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근대화는 일제의 강압과 외세의 침략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더욱 날이 선 관점을 가지고 기록을 해석하고,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단재 신채호의 역사론적 관점에 따르면, 비아(非我)로서 타자를 전제하되, 타자에게 치우치지 않게 아(我)로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깊게 이해하고 한국인의 주체적인 시선에서 연구하고 저술해야 한다.
근대적 사고방식은 크게 과학적 합리와 제국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개항 전 조선의 모습은 시대가 요구하는 모습과는 판이한 나라였다. 개항 직후, 당대 한반도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연구엔 이런 색다른 모습의 한국이 잘 기록되어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출판한 <영국왕립아세아학회 잡지로 본 근대 한국> 시리즈는 한국 근대 개항 직후, 영국왕립아세아 학회에서 발행한 잡지 『트랜스액션』이라는 1차 자료를 토대로, 한국학 연구자들이 타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의 모습을 생활, 경제, 과학, 종교, 심리 등 다양한 영역에서 깊게 살펴보고자 연구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모든 형용사는 비교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즉, ‘예쁘다’, ‘못생겼다’ 판가름하는 척도는 대상과 또 다른 대상을 비교하는 데서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생기고, 그 정도가 생긴다는 말이다. 한 국가, 나아가 한 민족의 역사와 생활상을 바라볼 때도 ‘비교’는 유용한 방법론이다.
특히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 다른 국가들과 비교를 ‘거부’하며 개항의 문을 걸어 잠근 구한말, 불평등 조약으로 개화기를 겪어야 했던 이 격동하는 시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나라는 당시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이해하는 작업은 필수 불가결하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외국인들 눈에는 이제 막 근대로 진입한 우리 민족이 어떻게 비췄는지, 그리고 무엇이 한국인만의-한국적인 가치가 있는지 어렵지 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특히 1차 자료가 외국 자료라는 점에서 타자의 시선에 경도될 수 있어 우려스러울 수 있는데, <영국왕립아세아학회 잡지로 본 근대 한국> 시리즈는 한국학 연구자들이 한국적 맥락에서 해석하고 또 다른 1차 자료들과 비교 연구를 했다는 점에서, 나처럼 한국학을 처음 연구하는 초보자가 크게 도움 받을 수 있는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음식을 비벼 먹는 일명, ‘비빔밥 문화’가 있다.
밥상 다리 무너지게 차리는 많은 종류의 반찬과 밥과 국을 열심히 골라먹는 것도 모자라,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비벼 기가 막히게 맛있는 맛을 내는 전통은 한국 특유의 문화. 이 책을 읽고 이 비빔밥 문화만큼 신문물을 주체적으로 도입해 제국주의의 침탈 없이 개화를 맞이했었더라면, 우리 근현대사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또한 외부자적 시각을 통해 우리나라의 잠재력을 상상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
한국 근대를 해석하는 문헌들을 읽어보면, 나라를 강제로 침탈당한 역사가 있는 만큼 그 특유의 절망과 질책을 겪어야 한다는 게 간혹 큰 심리적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졌던 금강산으로 대표하는 아름다운 우리 자연경관, 사회 문화, 과학과 경제 제도를 대외적인 시선에서 어렵지 않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특히, 한국 전통 화폐를 이해해 보고자 하는 경제 꼭지에서 고려부터 시작된 우리 화폐 제도는 중국 송나라와 함께 중세 경제 혁명을 일으킨 화폐였고 이는 세계사적으로 큰 의의가 있다는 점은 과히 신선하고 흥미로운 주제였다.
충분히 당대에도 국제적 경쟁력을 가질만한 것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새로운 지식과 더불어 깊은 공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대외적인 시선에서 우리 민족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우리가 부족하기만 해서 그런 역사적 설움을 겪은 게 아니라는 점을 발견하고 음미하는 일은 앞으로 지속적인 한국학의 발전, 나아가 한국 사회 미래의 중요한 지점이 될 것이다.
근래 몇 년간 한국에 대한 다른 나라의 관심은 과거 몇십 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해 왔다. 2021년에 상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돈 룩 업>에서도 한국을 ‘매력 있는 나라’로 언급한 것처럼, 과거 제국주의시대에 다른 나라를 착취하지 않은 나라지만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란 나라를 세계인들은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애정을 갖는 추세에 있기도 하다.
또한 식민 지배와 영토 분단, 그리고 민주화를 연속적으로 겪어 다난했던 근현대사를 지나 괄목한 성장을 이루어냈다는 점은 자랑스러워할 만한 사실이다.
그러나 요즘 우리 사회는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국가적 경쟁력을 가지고도 국내외에서 우리의 객관적 위치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도 보인다. 과거 구한말 통상수교거부정책 시기와 같은.
책의 <식생활> 꼭지에서 등장하는 ‘놋그릇’은 1900~1925년 당대 우리 기술의 특산품이었다.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식생활 용품이었지만, 당대 외국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끈 제품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손님이 오면 내 밥은 굶어도 손님상은 푸짐하게 차리던 전통이 있던, 정 많은 민족이다 보니 이런 특산물들을 헐값에 넘기는 일이 허다했다. ‘노다지’라 불리던 한반도에 그 많던 금광처럼.
그래서 나는 더 많은 분야에서 <영국왕립아세아학회 잡지로 본 근대 한국> 시리즈처럼, 능동적인 한국학 연구가 더 활발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과거의 설움을 또다시 겪지 않고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려면, 오늘날 경쟁력이 될 수 있는 여러 산업과 학문 분야에서 한국인만의-한국적인 가치를 찾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영역에서 발전된 모습으로, 다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가는 희망이 넘치는 세상으로 도약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_이로 글
움직이는 화랑 <비껴서기> 운영 |
코스미안뉴스 인문 칼럼니스트
브런치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