 기다리면서 꾹꾹 눌러서 써 내려간 한 뭉텅이의 시들을 이제 내가 낮이나 밤이나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내 죄가 씻겨가진 않겠지만 이렇게라도 엄마가 내 죄를 내가 알라고 남겨주신 시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곧 또 이러다 말 것이다.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도 옅어지고 마치 늘 혼자 살았던 것처럼 이 집을 아무 생각 없이 활개 치며 곧 돌아다닐 것이다. 그런 뻔뻔함이 곧 찾아온다 해도 몇 주만이라도, 아니 다만 며칠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엄마의 시집 앞에서 후회하고 그리워할 테다. 끝이 없다 해도, 있다 해도 최선을 다해 울며 후회하며 그리워할 테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던 당신의 시 <어머님의 사랑>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가시기 전에는 한 분이시더니 / 떠나신 후에는 삼라만상 모든 것이 /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시집을 내기 위해 직접 타이핑을 하면서도 별 감흥 없던 이 구절, 결국 엄마가 떠나고 나서야 진짜 의미를 알게 된 이 구절이 나를 더 아프게 하는 밤이다.  

어머님의 사랑

                                   이**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고

솔바람도 불었다 간간이 끊어지는데

어머님의 사랑은 쉬임 없이 이어져

그 끝이 없습니다


곁에 안 계실지라도

아침에는 햇살로 일으키시고

저녁에는 별이 되어 저를 지켜보십니다


가시기 전에는 한 분이시더니

떠나신 후에는 삼라만상 모든 것이

어머님의 모습입니다


보고픈 마음은 산이 되어 번져오고

그리운 정은 물이 되어 흘러옵니다


사랑으로 안고 살며시 내어주신 주님의 팔 베시고

고요히 잠드신 어머님은 하늘 그곳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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