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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Nov 22. 2023

대서양과 지중해의 길목에 서다(4)

죽어가던 열정 세포에 인공호흡을 해준 여정

발표라 하면 연단 위 노트북과 정면에, 발표 화면이 동시에 뜨는 게 보통이다. 발표자에 따라 노트북에 대본 보기 기능을 해놔서 거기에 적힌 대본을 읽거나 참고하면서 발표를 이어나간다. 스티브 잡스 따라 하기라는 발표법이 한 때 유행했으나 본인이 스티브 잡스가 아닌데 아무리 따라 해 봤자 이 생애는 어림없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나는 주최 측에 PPT 파일이 아닌 PDF 파일을 보내놨던 것이다. PDF 파일은 줌으로 비대면 회의를 할 때 다음 화면으로 빨리빨리 넘어가는 장점이 있지만 대본 보기 기능은 없다. 이걸 발표 당일 아침에야 알았던 것이다. 연단에 섰더니 내 앞 노트북은 깜깜이 화면이 되고 청중이 보는 정면의 대형 스크린에만 발표자료가 떴다.


만일을 위해 PPT 파일도 심어 놓질 않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애초부터 자연스레 청중과 교감하며 발표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연단에 선채 목을 돌려 대형 화면을 보면서 발표하기에는 목도 아프고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울 듯했다. 결국 나는 UN 뉴욕 수장에게 청중 쪽으로 내려가서 이리저리 오가면서 말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당연히 편할 대로 마음껏 해도 된단다. 우리 같았으면 당황해서 이리저리 만져보고 PPT 파일이 없냐고 다그칠 만도 하지만 여기는 자유로움이 가득한 서양이었다. 티타임이 되어도 언제 몇 시에 다시 시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바깥에 마련된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앉아서 쉬다가 하나둘 들어오면 그 분위기에 맞추어 회의를 다시 했다. 그럼에도 전혀 지장이 없을 만큼 묵언 속의 질서가 보였다.


ㄷ자 모양의 청중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화면마다 되뇌었던 시나리오대로 최대한 자연스레 발표를 하였다. 나는 우리말 발표도 그렇지만 준비한 만큼 절대로 내놓지 못한다. 삼분의 이 정도 발휘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베스트는 아니었지만 십여 분 발표 시간에 내용 전달도 무난하게 마쳤다. 한국 측 발표가 다 끝난 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UN 인천 사무국 수장께서 잘 이끌어주셔서 별 탈 없이 마무리하였다. 그렇게 우리 측의 발표를 마쳤다. 그 후 온라인으로 발표한 우리 측과 모로코 측, 그리고 유럽과 모로코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 기업의 사례까지 다양한 영역의 인사들이 발표를 했고 의견이 오갔다.


모로코 탕헤르에서의 마지막 아침


내가 깜이집사임을 수시로 일깨워준 현지 냥이들. 그런 냥이를 신성시하며 어느 곳이든 출입을 허락해 주는 모로코 사람들. 나는 이들에게서 사람다움을 느꼈다.


금요일 오후 두 시 반이 넘은 시간에 사흘에 걸친 워크숍이 마무리되었다. UN 뉴욕 관계자는 이번에도 또 나에게 마무리 멘트를 해달라고 했다. 모로코 탕헤르가 대서양과 지중해를 잇는 가교이듯, 이번 워크숍도 모로코와 한국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징검다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을 꺼냈다. 워크숍의 마무리 발언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모로코는 금요일 휴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래 금요일 오후 시간에 업체 현장 방문을 하고자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나 보다. UN과 모로코 측 담당자들 간 논의 끝에, 한국 측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과 함께 대서양과 지중해 길목을 한번 둘러보기로 했다. 오후 네 시 모로코 정부부처 쪽에서 차량 세 대를 가져왔다.


그중 한 대에서 내린 핫싼이라는 모로코 공무원이 우리 세명에게 오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를 청한다.


"안녕하세요. 0000에서 오셨죠? 저도 옛날에 0000에서 연수를 받았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멀뚱하게 있으니 핫싼이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꾸깃꾸깃하고 누렇게 변했다. 왼쪽에는 모로코 정부 문양이, 오른쪽에는 우리 기관 로고가 찍혀있다. 2011년 북아프리카 공무원 연수였는데 한국에서 3주를 머물렀다고 한다. 0000에서 연수도 시켜주고 이곳저곳 문화 체험과 현장 시찰을 한 게 지금도 인상이 깊단다. 그때를 잊지 않고 이곳까지 차를 몰로 나와준 핫싼을 보니 짠했다. 핫싼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내가 그 당시 연수를 담당하지도 핫싼을 만난 적도 없지만 기관이 주었던 호의 때문에 개인들이 덕을 보는 셈이다. 우리들의 방문을 모른 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때의 도움을 잊지 않고 차를 몰로 나와준 핫싼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자신은 핫싼의 차를 타고 싶다는 UN 뉴욕 수장의 눈치 없는 너스레에 다들 한바탕 웃고, 우리 일행 셋은 아네스의 차를 탔다. 아네스는 모로코 수리부 산하 직원이었는데 중국과 태국 파견되어 전문가 자격으로 몇 달 근무한 적이 있어서 동양 문화에 대해 호의적이었다. 그의 차를 타고 내달리는 해안 경치에 나는 이미 취했다. 거리에 신호등이 왜 없냐는 질문에 탕헤르는 회전교차로가 잘 되어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스페인에서 모로코 탕헤르로 오는 항해길은 두 곳인데 한 시간 남짓도 안 되어, 주말에 탕헤르에 놀러 오는 유럽인들도 많다고 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유튜브로 강남스타일을 켜고 따라 부르며 서로 깔깔거렸다.  


대서양과 지중해의 길목을 바라보는 스폿은 여럿이라고 하지만 압권은 캅 스파르텔(Cap Spartel) 전망대와, 대서양과 지중해를 나누는 푯말이 세워진 곳이었다. 여느 해안가와 다르지 않았지만 왼쪽 대서양과 오른쪽 지중해의 길목에 내가 서있다고 하니 괴력을 지닌 헤라클레스처럼 득의양양해졌다. 대서양 왼쪽으로 항해해 가면 아메리카와 남미 대륙이 나오고, 지중해를 따라 들어가면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문명을 만나게 된다. 내 몸 누울 쪽방에 나무 걸상 하나, 책만 있으면 세계가 내 발 밑에 있다고 누가 그랬지만, 이곳을 밟으니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넘어 세상을 향한 사통팔달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말은 이런 곳에서 제격인가 보다.


모로코 국왕의 별장. 모로코의 수도는 라밧이지만, 주요 휴양지는 이곳 탕헤르라고 한다.
구름과 파도는 어느 한시도 그대로이지 않다. 세상도 인간도 그렇다
언덕 오른쪽이 지중해로 넘어가는 관문이다
왼쪽은 대서양, 오른쪽은 지중해. 여느 해안가 푯말과 다르지 않지만 왠지 스케일에 압도된다.
구름이 대서양의 바닷물을 흠뻑 들이마신 채 비를 뿌리며 다가온다
살짝 비를 뿌리고 어느새 갠 해안가. 모로코 민트차를 마시며 석양을 바라본다
염소 떼를 끌고 해안 도로를 걷는 목동


아침저녁도 아니고, 한두 시간 내에도 대서양의 구름 떼는 몇 번이고 변한다. 대서양의 잔잔한 물결은 지중해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르면 맹렬하게 바뀐다. 저 멀리 보이는 이베리아 반도 끝의 지브롤터 해협은 스페인과 영국, 모로코 간 영유권 분쟁 중이다. 가수 함중아가 부른 '카스바의 여인'이라는 트로트 노래 속의 카스바(Kasbah)는 바로 이곳 북아프리카의 성벽 요새를 칭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다. '카스바의 여인'은 주야장천 불러댔으면서도 카스바를 재즈바 수준의 술집으로만 알았던 내 모습이 창피했다. 검색만 했더라면 알찬 지식이 되었으련만 모든 지식이 손안에 있는 시대에 나는 오히려 게으름뱅이였다.


이렇게 세상 이야기는 끝이 없다. 책이 담지 못한 이야기들은 또 얼마나 될까?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볼거리와 먹을거리, 숨겨진 스토리가 있을까. 여기에 담긴 사람들의 피와 눈물과 애환은 또 어떻고. 우리는 세상 모든 걸 다 알지 못한 채 지구를 떠난다. 다 알 필요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세상이다. 모든 걸 다 아는 양, 나의 생각과 지식이 다인 양 잰 채하는 사람들을 경계할 뿐이다. 해안가 바위에 철썩 부딪치는 파도 소리가 강하고 약하게 귀에 꽂힌다. 막 왔을 때는 그렇게 청명하던 하늘이 한 시간 만에 비를 뿌릴 만큼 변덕스럽다. 계획은 변화를 못 따라간다는 말이 새삼 와닿는 순간이었다. 모른다 나는 모른다, 겸손하자 또 겸손하자며 나를 다그쳤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며 늙으면 죽는다는 점 빼고 확실한 사실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겠다. 숨 쉬고 의미 있는 생각을 하는 건 오직 살아있는 자들의 특권이다. 건강하고 깨어있겠다. 열린 마음을 갖되 가리면서 받아들이겠다. 오랫동안 무기력했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죽어가던 열정 세포에 인공호흡을 해준 여정이었다. 내게 또 다른  도전을 꿈꾸게 해주면서.


끝.



* 이 글에 나온 장소 등에 대한 필자의 묘사는 사전 지식 없이 현지에서 듣고 경험한 바탕 위에서 쓴 지극히 사적인 감상입니다. 사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양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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