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을 안다고 착각하는 아이를 위해
자녀가 어떤 과목을 공부하더라도 항상 강조되는 것이 '개념 형성'이다. 모든 공부는 누군가의 설명을 듣거나 글을 읽어서 개념을 이해한 후 그 개념의 확고한 형성을 위해 연습을 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초4 과학 2) 지층과 화석 단원에서 '화석이란 오랜 옛날에 살았던 동물이나 식물의 몸체나 흔적이 암석이나 지층 속에 남아 있는 것' 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아이들은 이미 한번 쯤은 화석을 본 적이 있으므로 화석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박물관에 전시된 삼엽충 화석은 화석의 한 사례일 뿐이다. 개념은 추상적인 것이므로 글로 읽어 형성해야 한다. 그래서 개념을 정의한 문장에 포함된 키워드들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석이란,
1) 오랜 옛날 - 지질시대를 말하는데 이 말이 초등생에게는 어려우므로 오랜 옛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2) 살았던 - 실제로 살았어야 한다. 용이나 유니콘 같이 상상속의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다.
3) 동물이나 식물 - 삼엽충 같은 동물 뿐만 아니라 고사리 같은 식물도 포함된다.
4) 몸체나 흔적 - 몸체뿐만 아니라 공룡 발자국이나 곤충이 지나간 흔적 같은 것도 포함된다.
5) 암석이나 지층 속 - 화석이 형성되어 발견되는 곳은 암석이나 지층 속이다.
6) 남아 있는 것 - 현재 기준으로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에게 화석의 정의를 읽을 때 온 우주 만물 중에서 시작하라고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 오랜 옛날 살았던 동식물로 한정시키고, 그중에서 그것들의 몸체나 흔적으로 다시 한정시키고, 그 중에서 암석이나 지층 속에 남아 있는 것들로 한정시키는 것이다. 마치 카메라 렌즈가 온 우주 만물을 줌-아웃하여 잡고 있다가 점점 화석으로 줌-인하듯 대상으로 좁혀지는 것이다. 정의 속에 나온 키워드들은 개념의 경계를 명확하게 짓는데 사용된다. 경계가 명확할 수록 개념은 명확해지고, 화석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정의를 통해 개념을 어느 정도 형성했으면 문제를 풀어서 이를 확인한다. 좀 쉬운 문제로는 다음 중 화석이 아닌 것은? 이라고 묻고 화석 사진 몇 장과 고인돌 사진을 보여준다. 아니면 토기 사진, 아니면 사람 신발 자국을 보여준다. 개념이 좀 덜 형성된 아이들이라도 고인돌이 답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신발 자국을 공룡 발자국처럼 화석이라고 생각하진 않겠지?
좀 어려운 문제에서는 1) 공룡 뼈 2) 새의 발자국 3) 공룡의 배설물 4) 조개가 판 구멍 5) 화산재에 덮인 사람이 보기로 나온다. 개념 중 '몸체나 흔적' 키워드에 속하지 않는 것을 알아내야 한다. 일단 1,2,5는 확실하게 화석이고, 3,4 중에서 화석이 아닌 것이 있다. 배설물과 구멍 중 '몸체나 흔적'에 속하지 않는 것을 고르면 된다.
초등생 자녀가 있다면 수학의 도형 단원에서 나오는 '각' 이 무엇인지 물어보라. '같은 점에서 시작된 두 개의 반직선이 이루는 도형' 이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면 잔뜩 칭찬해 주어야 한다. 각은 평면도형 중 열린도형이다. 각을 설명할 때 같은 점(꼭짓점), 2개의 반직선, 도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는 개념이 형성된 아이다.
학교는 찱흙에 조개껍데기를 넣고 꾹 눌러 화석이 형성되는 과정을 알아보는 활동(activity)을 많이 하느라 화석의 개념을 한 글자 한 글자 새겨가며 형성할 시간이 부족하다. 학원은 선행하느라 바쁘고 문제 푸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다면 개념 공부는 부모들이 해줄 수 밖에. 초등 고학년부터 개념들이 마구 나오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아이들과 개념 공부에 공을 좀 들여볼만하다. 집에선 개념에 공들이고, 학교에서 활동으로 배우고, 학원에서 문제를 푼다면 가정교육, 공교육, 사교육의 삼박자가 잘 맞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Photo by Wes Warre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