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태국의 77개 주(州) 중에서 2번째로 인구가 많은 코랏 소재 터미널 21 백화점에서 벌어진 무차별 총기난사 참극은 부정부패부와 부조리가 넘쳐나는 세칭 ‘태국판 정글 자본주의’의 폐해가 군 내부 깊숙이 침투해 벌어진 대표적 사례 그 자체였다.
가뜩이나 중진국 함정에 빠져 수년간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판국에 40년 만의 가뭄이 들이닥치고 코로나 바이러스 위험국의 불명예까지 겹쳐서 어려운 마당인데, 준사관 신분의 현역 군인이 불특정 다수를 향해 총격난사를 벌여 하룻밤에 30명이 사망하고 58명이 부상한 전대미문의 참사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M60 경기관총 3정과 탄띠 3줄, 그리고 HK G3 자동소총과 실탄 736발을 전투용 험비 지프차에 실은 채 3일간의 불교 명절 연휴가 시작된 주말에 수많은 쇼핑객이 몰리는 초대형 백화점에서 말이다.
▲ 총격난사를 자행하며 유유자적 SNS에 총격 현장을 한 시간이 넘게 중계한 전대미문의 총기 살해범 ‘짝끄라판’ 상사./사진= 범행인 페이스북 페이지 from 타이랏 TV 캡처
범인은 평소 극심한 개인부채에 시달리던 중, 부대 상관으로부터 ‘자신의 장모가 시공주인 주택을 분양받으면 은행 측과 시공사로 하여금 분양가 이상의 금액을 융자받게 손을 써줄 테니 분양 비용을 치르고 난 후 남은 금액은 사채 해결에 유용하라’는 제안을 받고 당해 주택을 분양받았다. 그러나 추후 상관이 되돌려 주기로 한 차액을 지급해 주지 않자 이에 앙심을 품고 상관의 집으로 달려가 다툼을 벌이던 중, 가지고 있던 권총으로 상관 일가 3인을 사상케 한 후 부대로 이동해 무기고를 경비하던 동료 2인에게 추가로 총격을 가해 다량의 화기와 실탄을 탈취했다. 이후, 시내에서 가장 큰 터미널 21 백화점으로 달려가 묻지 마 총기 난사극을 벌이다가 출동한 아린타랏 경찰특공대에게 사건 발생 익일에야 사살되었다.
하필이면 불교국가인 태국에서, 부처가 입적하시기 직전 이 땅에 큰 가르침을 전했던 ‘마카부차 데이’에 무려 17시간 동안의 무차별적 총기난사 참변이 벌어진 것이다.
▲ 코랏 소재 터미널 21 백화점에서 집총 한 모습으로 유유자적 자동소총을 난사하며 돌아다니는 범인 모습./사진=타이랏 TV 캡처
총기 난사를 시작한 이틀 째인 아침 8시 30분경에야 사살된 범인은 다중이 모인 백화점 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무고한 사람들을 향해 자동소총을 난사했고, 그 광경을 페이스북으로 생중계하면서 “10여 명을 연달아 쏴 죽이느라 팔이 아프다.. 힘들다”, “처음 쏜 세명은 모두 죽었으려나?…그 세명은 (돌려줄 돈을 주지 않고 갈취한 채 자신을 무시한 것에 대한) 복수였으나 그다음에 쏜 것은 정당방위였다.”라는 이해불가의 소리를 해대며 계속해서 무자비한 총격으로 무고한 불특정 다수 시민들을 살상했다.
태국은 이 참변으로 일 순간 커다란 충격에 빠져들었다. 연간 4천만 명을 상회하는 외국 관광객이 방문하는 나라이니 만큼 외신의 관심도 지대하다. 이곳저곳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SNS 글귀가 오가고, 예의 헬리콥터를 탄 중앙정부 관료들의 위로 행차가 슬픔에 잠긴 코랏 주를 향해 끊이지 않고 있다. 늘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기는 ‘자유의 나라=쁘라텟타이’의 온정주의(남짜이=น้ำใจ)와 나눔의 미학(첩뱅빤=ชอบแบ่งปัน) 정신이 구호의 손길로 꽃피워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태국은 이제는 더 이상 이런 사후약방문적인 행태에만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는 국가를 만들어 나가는데 보다 힘을 써야 할 것이다. 태국에서 20여년을 넘는 세월을 살아 온 외국인으로서 쓴소리를 좀 해야겠다는 사명감이 다 생길 지경이다.
▲ 무차별 난사 현장에서 벗어나려고 총격속에서 백화점 인근 주유소를 통해 달아나는 쇼핑객들./사진= 타이랏 TV 캡처
생각해 보자. 하룻밤에 88명의 사상자가 총격을 입었다는 것은, 웬만한 전장의 고지전에서 조차 발생키 쉽지 않은 희생자 수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중심에는 지방의 토호로 자리한 육군 대령 일가의 ‘주택 분양 뒷돈 챙기기’라는 소위 ‘갑질 부패행각’이 도사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총격 난사범과 같은 유형의 부당한 군내 갑질적 사기 거래로 피해를 입었다는 하급 군인들의 진정이 일시에 400 건 가까이 쏟아졌다고 보도되고 있으며 피해 집계는 더 늘어날 추세이다.
이 사건은, 최근 태국에서 작년 말 대비 40% 이상 급증하고 있는 은행권 부실채권(NPL=Non-Performing Loan) 문제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 범인의 월급은 훈련수당 등 각종 지급금을 다 합해도 월 2만 바트(약 75만 원)가 넘지 않는데, 그나마 여기저기 널린 채무를 공제받고 나면 월 600 바트(약 2만 원) 남짓의 금액만이 남았다는 현지 신문의 보도이고 보면…
빚을 공제하고 나면 겨우 월 600 바트 가량의 가처분 소득이 남는 육군 상사에게 대령급 상관이 군 복지시스템과 연동해 과다한 융자금액 결정을 승인해주고, 당해 대령의 장모가 분양주인 주택분양을 받게 하는 융자 사기극은 채무 불이행에 시달리는 육군 상사에게 지옥 같은 일상에서 천국으로 빠져나오는 동아줄로 여겨졌었겠지 싶다. 박봉에 시달리는 육군 상사가 어디에 어떻게 낭비했기에 월별 채무 공제 후엔 겨우 6백 밧이 남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일가족의 병환이나 그 외 피치 못할 사정이 발생하여 그런 상환불가 상황이 만들어졌는지 알 길은 없으나 박봉의 준사관을 분양 융자금 사기극에 끌어드린 갑질 지휘관의 문제는 태국 사회 빈익빈 부익부의 민낯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태국 내에서 누구도 견제할 수 없는 무소불위 군부의 지위를 태동케 한 지나간 태국 역사의 혼란이 단초가 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군의 무기관리 소홀은 물론, 민간인이 합법적으로 라이선스 취득해 개인 소지 중인 650 만정이 넘는 총기 문제 또한 이번 참극을 교훈 삼아 정비해 나가야 한다. 정말이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책 ‘총, 균, 쇠’를 떠올리게 하는 각양각색의 총격사건과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가 40년 만의 가뭄과 함께 태국에 사는 모두를 우려케 하고 있는 상황이다.
▲ 일부 고위 장교들이 부하들을 대상으로 군 복지시스템을 악용해 사적인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았음을 시인하며 근절해 나가겠다고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하는 아피랏 태국 육군 참모총장./사진=더네이션
이번 사태를 겪으며 또다시 ‘소 읽고 외양간 고치기’에 나선 태국 군부와 정부는 감성적 모금운동이나 대 국민 위로 행사 이상의 보다 근원적인 국가적 차원의 총기 관리감독과 대 국민 부실채권 해소 문제에 발 벗고 나서야 구체적 실행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범인이 17시간을 쇼핑센터 내에서 중무장한 채 88명의 무고한 시민을 총기로 살상하는 참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초동진압에 실패한 책임도 가볍지 않다.
공교롭게도 이 참화가 벌어진 일자로부터 딱 2564년 전 같은 날에 부처가 커다란 가르침을 속세에 전하고 열반에 들었다. 즉 ‘마카부차 데이’에 이런 참극이 발생하였다. 부처가 속세에 전해주고 떠난 크나 큰 가르침의 의미를 진정으로 되새겨 이번과 같은 참사를 방지해 나가는 국가 인프라 정비에 힘을 쏟을 때이다. 정말이지 ’ 국가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떠오르게 한 도 하나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총기난사범이 그의 페이스북에 적었다고 보도된 말이 귓전을 울린다. “남들에게 사기로 갈취한 돈을 그들은 지옥에 가서라도 사용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