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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름 Jan 04. 2023

오늘은 새해 두 번째 날이니까

새해 첫날은 코감기로 힘들어하는 남편을 챙기며 보냈다. 나는 코감기를 잠시 앓다 금방 나았는데, 남편이 옮아버렸나 보다. 비염이 심해서 더 힘들어하는 걸까, 몇 번이고 코를 풀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걸 보니 죄책감이 더해진다. 삼시 세 끼는 못 해도 아침과 저녁에 찌개를 끓이고 전복과 고기를 구웠다. 틈틈이 십전대보차와 쌍화차를 데워 가져다주니 남편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새해를 이렇게 집에서 보내게 해서 미안해.”

“내가 감기 옮긴 것 같아 미안해.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야. 원래 쉬는 날이잖아.”

“아, 이렇게 집에서 멍하게 보내는 거 싫은데.”

“내일부터 자기 야근해야 할 텐데, 지금 병원에 다녀오는 게 어때?”

“괜찮아. 오늘 하루 잘 쉬면 나을 것 같아.”


간절한 마음으로 방금 커피포트로 데운 뜨거운 물을 보온 주머니에 조심히 담는다. 한껏 불룩해진 물주머니를 남편 배에 올려둔다. ‘제발 낫게 해 주세요.’ 새해 첫날은 그렇게 간절함을 안고 바로 잤어야 했다.


남편이 <더글로리> 축약판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거 재밌을 것 같던데?” 갑자기 드라마에 꽂힌 나는 <더글로리>를 보고야 말았다. 인내심을 발휘해 2화에서 멈췄지만, 어느덧 11시 반이 되었다. ‘아, 내일 미라클 모닝 해야 하는데, 그리고 남편 일찍 재웠어야 하는데.’ 후회하는 마음으로 웹툰은 다음날로 포기하고 잠이 들었다. 


평소엔 쿨쿨 자느라 바쁜데,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일요일을 보내고 나면, 월요일 아침엔 일찍 깬다. 뻐근해진 허리를 풀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고, 중둔근 운동을 하고서 작두콩차를 우린다. 책상에 앉아 이번주부터 처음으로 시작한 영어기사 필사를 하고, 긍정카드의 ‘감사’의 본래 의미를 공책에 적으며, 산뜻한 하루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미라클모닝, 성공!


2022년 12월 31일은 2023년 1월 1일로부터 불과 몇 시간 전이었는데 무한한 시간을 인위적으로 두 동강 내 연도를 달리하는 게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새해엔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이 기세로 쭉 가는 거야.’ 잠시 짬을 내 도서관에 들러 책 몇 권을 빌렸다. ‘아, 이거 언제 다 읽지? 그래도 차근차근해보자!’ 그래, 무엇이라도 이유를 붙여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새해는 희망을 준다.


저녁 준비하는 시간을 줄여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겠다며, 김밥을 샀다. 저녁 먹을 때 잠깐 여유를 즐기겠다며 텔레비전을 켰는데, 아.. 유튜브를 켰어야 했다. 넷플릭스가 아니라. 나는 그렇게 <더글로리>에게 소중한 저녁 시간을 헌납해버린 것이다. 하하하.


시침이 놓인 자리를 보고 놀란 마음에 부지런히 글을 써 본다. ‘생각보다 효율적인데?’ 새해가 된다고 갑자기 의지력이 샘솟진 않나 보다. 하지만, 남은 저녁이라도 뿌듯하게 보내야겠다. 새로운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을 저버리기엔 아직 새해 두 번째 날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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