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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이집사 Oct 04. 2023

너만이 나에게 왔다

스물여덟 살 '청냥'과의 한 끗 차 인연

2023년 9월 30일. 블랫캣 깜이와 함께 산 지 정확히 3년이 흘렀다. 추석이기도 하고 자축할 겸 깜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간식인 츄릅을 잔뜩 사서 먹였다. 지독하게 더웠던 지난 8월 초, 가족 여행을 갔던 2박 3일간 한증막이었을 집에서 혼자 꿋꿋하게 버텼던 녀석이다.


막 데리고 들어왔을 때 크기가 500ml 삼다수병보다 작았던 녀석이 이제는 갓 태어난 호랑이 새끼만큼 컸다. 무게도 300g에서 7kg 가까이 나간다. 만 세 살이 된 고양이는 인간 나이로 치면 스물여덟 살이라고 한다. 에너지가 넘치고 앞길이 창창한 청년, 아니 '청냥'인 셈이다.


유기견, 유기묘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보호자를 만나지 못해 안락사되고 불태워지는 동물들이 넘쳐나는 요즘이다. 태어날 때부터 거리 생활을 하거나 집안에서 사람의 손을 타다가 무정한 인간들의 버림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개와 고양이도 적지 않다.


깜이는 태생부터 '스트릿트 캣'이었다. 인간과 동물이 세상에 태어난 과정은 우연의 연속이라는데, 사람과 동물이 맺는 인연도 그랬다. 동물이 사람과 함께 하냐, 그러지 못하냐는 우연이자 '한 끗' 차이라는 걸. 나와 블랙캣 깜이가 그랬다.


3년 전, 추석이 코앞인 저녁, 장을 보러 아내와 딸과 함께 길을 나섰다. 고등학교 옆을 지나는데 고양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딸이 갑자기 멈췄다. 어두컴컴함 속에서 딸의 시선을 따라가니 고양이 무리가 보였다. 어미와 아빠였을지도 새끼 네다섯 마리가 모여 있다. 딱 봐도 갓 태어나 보인다.


멀뚱히 지켜보는데 딸의 느닷없는 한마디.


"아빠, 고양이 가져가면 안 돼?"


나와 아내가 뭔 소리냐며 대뜸 혼을 냈다.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딸이 떼를 쓰기 시작한다. 도저히 그냥 놔두고 못 가겠며 울음을 짠다. 그러면서 보도블록에 폴싹 주저앉는다.


휴~ 딸 이기는 아빠 없다.


고등학교 옆문 틈으로 슬금슬금 들어갔다. 5미터 앞이나 되었을까. 마음속으로 선을 정했다.


"아무나 와라. 오는 놈 한 마리만 가져간다"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고 냥이들을 계속 지켜만 봤다.


몇 초나 흘렀을까.


어미가 쳐다보는데도, 새끼들 중 두 녀석이 풀숲에 코를 킁킁거리며 내 앞까지 왔다. 그러다 갑자기 불안했는지 뒤돌아선다. 곧바로, 뒤따르던 한 녀석이 뒤뚱거리며 내 발밑까지 왔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CCTV가 비추고 있었다. 이면 도로에서도 훤했다. 마트고 뭐고 없었다. 한 줌도 안 되는 녀석을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집으로 내달렸다. 승강기를 타려고 보니 온통 시커멨다.


들어오자마자 허둥지둥 빈 포도 상자를 찾았다. 안에 보자기를 깔고 녀석을 넣었다. 잔뜩 긴장한 탓인지 움직이지 않았다. 어디에서 밟혔는지 한쪽 귀가 모래 딱지 범벅이었다. 코 끝도 말라비틀어졌으며, 한쪽 눈에는 눈곱이 잔뜩 낀 채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음 날 캑캑거리더니 희멀건 물을 토했다. 몇 차례 계속 그랬다. 죽는 게 아닌지 무서웠다. 접시에 물을 주니 다행히 할짝거리기 시작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동물 병원에 데려갔다. 수의사는 확실히는 모르겠다며, 수컷 같고 태어난 지 한 달쯤 돼 보인다고 했다. 털 안에 곰팡이가 많다고 해서 약을 짓고 샴푸를 사 왔다. 반년 가까이 나만 빼고 온 식구가 얼굴과 팔과 몸에 피부염으로 고생했다. 딸내미 뺨과 귓가가 유독 심했다. 피부과 의사 선생님은 아직도 고양이 안 버렸냐고 갈 때마다 핀잔을 주었다.


5~6개월 때까지는 혼자 정신없이 여기저기 말썽을 부리기 일쑤였다. 특히 새장 속 초롱이를 어떻게 좀 해보려고 틈만 나면 달려들었다. 새장 밖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느닷없이 새장 위로 올라가 발톱을 들이대면 초롱이는 기겁을 하면서 푸다닥거렸다. 본래 깜이가 오기 전까지 새장은 항상 열려 있었다. 초롱이는 주로 딸의 손이나 어깨 위에서 놀았고 자기가 알아서 새장 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냥 관상용 앵무새가 아닌 손노리개 잉꼬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런 초롱이가, 깜이가 오면서 꼼짝없이 철창신세를 진 것이다.


결국 결국 깜이를 '조용히' 처치하기로 아내와 말을 맞췄다. 아이들에게 깜이를 버린다고 대놓고 말하면 절대 가만있지 않고 울고불고 난리를 칠게 뻔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야 했다. 그렇다고 처음 주워온 집 근처 학교 담벼락에 다시 갖다 놓을 순 없고, 도시에서 좀 벗어나 풀과 물이 있는 개천 쪽을 점찍어 뒀다.


토요일 아침 일찍, 애들이 잠든 틈을 타 깜이를 가슴에 안고 승강기 앞까지 살금살금 걸어갔다. 그런데 순간 부리나케 내 품을 뛰쳐나가더니 몸을 벽에 딱 붙인 채 집 문 앞까지 줄행랑쳤다. 품에서 벗어날 때 요놈이 너무 힘을 썼던지 내 목과 팔 쪽이 발톱에 긁혀 피가 보였다. 그땐 미처 몰랐지만, 냥줍 이후 한 번도 문밖으로 나가보지 못한 녀석을 상자에 넣지도 않고 억지로 안고 나가려 했으니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내와 나, 깜이도 서로 너무 준비되지 않은 채 이별하려 한 탓이었다.


어휴. 피부병만이 문제랴. 안마기며 소파며 가죽이란 가죽은 죄다 긁어놓고, 거실로 가면 다리로 달려들어 물어뜯고, 방문도 함부로 못 열어 놓고...


두 달 남짓 된 숯검댕이 밤톨 깜이
게임 천재 깜이
멍 때리는 스물여덟 '청냥' 깜이


깜이와 같이 사는 이유보다 같이 살지 못하는 이유가 스무 가지는 더 많았다. 그러던 중 깜이 처치 사건 이후 며칠이나 지났을까,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접했다. 너무 창피했다. 어쩜 이렇게 미미한 생물들도 인간보다 나은 점이 있나 하고. "에라,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라는 꾸짖음이 그냥 나온 게 아님을 깨달았다.


알면 사랑할 텐데 알려고도 안 했다. 동물 속에서 인간이 보인다는 말에도 공감했다. 깜이 때문에 생겨나는 불편함과 속상함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볼퉁이 피부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쁘다며 자기 동생처럼 시도 때도 없이 깜이를 쓰다듬어 주는 딸의 모습에, 나도 웃음 짓는 때가 많았다. 아들도 깜이와 죽고 못 사는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유튜브를 보며 고양이 특성을 공부하였다. 집안 식구가 오가도 눈길 한 번 안주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게 고양이고, 베란다 밖은 우두커니 쳐다보면서 바깥은 싫어하는 게 영역 동물의 특성이란다. 강아지와 다른 점이 많음을 제대로 알았다. 초등학교 때 고양이 두 마리 옹이와 옹순이 를 쉽게 키웠던 듯싶은데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때의 방법은 그때에나 맞았나 보다  


3년 동안 크게 아픈 적이 없었다. 냥줍하고 두 번, 10개월째에 중성화 수술 말곤 병원 신세를 지지 않았다. 관음죽 같은 화분의 나뭇잎을 질겅거려 가끔씩 고양이 풀 뜯어먹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똑같은 사료를 어찌나 맛나게 씹어 먹는지 건강한 유전자를 타고난 듯하다. 여기저기 긁어 대서 소파 가죽이 남아나지 않고 털 때문에 고생이다. 하지만 잉꼬 초롱이와 함께 우리 집 식구이다. 더군다나 브런치 필명도 녀석에게 빚지고 있지 않은가.


언제 이별을 할지 모른다. 사람도 동물도 모두 죽는다. 불에 타 한 줌의 재가 된다. 피하지 못하는 마지막 경험이다. 키우는 걸 넘어서 함께 사는 동물이다. 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하고 싶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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