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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린 Oct 30. 2021

가을과 겨울 사이

나는 물건을 오래도록 쓰는, 정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새해가 낯선 사람이다.


초등학교 적 알림장을 쓸 때도 새해가 되면 공연히 지난해의 연도를 여러 번 써보곤 했다. 이제 다시는 이 숫자를 쓸 수 없다 - 소리 없는 글자에 괜한 뭉클함과 애틋함이 깃들어서는. 그렇게 2003년을, 2009년을, 2017년을, 2020년을 덧없이 적어 내렸다. 매해 3월쯤 되어서야 숫자를 틀리지 않았으며 눈에 익었던 건 6월, 7월쯤, 그러고 드디어 새해와 친해졌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은 한 해가 반은 훌쩍 지나고 난 후였다. 보낼 때가 되어서야 소중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를 보내고 맞이할 준비가 항상 되어있지 못한 나는 이 계절이 오면 마음이 내내 울렁거렸다. 한층 자랐다고도, 혹은 저물어간다고도 말할 수 있기에 한 마디로 정리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품고 지낸다.


살랑한 봄보다, 후텁한 여름보다, 선선한 가을보다 좀 더 움츠러드는 가을과 겨울 사이의 날씨가 좋다. 추위를 좋아해서기도 하지만 또한 따뜻함을 좋아해서기도 하다. 더운 여름에 따뜻함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우린 추워야만 따뜻함을 원하게 된다. 미미한 온기 하나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찬바람을 맞고서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서로가 부둥켜안아야만 하는 날씨던가. 포근하기보다 쌉싸름하게 느껴지는 온도, 그 적당한 날카로움이 흐물흐물해진 마음을 단단하고 선명하게 한다. 머리가 맑아지고 이내 생각이 도드라지면 - 곳곳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엊그제 차 안에서는 Lily Allen, 의 노래가 나왔고 밤길을 거닐다가는 가로등의 빛이 반짝, 거렸고 상점 문을 열고 들어갈 때의 종소리, 딸랑 어서 오세요- 하는 말소리를 들었고 물기에 젖은 도로를 걸어갈 때 신발 굽에서 투벅투벅, 투벅투벅인지 두걱두걱인지 모를 소리를. 내내 듣고 싶었다.


처음 혼자 서울에 왔을 때의 날씨도 쌀쌀해서 두 손을 주머니에 꽈악, 웅크리고 있었지. 테이스티로드에 나왔던 컵케이크 가게를 가기 위해 하릴없이 골목길을 맴돌다 마주한 건물들, 도로,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이 낯설게 보였지만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건 볼이 살짝 얼얼해지는 추위와, 머리 위로 영롱하게 반짝이던 가로등 불빛이었다. 굳이 기억을 더듬어 내려하지 않아도 엊그제와, 여러 해 전과, 아주 어릴 때의 기억이 모두 엮여 하나가 된 실타래처럼 뭉텅이로 쏟아져 나온다.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을 알고 있었다. 마치 다 내 안에 있었던 듯이. 이 순간들을 많이 그리워했다는 걸, 잊고 살다가 이 계절이 와서야 깨닫는다. 이내 익숙해질 것을 알기에 낯설어도 반가웠을까. 반짝였을까. 영롱했을까.


세상이 참 아름답구나야

탄성을 내지르며 골목길을 헤매듯이


이내 또 한 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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