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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진 Sep 24. 2022

까미노의 이름들, 그리고 마음들 #1

산티아고 순례길, 생장에서 수비리까지

생장-론세스바예스 27km, 저마다의 이유, 저마다의 방식

 7년 만에 다시 순례자가 되어 생장(Saint-Jean-Pier-de Port)에 도착했다. 기억이라는 게 참 오묘해서 걸어 들어가는 길목과 골목 풍경들이 어제인 것처럼 또렷하게 7년을 건너 되살아다. 에버랜드에서나 볼 법한 코끼리 열차가 노년의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풍경 정도가 낯설 뿐, 긴장과 설렘이 함께 하는 예비 순례자들의 달뜬 얼굴들 오늘도 변함없이 마을 곳곳을 채우고 있다.


잘 해낼 수 있을까.


 순례자 여권인 크리덴셜을 발급받기 위해 나와 난 다른 순례자의 걸음을 쫓아 미노 협회 사무소에 렀다. 그리고 리덴셜과 함께 7년 전처럼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들의 세심한 안내를 받았다. 피레네의 가파른 길을 넘어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까지 이르는 첫 까미노 여정은 만만치 않다. 높아지는 고도와 갈림길 그리고 충분한 물에 대한 주의사항을 처음인양 우린 귀담아듣는다. 경사진 언덕길의 끝에 자리한 55번 순례자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에서 첫 쎄요(sello, 도장)를 크리덴셜의 첫 번째 사각의 칸 안으로 밀어 넣다. 철컥. 마침표. 결별이다. 철컥. 그리고 시 시작.

 에 나선 듯한 순례자 모의 검은 쎄요가 첫 번째 칸 안으로 새겨졌다. 낯익은 낯섦으로 찾아들 까미노, 길 위의 만남을 위해 나도 설레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크리덴셜 그리고 쎄요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동행인 누나와 찾은 어느 알베르게 주방의 다란 테이블 주위로 순례자들이 용히 앉아 있다. 요한나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20대 초반 ,  반달 모양의 선한  눈매를 한 독일 여자 아이가 느닷없이, 그리고 더듬더듬 영어로 순례자들을 향해 다.


Why do you walk the Camino?


 깜빡이도 켜지 않고 직진. 이건 우리가 용기 있게 먼저 까미노의 얼굴들에게 던지기로 했던 질문 아니었나? 조금은 당황스러운 전개.

영어가 외국어인 우리를 포함한 모든 순례자들은 에둘러 말하는 법을 잊은 채, 구글 번역기까지 동원하여 열심히 솔직해다. 아, 이렇게 쉽게 솔직해지다니, 외국어는 힘이 세다.


 18년 전에 병으로 죽어가던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은퇴를 하고 이제야 순례길에 들어선 60대의 스페인 아저씨, 알폰소.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는 맘으로 걷겠다는 오십 대의  프랑스 아줌마, 마리아.

그리고 2년 전 아빠를 잃은 상실감을 극복하고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자전거로 산티아고까지 어코 가 겠다는 요한나.


 마지막으로 누나는 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치료를 잘 마쳤지만 회복되지 않은 마음의 상태를 돌보기 위해서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느릿하지만 또박또박 영어로 마지막 말을 이어다.


I want to live every moment to the fullest, at least on the Camino.(순례길에서 만큼은 적어도 모든 순간을 충실하게 살고 싶어요.)

누나와 요한나

 저녁을 먹고 돌아온 알베르게. 분주한 사람들 틈 속에, 홀로 앉아 컵에 담긴 신라면을 먹고 있는 푸른 머리를 한 20대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와 우린 마주 앉다. 그녀의 영어 이름은 써니. 그리고 조심스레 우린 묻는다.


한국인이세요?

네, 맞아요!


써니는 유럽을 여행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주위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왔단다. 그리고 용감하게 묻는다.


도시나 마을 길이니까, 슬리퍼와 샌들로도 산티아고까지 걸어갈 수 있겠죠? 운동화나 무거운 짐은 한국으로 다 부쳐버렸거든요.


 그녀와 우린 급격한 경사의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순례길 첫날의 피레네 산맥부터 헤밍웨이와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팜플로나(Pamplona)까지 함께 걷고 헤어다. 우리가 팜플로나에서 하루 더 쉬어가기로 한 탓이다. 그녀는 그 흔한 등산화나 스틱 대신 밑창이 두툼한 샌들과 슬리퍼를 번갈아 신고 알베르게 주방에서 먹을 컵라면과 우유가 든 비닐백을 두 손에 든 채 잘도 걸었다. 걸친 옷도 등산복이 아닌 통 넓은 바지와 흰 블라우스. 지나가는 순례자들은 독특하다 못해 경이로운 그녀의 모습을 흘끔대며  쳐다봤다. 그리고 묻기도 했다. 


Do you have any special reason for walking the camino like this?(이렇게 까미노를 걷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써니는 계속되는 이런 질문에 어색하게 웃어 보이거나 No라고 간단히 대답했고 스트레스를 받는 눈치였다. 사실 누나와 나도 다른 건 몰라도 운동화라도 팜플로나에 도착하면 사라고 그녀를 채근했다. 길이 험하다고. 팜플로나에서 하루 더 머무르게 된 우리는 자연스럽게 써니와 헤어졌다. 그리고 또 한참이 지난 지금도 가끔 카톡으로 무탈하게 잘 걷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그녀. 걱정했던 우리와는 달리 씩씩하게 잘  걷고 있는 써니생각하 우리의 조언들이 괜한 노파심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렇지, 산티아고에 이르는 길이 생장에서 출발하는 길 하나가 아니듯, 까미노를 걷는 방식이 하나일 리가 없긴 하다. 군화를 신고 걷든 운동화를 신고 걷든, 아니면 써니처럼 샌들과 슬리퍼로 경사진 길을 위태롭게 걷든 그건 자신의 선택으로 둬야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최선을 다해 선의를 펼치는 것, 그것이면 된 거 아닌가. 나 또한 삶의 길에서 만나는 숱한 참견과 강요, 호기심들이 불편하고 싫었으니 까미노 위에서라도 각자의 이유로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걷도록 서로에게 넉넉해져 볼 일이다. 그 배움의 과제를 내게 던져주기 위해 써니우리 곁으로 스쳐 지나간  아닐까, 지금에서야 또 감사하다.

 

론세스바예스-수비리 50km, 숲길 위 선한 사마리아인


 까미노 길 위의 첫 번째 마을이었던 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Zubiri)까지는 쾌적한 숲길이니 상쾌할 예정,이라고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나는 누나에게 호언장담했다. 중간중간 바르(Bar)도 있으니 무겁게 과일이나 빵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모든 비극은 부주의한 낙관에서 출발하나니, 우리는 수비리 진입 전 10km 지점 숲길에서부터 배고픔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분명 지나온 바르에서 충분히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누나가 많이 힘들어했다. 10km면 두 시간은 더 배고픔을 참고 걸어가야 한다얘기였고, 누나는 숲길 위에  넘어진 고목 위로 위태로운 가지가 부러지듯 풀썩 주저앉아버렸다. 무거운 짐만 걱정했지, 텅 빈 뱃속은 염려하지 않은 대가를 우린  혹독히 치르고 있 중이었다.

 그 순간, 전날 론세스바예스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길 위 벤치에 함께 앉아 쉬며 말을 섞은 프랑스에서 온 까뜨린부르노 부부가 우리 옆을 지나갔다. 큰 바퀴가 달린 트롤리를 끌며 까미노를 걷는 모습이 독특해 먼저 말을 걸어 이야기를 나 부부였다.

브루노 그리고 까뜨린

지치고 배고파 쉬고 있던 우리를 발견한 부부는 마치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걱정스러운 눈빛과 함께 걸음을 멈췄다.


Are you okay? You very tired?


프랑스인 특유의 동그랗게 말 구르는 듯한 영어를 구사하며 까뜨린이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난, 괜찮다고, 조금 지쳤을 뿐이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는데 누나가 먼저 남은 힘을 끌어모아 답했다.


We are not okay! We are too hungry to keep walking, but we have nothing to eat...(괜찮지 못해요! 너무 배가 고파서 계속 걸어갈 수가 없는데 먹을 게 아무것도 없네요...)


 그렇게 인연은 시작됐다. 까뜨린브루노누나의 말에 주저 없이 가던 길을 멈추고 주변을 살 그늘지고 평평한 땅을 찾아내고는 우리에게 손짓했다. 그리고 트롤리에 실려 있던 배낭을 열어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아보카도, 바게트 식빵, 납작 복숭아...... 


 우리는 진심을 담아 '메르시'를 신 외쳐댔다. 유명한 겨울 휴양 도시인 프랑스의 그르노블(Grenoble)에서 전직 의사와 간호사 출신의 브루노까뜨린은 유쾌했으며 또 다정했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건넨 아보카도 한 알, 바케트 한 조각에는 평생 잊지 못할 풍미까미노의 숨결(spirit of camino)이 함께 담겨 있었다. 왓츠앱을 통해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며 수비리에 도착하면 우리가 저녁을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부는 극구 사양했다. 그리고 씩씩하게 짐을 챙기고 떠날 채비를 하 말간 얼굴 까뜨린더듬더듬 마지막 말을 건넸다.


On the camino... we are all family. We... always help each other. Next time... just help anyone in trouble. That's... the spirit of Camino.

(까미노에서는...우리 모두 가족이잖아. 항상 서로 도와야죠. 다음에...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요. 그게... 까미노 정신이니까요.)


 그녀의 말대로 이후 누나와 난 시시때때로 까미노 위에서 누군가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었다가 다시 도움이 필요한 자로 돌아왔다. 정해진 역할 같은 건 없다. 이 길 위에서 우리들은 그저 모두가 함께 굴리는 거대한 바퀴의 촘촘한 바큇살들이다. 그렇다면 순례길 위에서만은 누구 위아래 따로 분별 없이 함께 길을 가고 길을 만드는 인연일 뿐인 것이다.


부엔 까미노!

나와 함께 걷는 중인 배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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