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치 효심을 끌어모은 여행,
엄마의 정년퇴직 1
엄마는 작년 정년퇴직을 하셨다.
'여자도 자기 일이 있어야 해. 그래야 자기가 결정하는 삶을 살 수 있어'라는 말씀을 최초로 들었던 때가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전부터 말씀하셨을 수도 있지만 내 머릿속에 그 말이 자리 잡게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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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토요일은 말만 주말일 뿐이지, 절반쯤은 평일과 같았다. 직장인의 토요일 근무는 당연했고, 초중고교 학생들의 토요일 수업도 당연했던 시절이었다.
유일하게 당시 유치원생이었던 동생만 토요일에 쉬었다.
우리 가족은 '월화수목금' 아침, 비슷한 시간에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집을 떠났다. 부모님은 직장으로, 나는 학교로, 동생은 유치원으로...
그런데 토요일만은 달랐다. 가족 중 동생만 토요일에 덩그러니 갈 곳을 잃었다.
대부분은 엄마가 토요일 오전만 동생을 어딘가에 맡기거나 업무시간을 조정했다. 동생을 맡긴 곳은 교육기관은 아니었던 것 같고 전업주부인 이웃 아주머니의 집이었던 것 같다.
이웃 아주머니가 맡아주실 수 없는 경우에는 근무시간을 조정해서 오전에는 엄마가 집에서 동생을 데리고 있다가, 내가 토요일 오전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면 엄마는 동생을 나에게 맡기고 오후에 직장에 가셨다.
나는 항상 토요일 오후에 동생을 챙겨야 한다는 불만이 있었다. 친구들의 생일파티는 항상 토요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동생이니까 토요일 오후에는 전적으로 내가 챙겼다.
정말 친한 친구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고 싶을 때는 친구에게 허락을 받아 동생까지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건 당일은 토요일에 이웃 아주머니도 동생을 맡아주실 수 없고, 엄마의 직장은 너무 바빠서 꼭 토요일 아침 일찍 출근을 했어야만 했었다.(아빠 직장은 더 바빴던 것 같다.)
엄마는 동생을 토요일 오전 4시간 동안 집에 혼자 두기로 결정했고, 전날 밤늦게까지 각종 간식을 준비해 놓으셨다.
그저 내가 학교에 간 오전 4시간 동안 동생이 혼자 잘 버티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그날은 내가 등교하기도 한참 전에 부모님은 이미 출근하셨고, 엄마는 동생이 울더라도 집에 두고 꼭 학교에 가라고 당부하셨다.
(동생도 1주일 내내 토요일 오전에 혼자 만화영화 보고 간식 먹으면서 누나 기다리라고, 엄마에게 충분히 교육을 받았었다.)
그러나 역시나 6살 떼쟁이 내 동생은 복도, 계단까지 따라 나와서 등교하는 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정말 말 그대로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놓지 않아서 바지가 벗겨질 뻔했다) 못 가게 막았다.
동생의 울음소리는 아파트 복도와 계단을 통해 퍼졌고, 한 집 씩 현관문을 열고 나와서는 9살인 나와 6살인 동생에게 짜증을 냈다.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았던 어떤 아저씨는 자다가 나와서는 "아침부터 재수 없게 우는 소리야!? 네 동생 입 닫게 해!!"라고 소리를 질렀고, 또 다른 집 아줌마는 바빠서 전화를 받을 리 없는 엄마한테 얼른 전화해 보라고 재촉했다.
또 다른 집 아줌마는 본인이 10시에 어디 가야 하긴 하는데, 1시간 남짓이라도 맡아줄까? 물어보기도 했으나 잘 모르는 사람에게 동생을 맡기는 건 불안해서 나도 같이 엉엉 울다가 그냥 학교를 안 가기로 하고 동생과 같이 집에 들어갔다.
내가 학교에 가지 않는다고 가방을 내려놓고 집에 들어가자, 거짓말처럼 동생은 울음을 뚝 그쳤고 혼자 만화 비디오를 틀어서 본다든지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마치 내가 없어도 되는 것처럼 혼자 잘 놀았다.
오전 내내 동생을 걱정했던 엄마는 점심시간 전에 집에 잠깐 들렀고, 학교에 있어야 할 내가 집에 있는 것을 보자 나를 혼내기 시작했다. 우리 부모님은 공부를 잘하는 것만큼이나 개근을 중요시하셨던 분들이었다.
나는 동생이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못 가게 해서 학교에 못 갔다고 이실직고했으나 엄마는 그래도 떼어놓고 갔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학교에 가라고 하셨다.
지금 학교에 간다면 4교시일 테고, 한 20분 뒤에 종례를 할 것 같지만 엄마가 무서워서 일단 학교에 갔다.
그러나 학교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운동장에서 신나게 체육을 하는 반 친구들과 선생님을 먼발치에서 지켜만 봤고, 10분쯤 지났을까? 나는 그대로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엄마께는 막상 학교에 가보니까 수업이 끝나고 아무도 없어서 그냥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는 또 한 번 엉엉 울었다.
"나도 학교 가고 싶은데, 나는 체육을 제일 좋아해서 토요일은 학교 가고 싶은 날인데, 동생이 학교를 못 가게 막아서 내가 제일 속상해. 엄마 말대로 동생을 집에 두고 나왔는데 아파트 복도, 계단까지 따라 나와서 시끄럽게 울고, 내 바지를 붙잡고 안 놔줘서 못 간 거야. 그리고 울음소리 시끄럽다고 다른 집 아줌마 아저씨들이 나와서 우리한테 소리 지르고... 얘는 더 크게 울고 그래서 나도 무서웠어."
그러고 나서 엄마는 왜 다른 아줌마들처럼 집에 있지 않냐, 나는 토요일마다 친구 생일파티도 못 가고 속상하다고 봇물 터지듯 속상함을 쏟아냈다.
대부분 기억이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 봐도 그때 엄마는 나를 마냥 달래주지 않았다. 어찌 됐든 학교에 가지 않은 나를 제일 먼저 혼냈고, 엄마가 일러둔 대로 동생이 울더라도 놔두고 학교에 갔어야 했다고 했다.
내 친구들의 엄마들처럼 왜 집에 없냐는 말에는 단호하게 '여자도 자기 일이 있어야 해. 그래야 자기가 결정하는 삶을 살 수 있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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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서 그날 그 말을 처음 들은 건지, 아니면 충격적인 사건의 트라우마처럼 저 대사도 같이 새겨진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뒤로도 엄마는 종종 엄마 세대도 그렇지만 특히나 너의 세대에는 여자도 남자처럼 본인의 직업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렇게 나의 어린 시절부터 20대, 30대에 걸쳐 저 말씀을 자주 하셨고, 본보기로 본인이 정년퇴직을 하시면서 그 말을 지키셨다.
내 기억이 맞다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딸에게 하셨던 말씀을 본인이 직접 지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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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나는 엄마를 존경한다. 특히 내가 한 직장을 진득하게 다니지 못하고,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면서 더더욱 엄마가 존경스러웠다.
그런 엄마가 작년에 정년퇴직을 했다.
이유와 계기는 다양하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몇 년 전부터 엄마와의 유럽여행을 계획해 왔다.
엄마와 나, 둘 다 최소 1주일 즈음 휴가를 낼 수 있을 시기가 언제일까 맞춰보다가 엄마는 정년퇴직 이후, 나는 회사 프로젝트가 끝나는 3월 말쯤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올해 3월 30일, 엄마를 모시고 이탈리아 로마로 떠났다.
부활절 주간이었던 이탈리아 로마를 시작으로 피렌체, 친퀘테레와 피사, 스위스 인터라켄, 루체른, 베른을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무리했던 여행,
약 15년의 여행력과 35년 치 효심을 쏟아부었던 일명 "김여사의 정년퇴직 축하여행"
(결과적으로는 엄마가 경비를 더 많이 부담했던, 정말 효心만 가득했던 여행)
즐거웠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속상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던
우리의 2주간 유럽여행 이야기가
엄마와의 여행을 고민하고 있을 어느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
이 세상에 행복한 엄마가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