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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Feb 20. 2020

프란시스 하

우리는 모두 프란시스 하였다

얼마전 아주 오랜만에 영국에서 같이 예술을 공부했던 친구 Y와 S를 만났다.

너무 오랜만에 같이 제일 반짝였을 때 함께 했던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서 인가 한국으로 돌아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도통 생각해보지 않았던 감정들이 들었다.


우리는 영국에서 예술 공부를 했었는데 각각 세분화된 분야는 달랐지만 예술에 관한 일이라는 건 같았다. 유학생활에 서로에게 힘이 되주며 많은 시간을 보냈던 우리는 서로 작업에 대한 피드백도 하고 좋은 전시들을 보러 다니면서 즐거워 했다.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근래에 들어 내가 순수히 예술작품을 보면서 감동했었던게 너무 예전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예전에는 어떤 작품을 보며 순수히 감동하고 놀랐던 순간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순수한 감정이 들었던게 너무 예전일이라 내가 앞으로 그런 감정을, 그런 감동을 또 느낄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과 약간의 두려움이 들기도 했다. 나는 그 두 친구들 보다 조금 일찍 한국에 돌아와 조금 더 일찍 한국에 자리 잡았다. 여기서 자리 잡았다고 해봤자 취업을 했다는 것 뿐이지만. 그리고 그 두 친구는 지금 열심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리고 예전에 내가 한참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던때가 생각났다. 나는 그때 같이 영국에 있었던 친구들 보다는 살짝 일찍 한국에 들어왓었고 원래 한국에 있었던 내 주변 친구들은 평균보다 더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이였다. 그래서 그때는 이상하게 내가 어딘가에 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예술과 함께 보냈던 시간들을 내가 너무 이상주의자적인 삶을 살았다고 등한시 했었던 것 같다. 더 이상 그 감정과 감동들이 내것같지 않았고 조금 더 빨리 안정됬으면 좋겠다고 바랬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예전에 봤었던 영화 프란시스 하가 생각났다.


데이비드 보위의 모던 러브가 나오는데 아직또 가끔 문득 문득 이 장면이 생각난다


프란시스 하는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Dreamer가 어떻게 현실에 적응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는 내내 찌질한 프란시스 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들이 공감할 수 밖에 없게 한다.


성인이 막 되고 나서 이 영화를 스치듯이 봤었을 때는 프란시스가 자신의 이상을 포기하고 현실과 마주하는 모습이 책임감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노력해 줬으면 좋겠는데 조금 더 힘내줬으면 좋겟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년 후 다시 이 영화를 봤었을때는 프란시스 하의 선택이 용기있어 보였다.  


영화 초반과 중반에는 프란시스의 현실에서 이상을 위한 계속 되는 노력과 그 노력이 젊음의 이유인지 어딘가 어설퍼 보이고 찌질해보인는데 그게 나의 모습과 너무 닮아보여 결코 미워할 수 없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급하게 현금을 뽑아야 하는 상황에 ATM 기계 화면의 수수료를 보고 고민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 너무 찌질한데 누구나 있을 법한 경험이라 이 캐릭터를 결코 미워할수 없다. 


그렇게 영화 초반과 중반에는 영화를 보고 있는 청춘들에게 이 캐릭터에 공감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 놓고 영화 중반에서 후반 부는 소위 사회가 바라는데로 삶을 흘려보내지 않는 꿈을 아니 어쩌면 꿈만 꾸고 있는 프란시스를 사회에서 어떻게 대하고 있는 가를 보여준다. 프란시스가 친구의 디너 파티에 놀러가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는데 주위 사람들은 만 27살에 꿈만꾸고 있는 프란시스를 한심하게 보고 있는 장면을 그들의 눈빛을 통해 보여주는데 이 장면에서의 불편함은 영화를 보고 있는 나까지 불편하게 만들었다.


'프란시스 하' 영화의 마지막 장면


그리고는 영화 후반의 프란시스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댄서였던 꿈을 포기하고 극장의 안무가가 된다. 그렇게 위태로워 보였던 프란시스는 영화 후반부에 자리를 잡고 안정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고서는 마침내 뉴욕에서 얻은 자신의 집 우편함의 이름을 적어 넣는 부분에 자신의 풀네임인 '프란시스 하러데이'가 우편함 이름 칸에 넣기 부족하자 종이를 접어서 집어 넣은 이름인 '프란시스 하'로 영화는 끝이 난다.



그리고 어제 다시 본 프란시스 하는 나에게 나의 잃어 버린 내 뒤의 이름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했다. 사회를 나타내는 것 같은 집 우편함의 이름 넣는 칸과 거기에 자신의 넘치는 이름을 접어 딱 맞게 집어 넣는 프란시스 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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