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유튜버다. <오분집중>이라는 중국어 학습 플랫폼 주인장이다. 2021.1.11. 에 첫 영상을 올렸으니, 오늘이 만 3년 째다. 채널 대문글은 '5분의 집중과 반복! 중드로 배우는 생생 중국어'. (중드는 중국어 드라마의 줄임말)
말 그대로 오분 동안 영상에 집중해야 한다. 기다림도 자비도 없다. 눈에 힘을 주고, 귀를 쫑긋하며, 입을 벌려야 한다. 손짓 발짓까지 거들면 더할 나위 없다. 누가 이렇게 하고 싶을까. 채널 탄생 때부터 '폭망각'이었다.
그간 매주 한 번 오분 남짓한 콘텐츠를 올려왔다. 지금껏 업로드된 영상 개수는 138개. 영상에 나오는 문장과 설명의 분량을 대충 계산하면, 서점에서 팔리는 중국어 교재 서너 권 분량이다. 영상 하나를 만들어 올리는데 드는 시간은 평균 3시간으로 가성비가 썩 좋지는 않다. 얼굴도 없다. 목소리도 없다. 깨끗한 화질의 중드 영상과 한글 번역, 중문 자막, 간략한 설명만 있다.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쓴다.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 월 구독료가 든다. 중드 영상 내려받기 비용까지 합하면 한 달에 두 끼 밥값정도 나간다.
중년 부부를 다룬 이야기에 더 끌리는 이유는 뭘까
작년 연말을 빼면, 브런치와 블로그와 달리 유튜브는 지금껏 '일주일 1포'를 해왔다. 그렇지만 여전히 플랫폼은 잠잔다. <오분집중>과 유사한 외국어 학습 채널에 가서 구독, 좋아요, 댓글을 전혀 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이유다. 온라인 소통이 없으니 노출이 안 되고 그러다 보니 나만 아는 채널이 되었다.
브런치와 블로그도 그렇지만, 유튜브도 당초 목적은 "내가 하고 싶은 거 맘껏 해보자"였다. 유튜브는 아들과 딸이 조금이라도 재미있고 효과적으로 중국어를 배웠으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스님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고 엄마 아빠가 중국어를 하지만 아들을 동네 중국어 학원을 보냈다. 국영수와 독서를 아들과 집에서 함께 공부했던 상황에서, 중국어 기초부터 생으로 가르치기에는 벅찼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어는 발음과 성조를 철저하고 정확하게 배워야만 나중에 속도가 붙는다. 학원은 당초 두세 달 정도면 족하다 봤다. 그런데 아들이 싫어하지 않았다. 코로나 사태로 자연스럽게 그만두기까지 반년을 학원에 다녔다.
아들이 발음과 성조를 잘 익힌 후에 집에서 하는 중국어는 처음에는 순조로웠다. <중국어 명작동화>나 <엄마표 생활 중국어> 따위의 세이펜 사용이 가능한 책으로 단어와 문장을 아이들과 아내가 같이 읽고 확인해 주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지루해졌다. 학원 교재보다는 괜찮았으나 여전히 실생활에서 쓰이지는 않는 표현이 꽤 많았다. 우리 아이들만큼은 내가 옛날에 배운 방식으로 계속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자신 있게 믿고 활용 가능한 표현을 어떻게 얻을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지루하지 않게 공부할까?"에 대한 답이 바로 <오분집중>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아이들에게 말했다. "중국어는 <오분집중>으로 끝장을 보자"라고. 영상 1편마다 7~10개 정도의 표현이 나오니까 100편이면 1,000개 문장일 거고, 중복되지 않는 1,000여 개의 초급 표현이라면 조금만 응용하면 웬만한 상황에서 듣고 말할 수 있다. 말하는 이의 표정과 말투로 살아있는 중국어를 익히는 건 덤이다.
이렇게 유튜브는 나도 중국어를 계속 공부하고, 아이들에게 살아있는 중국어를 가르쳐보려는 게 목적이었다. 활어(活魚)처럼 팔짝거리는 디지털 콘텐츠를 아이들에게 남겨서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공부하게끔 하려는 욕심도 컸다. 플랫폼 운영으로 파이프라인 구축이라던가 N잡러가 되겠다는 목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유튜브 콘텐츠 제작은 한마디로 상 노가대다. 기획부터 제공까지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 다한다. 요즘엔 빈도가 줄었지만, 나는 십여 년 전부터 현대물 위주의 중드를 즐겨봐 왔다. 콘텐츠로 활용하고픈 작품이 있으면 십 회 정도 유료로 내려받는다(중국 드라마는 보통 전편이 30회가량이다). 내려받은 중드를 다시 보면서 유익하다 싶은 표현을 영상 편집프로그램으로 옮기고 자른다. 사십 분짜리 한편에서 이삼십 개쯤 그물에 걸린다. 건져낸 표현들 중, 다시 버릴 건 버리고 내 나름대로 초급과 중급 수준으로 나눈다. 그런 다음 순서를 정하고 우리말로 해석하고 발음 기호를 달고, 간단한 문화나 문법 설명을 곁들인다. 마지막으로 문장 자동반복 기능을 덮어 씌우면 5분짜리 한편이 완성된다.
오분이지만 강도와 양은 만만치 않다. 중국어 교재에 흔히 나오는 '죽은' 표현이 한 개도 없다. 실제 현대 중국에서 쓰이는 말들이 가득하다. 전부 다 그대로 활용가능하다. 제작 과정은 똑같지만 편마다 내용이 달라서 작업 때마다 신선하고 재미있다. 때문에 어깨와 허리가 뻐근하고 머리를 잔뜩 굴려야 하는 괴로움이 다 덮인다.
모니터가 두 개여도 작업 속도가 두 배가 되진 않는다
아쉽게도 중국어 '노베이스'는 <오분집중>에 접근하기 어렵다. 재미도 없다. 중국어를 배우겠다는 마음이 없다면 세상 무료하기 짝이 없다. 반대로, 신박한 중국어 학습자료를 원하고 학원에서 두세 달 정도 발음과 기초 문법을 배웠다면 <오분집중>만큼 좋은 콘텐츠도 없을 듯싶다.
학원과 학교에서만 배운 중국어로 무장하고 대륙에 가서 공부할 때 겪었던 어려움이 떠오른다. "이 표현이 맞을까?" 하고 머릿속에서 한번 생각한 다음 어렵사리 끄집어내어 말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때는 외국어 콘텐츠도 풍부하지 않았고 SNS도 없었을 때라 그렇다지만 이제는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공짜인 양질의 콘텐츠가 온오프라인에 널려있다. 의지와 노력, 시간만 있으면 꿀꺽꿀꺽 뭐든지 소화할 수 있다.
낡아 빠진 말이지만, 외국어 정복의 지름길은 없다. 아이는 세 살까지 한마디도 못하다가 '엄마'라는 한 마디를 겨우 내뱉는다. 삼 년 가까이 입은 닫혀 있지만 어마무시한 우리말 음성과 어휘가 머릿속에 박힌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빵 터진다. 외국어 공부도 이와 다를 게 없다. 진짜로 눈 감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갈고닦아야 할지도 모른다. 조금씩 천천히 꾸준히 듣고 보고, 보고 듣고, 모르는 걸 익히면서 아는 걸 늘려가는 과정이 바로 외국어 공부겠다. 단순 무식한 인풋과 아웃풋의 반복이 기본이지만,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수단이 곁들여지면 더 좋겠고.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외국어가 들리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결국 의도적인 집중과 반복만이 열쇠다.
매달 돈이 들면 어떻고, 구독자가 181명인 게 무슨 대수인가. 누군가 꾸준히 봐주고 콘텐츠가 쌓이는 데감사할 따름이다. 좋아하는 걸 재미나게 해 나가면 족하다. 남에게 미치는 영향은 보잘것없어도, 내가 성장은 하니까. 끊임 없이 갈고 닦아 외국어잘하는 할아버지로 거듭나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