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카 아닌 카메라를 고민하는 당신에게
- 스마트폰 사진을 가르치고 담는 입장에서 늘 고민 되는 부분이 있다. 여행 갈 때의 카메라 선택이다. 스마트폰 사진 강사이자 작가로서의 입장은 당연히 모든 사진은 스마트폰으로 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지만 만에 하나의 장면을 놓치는 것이 두려워 큰 카메라도 챙기고 싶은 것이 사람 욕심이다. 최근의 장기 여행은 작년 9월에 갔던 일본 일주 여행이었고, 그 때에는 폰카 세 대와 미러리스 카메라 한 대를 챙겼다. 다만 나만의 규칙을 세웠는데, 폰카로 제대로 담아내기 어려운 밤스냅에만 미러리스를 쓴다는 조건으로 가볍게 챙겼다. 카메라 한 대와 가벼운 35mm F2.8 렌즈. 그것이 저번 여행 장비의 전부였다.
- 그렇지만 대부분의 여행 사진은 낮에 찍기에, 일본에서의 여행 사진도 대부분 낮에 찍은 폰카 사진들이 많다. 사실상 음식부터 풍경은 물론, 삼각대를 놓고 직접 내 모습을 담는 것 까지 스마트폰만을 활용 하니까.
- 그렇기에 사실 여행 사진의 대부분은 스마트폰만 있어도 촬영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유럽 여행에서 미러리스 카메라를 챙기기로 결정했고, 과정은 힘들었으나 결과는 놀라웠다. 아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많을듯 싶어 이 글을 쓴다.
- 소니의 A7M3과 L플레이트. 렌즈는 FE 16-35 F4와 FE 50 F1.4를 챙겼다. 삼각대는 BENRO의 SS101로 볼헤드 포함 1kg 수준의 초경량 카본 삼각대. 이런 장비를 챙긴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이번 여행은 10년 만에 다시 찾는 유럽이니 만큼 모든 순간이 소중하다
(2) 26일의 여행인 만큼 보다 전문적인 기록과 아카이빙을 하고 싶다
(3) 함께 다니는 짝꿍을 더욱 아름답게 담아주고 싶다
(4) 스마트폰으로 표현 불가능한 화각/심도 표현을 통해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100% 표현하고 싶다
- 다른 이유들 보다 특히 4번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100% 표현하기 위해 스마트폰이 아닌 렌즈교환형 풀프레임 미러리스를 선택 했다. 나는 스마트폰 사진을 잡기 이전에 2009년 부터 DSLR과 미러리스를 통해 내 생각과 시선을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 왔다. 사진 컷수로 따지면 60만장 이상을 담아왔기에 모든 상황에 따른 대응을 몸이 기억하고 있다. 특히 풀프레임과 50mm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은, 이미 사진을 담기 전에 눈 앞에 구도와 심도가 펼쳐지는 수준으로 생각이 가능하다. 60만컷중 못해도 15만컷은 50mm로 담아왔으니.
- 우리가 사용하는 폰카들은 대부분 26-28mm 수준의 화각에 머물러 있다. 표준 화각보다는 훨씬 넓기에, 다양한 상황에 전천후로 대응할 수 있지만 바꿔 말하면 특정 상황에서는 반드시 부족함을 느끼는 화각인 셈이다. 특히 인물사진을 담을때 사람들은 부족함을 많이 느낀다. 뭔가 인물에 집중되고 배경 훅훅 날아가고, 이런 느낌을 바라지만 실상 쉽지는 않다. 그나마 아이폰의 인물사진 모드나 갤럭시의 라이브 포커스 모드를 사용하면 두 개의 렌즈를 조합하여 간접적으로 배경 흐림 사진을 만들어 낼 수는 있지만, 보케의 모양이나 특정 부분의 부자연스러움이 눈에 거슬릴 수 있다.
- 즉, 당신이 평소에 미러리스 카메라 활용에 익숙치 않지만 막연하게 카메라만 믿는 상태라면 차라리 폰카만 들고 가서 여행을 보다 편하고 즐겁게 떠나는 편이 훨씬 행복할 수 있다. 실제로 2017년 이후의 폰카들은 광학적 성능이 이미 한계까지 치달은 상황이기에 폰카만으로도 충분히 여러분들의 음식이나 풍경, 인물 등을 담아낼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없는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서 몇 장의 샘플 사진들을 공개한다.
- 실제 이번 여행에서 폰카로 담은 사진이다. 폰카로도 충분한 상황은 이런 사진들과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래 경우는 폰카로만 담아도 충분하다.
(1) 대부분의 음식 사진들 / 특히 탑뷰 위주의 테이블 구성 사진
(2) 무난한 풍경사진 / 풍경과 어우러지는 전신사진
(3) 카페/인테리어 등의 인스타 감성 사진
(4) 입체감이 필요 없는 평면적인 구성
- 어떻게 보면 평소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구도들이 장소만 바뀐다고 보면 된다. 특히 SNS를 많이 활용하는 사람일 경우, 평소 쓰는 필터와 보정법을 스마트폰 내에서 그대로 활용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새 카메라를 쓰는 것 보다 훨씬 나을 수 있다. 가령 아래 사진은 카메라로 담았지만 스마트폰으로 충분히 가능한 구도와 구성이기에 소개한다.
- 즉, 얕은 심도가 필요하거나 극한 상황을 마주치는게 아니라 평면적이고 간결한 시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폰카로도 충분히 사진을 담아낼 수 있다.
- 한편, 미러리스 등의 카메라가 반드시 필요한 사진들은 다음과 같다.
(1) 폰카보다 훨씬 넓거나 / 훨씬 멀리 있는 피사체를 담고 싶을 때
(2) 자연스러운 아웃포커싱을 원할 때
(3) 빛이 부족한 상황에서 깔끔한 사진을 원할 때
(4) 원격 촬영 / 손떨림 방지 등 폰카에서는 제대로 구동하지 않는 편의 기능을 원할 때
-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사용할 때의 가장 큰 잇점은 다음과 같다. 렌즈의 교환을 통해 상황별 대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번 여행에서 챙긴 16-35mm 렌즈는 눈으로 보는 풍경보다도 더 넓게 담을 수 있기에 필수적인 선택 이었고, 50mm F1.4 렌즈는 폰카보다 약 두 배 정도 멀리 바라보며 자연스럽게 배경과 인물을 함께 담아낼 수 있기에 선택했다. 스마트폰 카메라는 렌즈 교환식이 아니기에 요즘은 렌즈를 많이 달아 놓는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현재로서는 렌즈교환식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 보다는 만족스럽지 못할 수 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런 사람들은 폰카를 쓰자.
(1) 별도의 카메라는 무겁고 불편할 것 같다.
(2) 보정 잘 안 하고 필터 정도만 입힐 수 있다.
(3) 인스타 감성 정도로만 나와도 땡큐.
(4) 대체로 찍는게 풍경/음식/셀카 정도다.
이런 사람들은 카메라를 따로 챙기자.
(1) 폰카와 별도의 카메라의 차이를 확실히 안다.
(2) 무게와 불편함을 감수 할 만큼 결과물에 민감하다.
(3) 반드시 RAW 촬영 후 보정을 할 것이다.
(4) 다양한 환경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을 원한다.
- 사실 모든 카메라가 완벽 할 수는 없다. 미러리스는 화질이 좋고 다양한 환경에 대응 가능한 대신 무겁고 불편하며 소매치기의 표적이 되기 쉽다. 스마트폰은 언제나 내게 있고, SNS 활용에 최적화 되어 있으며 간편하게 다양한 색감을 내기 편하다. 결국엔 선택의 문제고, 그러한 선택에 있어서 내가 이미 겪었던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는다. 여행이 길고 짧은지, 그 나라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워낙에 다양한 변수인지라 다루지 않았다. 댓글로도 장비 상담은 받는다. 포토그래퍼들은 증상의 정도만 다를 뿐 거진 장비병 환자들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