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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인분공부 Jul 10. 2022

부동산, 부채, 버블의 경제학

이 책을 한창 편집할 때 스태그플레이션(인플레이션+경기침체)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이 경제 논의의 중심으로 부각하면서 마음이 초조해져 스스로를 다그치며 작업에 몰입한 결과 드디어 지난주 마감하고 이번주 책이 출간되어 서점에 배포되었다.      


부동산과 관련된 도서는 주로 투자자 관점의 재테크서가 많다. 애널리스트나 이코노미스트가 경제 전반을 다루며 부동산 섹터를 비중 있게 분석하기도 한다. 이 책은 정통경제학을 전공하고 경제연구원에서 20여 년 넘게 재직한 이코노미스트가 부동산 경제학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책이다. 금융 교육과 연구 활동을 펼치는 금융의창 박덕배 대표는 한국수출입은행을 거쳐 제일금융연구원 연구위원, 하나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은행 금융안정포럼 회원으로 국내외 경제·금융 상황과 대응에 자문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문제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것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약점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부동산가격이 오르면 돈을 벌 기회가 많다. 그들은 돈 벌 기회, 긍정적인 전망에 경도될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가 집필한 책을 읽을 때는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성공법을 다룬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다. 사회과학서는 사회제도를 중시하고, 자기계발서는 개인의 의지를 중시한다. 경제서는 거시경제 환경에 집중하고 재테크서는 예외적 성공에 주목한다. 둘 다 중요하다. 그리고 양자의 차이를 늘 인식해야 한다.      


내 지인 중 한 명은 십여 년 전 부동산 하락론자의 책을 읽고 부동산가격이 떨어질 거라고 여겨 충분한 자금이 있는데도 집을 사지 않았다가 ‘벼락거지’가 되었다고 자조한다. 나는 부동산 하락이나 상승을 단언하는 것은 경제학자로서는 부적절하다고 본다. 누구도 시장을 예측한다고 자신해서는 안 된다. 신념이 너무 강하면 거기에 맞는 데이터를 취사선택하게 된다. 신생 학문으로서 입지가 약했던 경제학은 과학의 한 분야로 인정받으려고 애써왔다. 지금도 경제학이 과학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과학자라면 선입견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한다. 투자자가 이해관계 때문에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도 문제지만, 학자가 소신 때문에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도 문제다.      


이 책은 섣불리 부동산시장을 예측하려고 하지 않는다. 저자는 경제성장률, 물가, 금리 등의 지표를 사용해 수학적으로 분석한 실질가치·내재가치와 주택가격의 괴리를 보여주지만, 주택시장이 버블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거품은 거품이 꺼져야 비로소 거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투자처가 마땅치 않아 계속 규모가 커진 단기부동자금이 자산시장을 옮겨 다니며 급등과 폭락을 불러오는 현실에서 자산시장을 예측하기란 어렵다. 이 책은 수백 개의 그래프를 통해(정말 편집에 품이 많이 드는 책이었다) 경제적 판단의 기초가 되는 각종 지표와 수치들을 그대로 보여주며 독자 스스로 판단하도록 이끈다.      


데이터를 보면 현재의 부동산 급등에는 코로나19에 대응하려는 유동성 확대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드러난다. 2019년까지의 주택가격 급등은 소득 증가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설명된다. 이 책의 데이터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21년까지 가계 처분가능소득은 약 2.5배 상승했다. 그렇다면 주택가격 2.5배 상승은 비교적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상승 시점의 가격은 적정했나도 문제고, 지역에 따른 편차가 워낙 커서 평균 수치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2010년대 중반 나는 4, 5억 수준의 강북 아파트 가격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우리나라 경제가 계속 성장해왔고 소득 수준도 계속 높아졌음을 간과했다. 내 급여가 오르지 않았다고 해서 고소득자가 늘어난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2019년의 부동산가격을 적정가격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다. 2019년 부동산가격은 주춤하거나 지역에 따라서는 하락하는 경우가 있었다. 코로나19 감염병 위기가 발발하지 않았다면, 주택가격은 2019년 수준에서 안정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인 2020년과 2021년에는 전국 대부분 지역의 아파트매매가가 상승했다. 위기라는 것보다 위기 때문에 돈이 풀린다는 것에 열광하며 자산시장에 돈이 몰려들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20년간 전국 아파트매매가는 2.9배, 서울의 아파트매매가는 3.5배, 그중에서도 강남은 3.7배 상승했다. 20년간 비슷하게 상승한 게 아니라 최근에 집중적으로 상승해서 사람들이 체감하는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은 부동산과 금융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는 것이다. 특히 2부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며, 부동산가격 하락이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시켜 금융권의 부실로 이어지며 경제위기를 낳는, ‘가계부채발 복합불황’이 발발하는 메커니즘과 그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탐구했다. 담보대출이 가장 많은 집단은 중산층이다. 가장 위험한 집단은 담보대출, 신용대출을 받아 생활자금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영업자 집단이다. 청년 가구는 자산이 적은데 대출 비중이 높아 역시 위험한 집단이다. 주택가격 하락으로 담보가치도 하락하고 금리가 상승해서 부채 부담이 증가하면, 중산층의 몰락과 자영업자 파산, 청년들의 부담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면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크지 않다.     


3부에서는 인구 변화, 사회경제적 변화에 따른 주택시장의 미래를 다룬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현실을 보면 1인용 주택을 많이 지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1, 2인 소형가구가 가장 많은 곳은 지방의 교외 지역이다. 노인 부부나 독거노인이 사는 시골에 소형주택을 많이 지으면 누가 그 주택들을 구매할까? 서울은 1인 가구 비중이 높지만, 광역시나 신도시는 3, 4인으로 이루어진 다인 가구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높다. 일본에서는 여성 독거노인과 젊은 남성 1인 가구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젊은 여성은 아마도 부모나 친구와 함께 사는 비중이 높으니 그런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추세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서구사회와 일본의 여러 미래 지향형 주택 유형 중 흥미로운 유형은 동호회 형태의 셰어하우스나 코하우징이다. 어차피 나머지 생애를 혼자 살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자전거족이나 고전음악 애호가 등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공유주택에서 사적 공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사교활동과 취미활동을 함께 즐기는 경향이 증가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인구는 감소하고 수도권 집중은 심화되는 한국의 현실에서 향후 주택공급은 신규 택지보다는 재건축을 통해 주로 공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재건축된 아파트가 워낙 적어서 재건축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현재 ‘노후신도시 재생특별법’ 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건설된 지 30년이 된 1기 신도시에, 도시계획에 따른 복잡한 사업절차를 간소하게 적용하고 용도지역·층고제한·용적률·임대주택 의무비율 등 건축규제를 완화해주자는 취지의 법안이다. 1기 신도시 아파트와 비슷한 시기에 입주한 전국 택지지구 아파트 단지도 형평성을 내세워 특별법 적용을 요구할 것이다. 2기 신도시 역시 일찌감치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지금도 재건축 연한을 한참 넘기고도 재건축이 추진되지 않는 아파트가 많다. 사업성이 좋은 아파트도 이런저런 잡음이 많고, 사업성이 나쁜 아파트는 아예 재건축될 가능성이 별로 없다. 노후아파트가 절반 이상이 되면, 재건축 대상이 되는 아파트와 그렇지 않은 아파트는 주택시장을 어떻게 바꿔 놓을까?     


국민연금, 기초연금도 문제지만, 주택연금도 공적 보증기관의 적자를 누적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이 있다고 한다. 주택연금의 리스크는 장수 리스크다. 매달 일정액을 지급하는데, 가입자가 오래 살면 적자가 누적된다. 주택연금은 가입자 사망 후 주택을 처분해서 손익을 확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수익이 남으면 상속자에게 주고, 적자가 발생하면 공적 보증기관의 손실로 누적된다고 한다. 국민연금처럼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초기 가입자에게 지나친 혜택을 준 것인데, 이런 비대칭 방식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인 인구 급증에 따른 재정적자 확대는 우리 사회의 숙명이고 우리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감당할 방책을 모색해야 한다. 주택연금 수익구조 개선도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 중 하나다. 여기에 대해 저자는 대안을 제시하는데, 나는 사회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 편집 과정에서 저자와 그 문제에 대해 여러 번 논의하기도 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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