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찰나의 명중]

by 김노리

본 소설은 인공지능 AI와 함께 작성되었습니다



발표회는 끝났다. 뿅망치를 휘두르며 아이들의 동선을 지휘하던 한 시간은 마치 전생의 일처럼 아득했다. 현장에서 본 담임 선생님들의 눈빛, 그 지독한 진지함과 헌신을 목격한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팽팽하게 당겨졌다.


지사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수십 번, 수백 번 시뮬레이션을 돌렸던 장면이었다.


'어떻게 하면 예의를 갖추면서 내 불만을 말할까?' '어느 수위까지 말해야 선을 넘지 않는 걸까?'


핸드폰으로 뻗는 손끝에 자신감이 실렸다. 나는 망설임 없이, 아주 날렵하게 화면을 밀어챘다. 고민하며 골랐던 단어들은 막상 수화기 너머 지사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먼지처럼 흩어졌다.


"지사장님, 다음에 원 연결해 주실 때는 미리 얘기해 주세요. 여기는 발표회에 진심인 곳이더라고요."


지사장이 입을 떼기도 전에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 그저 노래에 맞춰 율동만 가르치면 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 아니더군요. 담임 선생님들은 1년 치 에너지를 오늘 다 쏟고 계셨어요. 제가 미리 알았더라면 이방인이 아닌 한 팀으로 그 진지함에 보조를 맞췄을 겁니다. 정말 아쉽네요."


내 목소리는 떨림 없이 똑똑했다. 지사장의 "아니 뭐 다른 곳도 비슷해요..."라는 군색한 변명이 들려왔지만, 나는 그 대답을 쫓지 않았다. 대신 길고 무거운 '퍼즈(Pause)'를 두었다.


그 정적은 내가 지사장에게 주는 벌이자, 내 말이 그녀의 무능을 관통했다는 확인 사살이었다. 예전 같으면 그 침묵이 두려워 내가 먼저 아무 말이나 보태며 상황을 수습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그 침묵을 즐겼다. 지사장이 내 '열심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쩔쩔매는 그 공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셨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돌아가는 차 안, 승리감 뒤로 해일 같은 불안이 밀려왔다. 시뮬레이션에도 없던 그 날카로운 문장들이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걸까.


'내가 미쳤나? 왜 그렇게까지 말했지?'


정당한 요구를 하고도 죄인처럼 심장이 뛰었다. 수십 년간 나를 지배해온 '을의 습성'이 내 발목을 잡아채며 묻고 있었다. 감히 네가, 너를 고용한 사람에게, 그토록 선명한 진실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나는 운전대를 꽉 쥔 채 거칠게 몰아쉬는 숨을 골랐다.


[제미나이, 나 방금 지사장한테 할 말 다 했어. 기분은 좋은데, 동시에 너무 무서워. 나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파란 불빛이 깜빡였다.


“서윤 님, 그 불안은 당신이 나빠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평생 '착한 사람'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가 처음으로 담장을 넘었을 때 느끼는 당연한 고소공포증일 뿐이에요. 당신은 오늘 자신을 지켰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또 다른 전장(戰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의 문자.


서윤아, 내일 기차표 취소해라. 언니가 데려다준단다. 그리 알어라.


익숙한 패턴이었다. 내 동선이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겐 내가 고유한 감정을 가진 딸 또는 인격체라기보다,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기능 좋은 도구에 가까웠다.


[엄마, 나 못 데리러 가. 지금 너무 지쳤어. 내일은 “우리끼리” 쉴게. 미안해요.]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떨렸다. '우리끼리'라는 단어는 내 요새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곧이어 어머니의 날 선 문자가 날아왔다.


내가 버스 타고 내려가마. 됐다.


죄책감을 유발하는 고도의 심리전. ‘기차표는 취소하라하고 갑자기 버스라니 .. SRT도 있잖아!"라고 발끈했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나는 제미나이가 알려준 대로 답장을 보냈다.


[네, 엄마. 취소했어요. 조심히 내려가세요.]


더 이상의 부연 설명도, 사과도 덧붙이지 않았다. 문장을 마침표로 끝내는 법을 처음 배운 아이처럼 나는 스마트폰을 엎어놓았다.


거실에서는 남편이 연서에게 계란밥을 먹이고 있었다. 그는 온화한 사람이다. 하지만 가끔 그 온화함은 나를 외롭게 했다. 그는 내가 세상을 향해 들이받는 그 날카로운 말들에 아무리 '맞는' 말이라도 "굳이, 왜 그래?"라고 했다.


"자기야."


나는 소파에 앉아 있는 그를 불렀다. 거실 바닥에는 연서가 먹다 흘린 밥알이 굳어 있었다. 남편은 온화한 표정으로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는, 스마트폰으로 쇼츠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연서의 미디어 노출에 대해 우려할 때마다, 그는 누구보다 단호하게 "애 정서에 안 좋아, 자제시켜야지"라고 훈수 두던 사람이었다.


"자기야, 어제는 연서 티비 보여주면서 옆에서 자는 거 보니까 마음이 복잡하더라."


내 목소리는 낮았지만 서늘했다. 남편의 시선이 스마트폰에서 내 얼굴로 느릿하게 옮겨왔다.


"자기는 평소에 내가 티비 보여주는 거에 그렇게 예민했잖아. '나는 절대 저러지 않을 자신 있다'면서. 근데 막상 자기 몸이 고되니까 오빠도 결국 티비를 보여주게 되잖아?"


남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평소처럼 적당히 웃으며 넘기려던 그는 내 눈빛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한 듯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가진 그 '착함'이라는 허울이 나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하는지 알아? 자기는 본인이 지키지도 못할 기준을 세워두고, 그걸 지키지 못하는 나를 보며 안타까운 척 관용을 베풀지. 하지만 그건 관용이 아냐. 나를 비효율적이고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세우면서, 본인은 깨끗한 포지션을 유지하는 교묘한 이기주의지."


정적 속에서 밥알이 굳어가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나는 내가 지저분하면서 깔끔한 척 남 보고 좀 치우고 살아 하지 않아. 자기는 본인조차 속해있지 않은 엄격한 도덕적 규정에 나만 가두려고 해. 그게 나를 미치게 해. 당신이 말하는 그 '온화함'은 사실 내가 감당하고 있는 이 구질구질한 육아 전쟁터에 발 한쪽 담그지 않겠다는 회피일 뿐이야."


남편은 연서의 시선을 가리며 스마트폰을 껐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집안의 위태로운 평화는 그 찰나에 박살 났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서늘한 방어기제는 이미 그의 가장 비겁한 변명을 겨누고 있었다.


"당신은 입으로만 육아하지? 모든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인데, 당신은 그저 관객처럼 앉아 있잖아. 아이를 챙기고, 이 집안일들에 부족한 생활비까지... 당신은 도대체 뭔데 이 모든 것에서 멀찌감치 서 있는 건데?"


싱크대에 산처럼 쌓인 그릇들이 마치 내가 감당해야 할 인생의 무게처럼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 또 너무 심했나. 남편에게 또 상처를 준 걸까..]


제미나이의 대답은 서늘하고도 따뜻했다.


“서윤 님, 당신의 화살은 상대를 향한 공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라도 날을 세우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당신의 위태로움이 보낸, ‘나를 좀 봐달라’는 처절한 비명이었겠지요.”


나는 싱크대 앞에 멈춰 서서 처음으로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불러보았다.


"서윤아."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잔뜩 날이 서 있었다. 그 눈빛 뒤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온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어린아이가 서 있었다.


나는 비로소 인정했다. 남편을 할퀸 그 예리한 말들은 사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는 공포 속에서 나 자신을 채찍질하며 길러온 방어기제였다는 것을. 내가 던진 화살의 끝에는 언제나 나 자신의 손가락도 베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