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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먹은 라멘 두 그릇

디테일의 차이가 빚어내는 최고와 최악의 두 그릇

by 청년백수 방쿤

- 생각보다 유럽에는 아시아 음식점이 많다. 특히 스페인을 여행하다 자주 만났던 음식점은 스시집. 하지만 주머니사정이 여의치 않았던지라 초밥은 패스하고 라멘을 두 끼 정도 먹었다. 한 번은 아주 맛있었고, 한 번은 정말 최악이었다.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라멘집들을 각각 만나본다.


- 라멘의 본질을 파악한 마드리드의 '라멘 카구라'

라멘 카구라의 메뉴 델 디아 - 10유로 미만 만찬 중 최고였다

- 스페인의 점심은 대체로 '메뉴 델 디아(오늘의 메뉴)'를 도전하게 된다. 식당 마다 메뉴 구성이나 가격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대개 10-20유로 사이의 가격대를 유지한다. 에피타이저>본식>디저트로 이어지는 코스와 음료 한 잔 까지 합친 금액이니 매우 호사로운 런치메뉴라 할 수 있다. 라멘 카구라 역시 스페인 식당 답게 메뉴 델 디아를 운영 하고 있었다. 쇼유/미소 돈코츠와 더불어 탄탄멘 역시 판매 중이었기에 반가운 마음에 시켜봤다. 에피타이저는 교자, 후식으로는 크림치즈푸딩을 시켰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유럽여행에서 먹은 아시안 푸드중 두 번째로 좋았다. (첫 번째는 바르셀로나의 '서울정', 오오, 그 고결한 된장찌개와 오징어볶음이란). 무엇보다 판매 방식은 지극히 스페인스러우나, 그 맛은 지극히 일본다웠다. 갓 튀긴 교자에서는 바삭한 식감과 짭조롬한 소가 맥주와 잘 어울렸다. 라멘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라멘만 봐서는 유럽인지 일본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성공적인 비주얼. 미소돈코츠는 뭉근히 우러낸 육수와 고소하고 짭조롬한 미소 소스와 더불어 살짝 구운 차슈와 반숙 계란이 멋지게 얹혀있다. 특히 감동한 부분은 면발. 이 면발은 생라멘 면발이었다. 파스타를 어디서 구해다 삶은것도 아니고, 건면을 삶은것도 아닌 확실히 생면이었다. 갓삶은 생면을 구수한 돈코츠에 말아 낸 라멘의 기본, 라멘의 정석을 스페인에서 만날 줄이야.


- 함께 시킨 탄탄멘 역시 만족스러웠다. 돈코츠와 기본 베이스는 동일한듯 하나, 얼큰한 양념과 더불어 땅콩맛이 나는 다짐육과 함께 마무리는 샤프란. 으아닛, 샤프란이라니. 빠에야에나 쓰는 스페인 향신료를 거침없이 얹어두니 이 또한 새롭다. 그러나 맛은 크게 변주 없는 탄탄멘 그 자체. 맵기보다는 땅콩의 고소함이 돈코츠의 구수함과 잘 어우러지는 완성도 높은 라멘이었다. 마무리로 시킨 크림치즈푸딩은 사실 안닌도후쪽에 더 가까워서 놀라웠다. 아마 안닌도후풍 디저트를 현지화 시킨 것 아닌가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서민의 음식 답게 그리 비쌀 필요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충분히 유럽풍이라 놀라운 메뉴들, 이렇게 먹으면서도 인당 10유로도 안 되는 가격에 한 번 더 놀랐다.


- 여러모로 '와 라멘집이 있네? 재밌다 가보자!' 정도로 들른 식당에서 생각 이상으로 만족해서 그런지 스페인의 라멘집은 마냥 이럴 줄 알았다.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 인스턴트로 차려진 만찬 '라멘 하우스'

모든 메뉴가 냉동/가공 식품 조리였던 '라멘 하우스'

- 사그라다 파밀리아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 일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성공적으로 메뉴 델 디아를 먹었지만, 다른 한 번을 라멘집에 도전 해보기로 했다. 마드리드 라멘집이 상당히 괜찮았기에, 바르셀로나도 괜찮겠지 하는 마음이었고 구글 맵 리뷰에서 어떤 한국인이 두 번이나 찾았다는 말에 꽤 하는 곳이다 싶었다. 결과는 망했다.


- 일단 메뉴델디아 가격부터 사악했다. 인당 14유로. 라멘카구라의 수준급 라멘이 인당 10유로 미만인걸 감안하자면, 꽤나 비싼 가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기대했다. 10유로 짜리도 그 정도였으니 14유로면 얼마나 맛있을까, 하고. 그러나 맥주부터 놀라웠다. 스페인인데 왜 하이네켄이야? 최소한 바르셀로나 로컬 맥주라도 나오던가, 그것도 힘들면 그냥 에스트렐라를 갖고오면 된다. 일단 그러려니 하고 교자를 먹어보니 고향만두 느낌이 한가득.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가라아게를 먹어보니 형태를 잃은 용가리치킨이다. 그 만큼 냉동제품을 그대로 가공한 느낌을 벗어 던지지 못한 셈. 그래도 라멘은 괜찮겠지, 하고 받아든 라멘은 상상을 초월한 물건이었다.


- 굳이 비슷한 맛을 찾자면 '히가시후즈 쇼유라면'을 그대로 끓여낸 맛이다. 히가시후즈는 우리나라 인터넷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일본 봉지라면이다. 라멘이 아니다. 봉지라면을 그대로 끓여내어 토핑만 그럴싸하게 얹은 물건이 나와버렸다. 크게 두 가지 특징인데 하나는 먹어도 먹어도 물과 스프가 따로 노는듯한 텁텁함, 다른 하나는 면발에서 느껴지는 꼬불거림과 꼬들거림. 생면이 아닌 건면이며, 스프 역시 물에 가루를 갠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것이다. 최소한 직접 끓이진 않고 업소용을 쓰더라도 공장제 액체 스프를 쓰는 것이 업계의 예의라 생각하는데 얘네는 그런 것도 없다. 아, 여기 바르셀로나였지.


- 마무리로 후식을 시키라는데 뭔가 더 시켜 먹기가 무서웠다. 여러가지 모찌가 있길래 쵸코 모찌를 시켰다. 아예 대놓고 보이는 냉동고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두 개를 툭툭 덜어서는 갖고온다. 차라리 이 쪽은 찹쌀아이스의 맛이 연상되었고, 다행히 그 맛이 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외쳐대며 먹을까 남길까를 고민했지만 사악한 가격이 완식을 가능케했다. 주여.




- 놀랍게도 라멘하우스와 라멘카구라의 구글맵 평점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라멘카구라는 평점 4.5점, 라멘하우스는 평점 4.2점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라멘카구라는 후기가 3,629개, 라멘하우스는 후기 163개다.


https://goo.gl/maps/N4fJ44ADFJS2

https://goo.gl/maps/cs1RRG9Tpas


- 라멘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라멘하우스에 가서는 라멘이 이런건가, 싶어버리는건 아닌가 걱정도 됐지만 오히려 그런 이들이 나중에 라멘카구라에 가서 느낄 충격을 생각하니 그건 그거대로 재밌다. 스페인에서 스페인식으로 영업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라멘이란 무엇인가?'의 본질을 잃지 않은 라멘 카구라. 스페인이니 어떻게 팔아도 이건 라멘으로 보일거야, 라는 식으로 대충 장사했던 라멘 하우스. 한 쪽은 감동을 가득 받고 한 쪽은 실망을 가득 했지만 결국 이번 경험을 통해 느낀 바가 있다면 무슨 일을 하더라도 대충하면 언젠가는 들통난다는 것이다. 마드리드에서 유럽 음식이 아닌 것을 먹고 싶다면, 반드시 라멘 카구라를 가 보자. 한식은 비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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