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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바리스타를 시작한 이유

언젠가 갖게 될 나만의 공간을 위해

by 청년백수 방쿤
KakaoTalk_20250224_122345438_01.jpg 240120-240121 이틀간의 교육 수료 후

- 안녕하세요. 스타벅스 수습 바리스타 베니 입니다. 저번 주에 첫 월급도 받았고, 한 달 정도 지나가는 시점에서 슬슬 매주 연재를 해도 되겠다 싶어서 천천히 글을 열어봅니다. 앞으로의 제 글은 어떠한 정보성을 띄지 않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딱히 자랑을 하지는 않겠으나 누군가에게는 롤모델이 될 수도 있는 그러한 글입니다. 방쿤(=베니)의 스타벅스 도전기를 읽는 여러분에게 다양한 소회가 오고 가겠으나,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그 선택과 결정은 스스로가 지고 나아가야 할 책임이라는 점을 우선 명확히 해 두겠습니다.


KakaoTalk_20250224_122345438.jpg 스타벅스 아카데미 라운지에 있는 대형 컵 구조물

1. 부캐로 스타벅스 바리스타를 시작한 이유

작년 말, 아내와 함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우리가 언제까지 지금 하고 있는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근원적 질문에 도달하였습니다. AI가 대두되며 점차 스스로 원하는 지식과 기술에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 지식 전달자로 활동하는 저나 회사원으로 일하는 아내 모두 왠지 찜찜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 살이라도 젊을때 체력과 시간을 갈아 넣어서 체득할 수 있는 '기술'을 쌓고자 했고 그로 인해 카페에서 일해보는 것을 2025년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다만 나이가 적지 않다보니 동네의 어지간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는 이력서를 읽기만 하고 연락도 오지 않더군요. 왠만한 카페에서는 아마 점장보다도 나이가 많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개인 카페에 가자니,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아쉬운 개인 카페에서는 저 같은 초보는 뽑을리가 없구요. 스타벅스는 상시 채용 페이지가 열려있어서 신세계 인사 페이지에서 집 근처의 스타벅스 매장으로 원서를 냈고, 다행히 그보다 조금 더 멀지만 출퇴근은 어렵지 않은 지점에서 연락이 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2018년 부터 스타벅스 골드 회원이었으며, 왠만한 출장길에는 스타벅스에 먼저 들러 강의 전 업무를 수행하는 등 이미 스타벅스의 충성 고객이었습니다. 어느 매장을 가도 같은 맛의 음료를 비슷한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어서 선호했는데, 교육을 들으면서 스타벅스가 추구하는 '제3의 공간'이라는 가치가 있다는 말에 십분 동의했습니다. 고객으로서 '제3의 공간'이 이제는 바리스타로서 '제2의 공간'이 되겠지만요.




2. 본업과 병행이 가능한가

우선 스타벅스 바리스타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합니다. 1주일에 5시간씩 5일을 출근하는 주25시간형, 주말 이틀 8시간씩 출근하는 주16시간형. 저는 이 중 주25시간 바리스타에 지원해서 합격했습니다. 월-금 일정한 스케쥴이 있는 학생이나 회사원 분들이라면 주말 바리스타를, 그게 아니라 저처럼 프리랜서로 충분히 스케쥴 조율이 가능하다면 주25시간 바리스타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강사 방쿤의 겨울은 대단히 혹독합니다. 대부분의 클라이언트가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인데, 연말-연초는 예산과 인원을 새로이 편성하는 기간이라 뚜렷한 교육이 잡히지 않거든요. 좋은 시기에 스타벅스에 합격했고,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얻은 소소한 수입 역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스타벅스에 출근한 이후로 개인 강의는 총 6회, 외부 강의 4회, 온라인 컨설팅 1회 정도의 본업도 함께 병행했습니다. 3월에도 라디오 방송 출연 4회, 강의 2회가 잡혀 있으며 이후 들어오는 강의들 역시 미리 스케쥴 신청을 해 두면 매장에서도 그에 맞춰 조율해 주시고 있어서 아직은 본업과 함께 병행하는데에 큰 지장은 없습니다.


시급은 최저시급보다 약간 더 많은 편이며 이후 약간의 승진 과정을 거치면 시급이 조금씩 더 오릅니다. 그래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신세계 임직원으로 왠만한 혜택은 다 받을 수 있으니 이후 수습과정을 마치고 나면 어떠한 혜택이 있는지 좀 더 다뤄보겠습니다. 당장은 스타벅스 할인 만으로도 크게 만족 중입니다. 아, 4대보험 직장가입자로 전환된 덕분에 연금보험과 건강보험의 부담도 어느정도 줄었다는점 역시 이득이군요.




KakaoTalk_20250224_122345438_15.jpg 만들어본 음료 중에 가장 뿌듯했던 자바칩 프라푸치노 커스텀 버전

3. 수습은 무슨 일을 하는가

고객으로 겪는 스타벅스와, 직원으로 겪는 스타벅스는 하늘과 땅보다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고객의 시선이 닿지 않는 바 너머와 백룸에서는 매일 전쟁이 벌어지고 있거든요. 수시로 찾아오는 기물 마감과 청소. 부재료의 제조와 그에 맞춘 내부품질기한 태그 달기. 밀려오는 설거지와 다 끝난 설거지를 원래 위치로 가져다 놓기.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가 일하는 매장에는 COW(오늘의 커피)가 제공되지 않아 그 업무는 빠졌습니다. 그래도 언제 어떤 매장에 파견이나 전배를 갈지 모르니 미리미리 알아두어야겠죠.


일단 수습은 지각하지 않고 배운것 까먹지 않으면서 성실하고 친절하게 일하기만 해도 민폐는 아닙니다. 아마 대부분의 스케쥴이 마감으로 잡힐거고, 그러한 마감 중에서도 유일하게 몸으로 떼울 수 있는 청소 업무가 수습의 주요 미션이 됩니다. 화장실이 매장에 있다면 화장실도 청소해야 하고, 계단이 매장에 있다면 계단도 청소해야 하고. 저희 매장은 DT나 리저브는 아니지만 그래도 두 개 층이 있고 화장실도 매장 안에 있어서 마감 업무때 청소할 공간이 조금 더 많은 편입니다. 그래도 하다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빨라지기에 빠르고 정확하게 청소를 마무리 할 수록 다른 일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집니다. 요즘은 아이스빈(얼음통) 마감과 CBS 기물(블렌더 피처/티바나 용기 등)마감, 마스트레나(에스프레소 머신)마감 및 오픈조를 위한 셋팅 등 조금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매일 주어진 업무분장에 맞춰 시간별로 나의 포지션에 맞춰 일을 하게 됩니다. 저도 처음에는 CS업무만 하다가 POS로 진출하고, 부재료 및 내부품질기한 테스트를 통과한 후 BAR 테스트도 합격 목전에 두고 있어서 하루에 일부 시간은 BAR에서 시프트(그 시간대 리더 포지션)분과 함께 음료를 만들기도 합니다. 스타벅스에서의 인력배치는 대체로 '이 인원들이 핸드폰 볼 시간도 없이 움직일때 매끄럽게 돌아가는 수준'이기에 일하는 다섯시간 동안은 말 그대로 디지털 디톡스 까지 됩니다. 매일 30분의 브레이크 타임이 주어지며, 브레이크 타임 만큼은 칼같이 지켜집니다. 설거지 하다가도 시간되면 고무장갑 벗고 쉬러 갑니다. 포지션 및 업무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개별적으로 다루어볼까 합니다. 일단은 저도 아직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4. 어떤 사람에게 추천하는가

일단 '시급이 조금 더 센 알바'를 구한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상기 설명한 '타이트 한 인력배치'로 인해 적응하는데 있어서 심신의 압박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타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 식당 서빙, 심지어 과수원에서도 일을 해봤는데 스타벅스에서 일해본 한 달의 업무 강도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다만 내가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 있는 승진의 기회와, 사내에 푸짐하게 마련되어 있는 자가학습의 방법이 존재하는 등 스스로 야망이 있고 카페에서 일하는 것은 물론 고객 만족부터 재고 실사 까지 정말 카페 '운영의 모든 것'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이 곳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한 달 정도 일해보고 감히 말해도 될까 싶지만, 일단 본업과 겸직 가능한 마지노선인 슈퍼 바이저까지는 빠른 시일 내에 올라가서 더욱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일해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의외로 커피 스킬, 특히 에스프레소 샷을 내리는 기술은 코어매장에서는 수련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인류기술의 집합체 마스트레나 II 덕분(...때문?) 입니다. 세 종류의 원두를 호퍼에 담아 두고 기계 하나에서 버튼만 누르면 그에 맞춰서 샷까지 한 번에 뽑아줍니다. 뭐, 나중에 이런 스킬은 필요하면 따로 배우면 되겠죠. 당장은 레시피에 맞춰서 유제품 스팀하고 정확하게 잘 내어 놓는것 부터 열심히 마스터 해야하니까요.




시작 글을 맺으며,

사실 요즘 스타벅스 사내에서도 매일 다양한 불만이 성토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불만은 '인력이 부족하다, 사람이 갈려나간다.' 라는 의견과 더불어 '매장과 소통하지 않는 센터(본사)'에 대한 이야기 같습니다. 다년차 바리스타가 아닌지라 이에 대한 의견을 직접적으로 내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지만 반은 스타벅스에 대한 팬심으로, 반은 미래에 대한 야망으로 버텨냈던 지난 한 달은 적어도 근 5년간 스스로를 돌아봐도 가장 뿌듯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친절함에 대한 고객님의 칭찬 VOC도 한 건 들어왔구요. 함께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들었던 동기 분들도 모두 무사히 한 달을 버텨 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앞으로도 매주 한 개 이상의 글을 남기며 성장기 아닌 성장기를 써볼까 합니다. 30대 후반에 시작한 스타벅스 바리스타, 다른건 모르겠고 포스에 서있는 제 모습이 배불뚝이 아저씨 처럼 보이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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