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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May 31. 2023

사회복지 실습 후기(2)


사람의 직업, 교육 수준, 경제적인 여건 등 살아온 환경은 다 다르지만, 참 공평하게도 누구에게나 늙음과 죽음이 찾아온다. 젊었을 때 잘나갔다고 늙지 않는 것이 아니며, 돈이 많다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그렇게 존경했던, 내가 아는 중에 가장 멋있는 여성 모모요 (예전 글 내 인생의 은인 참고)도 나이가 들고 다쳐서 너무 가여운 모습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을 보면 인생이 대체 뭘까 참 허무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대단한 업적을 이루고 멋지게 살아도 이 세상 떠날 때는 누구나 나약하고 초라해지는 것 같다.




노인 데이케어센터에서 30명 넘는 어르신들을 만나다 보니까 나는 어떤 모습의 노인이 되고 싶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많은 분들 중에서도  유독 정감이 가는 분들이 있고, 어쩐지 비호감인 분들도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예쁨을 받으려면 마음이 따뜻해야 하는 것 같다. 잘난척하는 건 젊었을 때나 늙었을 때나 참 별로다. 돈 자랑하면서 주렁주렁 패물을 하고 오시는 분도 있었고 '나 배운 사람이다'라는 티를 팍팍 내는 분도 있었는데 진짜 정이 안 갔다. 잘난척한다고 존경해 주는 사람은 없는데 그걸 평생 못 깨달으신 걸까나.


내가 정말 좋아했던 분들은 인사성 밝은 분들이었다.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를 표현하시는 분들이 좋았다. 거동이 불편한 것을 미안해하며, 우리 늙은이들을 돌봐줘서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안아드리기도 했다. 말이 많지 않지만 마음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소박한 분들이 나는 좋다. 나도 그렇게 늙고 싶다.




노인 데이케어는 유치원이나 다름없어서 매일 3-4개의 수업 프로그램을 한다. 나이 들면 국영수가 다 뭐니,  예체능밖에 남는 게 없더라. 체조, 스트레칭 같은 체육 수업은 건강에 직결된다 생각해서 어르신들 진짜 열심히 따라 하시고, 노래 교실, 미술 수업도 즐거워하신다. 우리의 심신을 마지막까지 돌볼 수 있는 공부는 예체능인 것 같다. 나도 어릴 때 학교 다니면서는 체육이 그렇게 싫어서 맨날 주번이랑 바꿔 교실에 남을 궁리만 했었는데, 이제는 돈을 내고 운동을 다닌다. 그때도 좀 열심히 할걸. 미술도 이번에 수업 보조를 해보니까 소근육 훈련, 인지 자극 등 다 필요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수업이다. 음악이야 내가 평생 해오면서 정서적 효과를 잘 알고 있고.


한국 교과과정은 예체능을 너무 무시하는데 어리석은 일이다.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고 시간을 보람차게 보내기 위해서 예체능만 한 것이 없다. 어릴 때부터 예체능 소양을 길러놓으면 나이 들어서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다. 음악 전공자로서 '아 내가 너무 쓸데없는 전공을 택한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는데 이번에 좀 위안을 받았다.




재미있는 발견을 했다. 젊었을 때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던 분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늘 책이나 신문을 가지고 다니신다는 것이다. 모모요도 뉴욕타임즈를 매일매일 그렇게 찾았었는데 이번에 데이케어에 계셨던 어떤 남자 어르신도 늘 책을 들고 오시고, 졸으시면서도 항상 신문을 무릎 위에 펼쳐놓고 계셨다. 실제로 그분들이 신문을 얼마나 이해하고 읽으시는지는 모르겠다.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해 정말로 생각하고 읽으신다기보다는 평생 동안 해왔던 지성적인 활동이 습관이 되어서 신문을 펼치는 행위로 나타나는 것 같다.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 중에서. 전직 교장 선생님이었던 주인공이 책을 거꾸로 들고 열심히 읽고 계신다.


나는 어르신들의 그런 모습이 의미 없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이해력이 떨어지신다 해도 글을 즐겨 읽으셨던 모습이 남아있다는 것이 좋다. 나이 들면 많고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가 큰 숙제가 된다. 밖에 나가서 활동할 신체적인 에너지는 떨어질 텐데 그럴 때 TV만 보는 게 아니라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이 보람되게 느껴질 것이다. 실제로 대단한 사고를 해서 보람되다는 게 아니고, 내 시간을 내가 유익하게 보냈다는 자기만족이 된다는 것. 나는 아마도 노트와 펜을 들고 조는 할머니가 되지 않을까 싶다 ㅋㅋ




고운 마음씨를 지니고, 예쁘게 말하며, 내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평생 수련을 해야 늙어서 내 의지가 약해졌을 때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이 평생을 어떻게 사느냐는 결국은 마지막에 어떤 모습으로 지내다 갈 것이냐를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늙고 힘없을 때 비호감 되기 싫으면 지금부터 훈련해야 한다. 사랑받는 노인이 되기 위한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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