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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린 Oct 01. 2021

삶은 땅콩 Life is peanut

땅콩을 삶아먹은 이야기

누가 내게 '너는 무엇을 잘하냐'라고 묻길래,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음식을 감사히, 맛있게 먹는 것을 잘한다.'라고 답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걸수록 짙은 기억이 많으니까, 더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겠다-


그러니 맛에 대한 기록을 써보자.


 타자는 바로 삶은 땅콩. 내겐 진한 기억을 남긴 음식인데, 알고 보니 경상도에서만 먹는다고 하더라고? (이외에도 늙은 호박전, 김밥전, 콩잎지 등.. 차근차근 적어볼 예정) 이 멋짐을 알리고자 삶은 땅콩에 대한 글을 써본다.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삶은 땅콩. 삶은 땅콩을 먹기 위해선 시중에 파는 볶은 땅콩이 아니라 생땅콩을 구해야 한다. 생땅콩은 수확시기에만 만날 수 있으므로 9월 말에서 10월 초에만 볼 수 있는 귀한 아이다.

엄마가 한 냄비 가득 쪄놓으면 냄비째 식혔다가 마루에서 다 같이 까먹었다. 단단한 땅콩 껍데기를 손톱으로 쪼개면 그 사이로 말랑하고 하얀 땅콩 알맹이가 나왔다. 껍데기를 그릇에 쌓다 보면 냄비째 삶은 땅콩보다 껍데기가 더 높게 쌓여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생땅콩을 찾아보기 힘들어 그런지 먹기가 쉽지 않다.

전에는 '볶은 땅콩이 좋아, 삶은 땅콩이 좋아?' 하는 질문에 고민했다면 요즘은 무조건 생땅콩이다. 볶은 땅콩은 계속 먹다 보면 깔깔하고 느끼한 맛이 올라하는가 하면 삶은 땅콩은 부드럽고 살캉살캉하고 고소한 맛이다. 팥이나 콩처럼 부드럽게 으깨지는 게 아니라 입자가 살아있으면서 아삭한 식감인데, 이게 흡입하게 되는 요인이다. 물리지 않고 계속 먹게 된다. 무엇보다 시중에 볶은 땅콩은 많아도 삶은 땅콩은 많지 않으니, 더 귀하게 느껴져서다.

생땅콩은 찌는 방법이 있고 삶는 방법이 있다. 찌게 되면 물기를 덜 먹고 꼬들 살캉한 맛이 좋고, 삶게 되면 물에 소금을 한 숟갈 넣어 간간하게 간해 먹을 수 있어 좋은데, 짭쫄 달달한 맛이 난다. 껍데기를 까면 나오는 땅콩을 둘러싼 얇은 껍질. 볶은 땅콩은 손으로 바스락하며 없애지만 삶은 땅콩은 껍질을 그냥 먹는데, 요 껍질이 오히려 씹을 때 일체감을 더해준다. 그렇게 쏙쏙 빼먹다 보면 20개 정도는 금방 사라진다. 깐 땅콩을 금방 입에 쇽 넣어야지 잔뜩 까놓고 보관해먹으면 또 맛이 안 산다. 역시나 제일 맛난 건 엄마가 까주는 땅콩이다.


생땅콩 1kg를 주문해 개수대에 넣고 흙을 복작복작 씻어냈다가, 물에 소금을 넣고 20분 삶아 솥째로 식혔다. 식히면서 소금기 도는 물에 땅콩이 간이 밴다. 넉넉히 다섯 줌 정도는 금방 먹을 양으로 빼두고, 나머지는 냉동실에 보관해놨는데 더할 나위 없이 뿌듯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이때만 먹을 수 있는 땅콩이 냉동실에 있다니. 느그집엔 이거 없지 - (  ͡° ͜ʖ ͡° ) 하는 마음이랄까.

살짝 데워서 두고두고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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