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에 내려오니 보슬비가 내린다. 컴퓨터를 끄면서 창밖을 슬쩍 봤다면 우산을 가지고 나왔을 텐데 정신이 없었나 보다. 하긴 연이틀 안경을 집에 두고 온 내가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깜박깜박 대마왕' 대열에 들어간 듯하다. 그러면서 글은 또 쓰겠다는 게 갸륵할 뿐이다.
8층으로 다시 올라갈까 하다가 회사로 출근하는 기분이 들어 말았다. 천으로 된 에코백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지하철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피한 곳이 지옥이란 게 이런 말이었나. 종착역에 내리니 그 사이 장대비가 퍼붓는다. 머리만 가리고 갈 일이 아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에 생쥐가 될 게 뻔하고 버스에 내려서도 꼴이 말이 아닐까 싶었다.
비가 어찌나 새찼는지 우산을 든 사람들도 대합실에 적잖게 서있다. 어찌할 까 몇 초 고민고민하다 "내가 몇 살이냐, 체통을 지키자" 하면서 우산을 사기로 마음먹고 대합실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만 원이 넘는 고급 우산을 포함해 우산 몇 종이 있었다. 내 생에 우산을 돈 주고 사본 기억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5,500원을 주고 두 번째로 싼 반투명 우산을 하나 샀다. 비바람을 다 가리진 못 했지만 그럭저럭 쓸 만했다. 바지 밑동과 운동화 속만 젖은 채 집에 왔다.
밖에서 수도 없이 잃어버렸던 우산이다. 지하철에 놓고 내리고, 식당에 두고 오고, 누구에게 빌려줘서 못 받고. 그런데도 회사 기념품이다 선물이다해서 받는 게 많아서 그런 지 가진 게 줄지 않았다. 사무실에 서너 개, 집에는 십수 개가 넘는 우산이 널려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물건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돈 주고 산 게 무척이나 아쉬웠다. 괜히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니 이 우산이 달라 보였다. 사서 쓰고 온 우산을 툭툭 털고 책방으로 가져와 옷걸이 옆에 고이 모셔놨다. 다음번에 이 우산을 다시 쓰겠다면서. 그 후부터 다른 우산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렇게 사람은 자신의 손에 들어온 물건은 들어오지 않았을 때에 비해 심리적 가치를 높게 매긴다. 자신이 소유한 물건은 그렇지 않은 물건에 비해 가치를 높게 치는데 이를 소유 효과(endowment effect)라고 한다. 인간에겐 본능적으로 이러한 성향이 있다. 때문에 자신이 가진 물건에 집착하여 낡아 빠진 중고도 버리지 못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사 온 집 열린 베란다 한쪽을 막아 창고를 만들었다. 사과 상자에 담아 온 책을 쌓아놓기 위해서였다. 아내는 미친 짓이라며 펄쩍 뛰었다. 이사 올 때 진즉 버리지 않고 책을 끌고 온 것도 짜증 나 죽겠는데 뭐 하는 짓이냐고 큰소리다. 이백만 원을 주고 창고를 만들 거면 책을 몽땅 버리거나 돈을 주고 처분이라도 하란다. 코딱지만 한 책방이라 한쪽 벽면과 책상 책꽂이를 차지한 책은 몇 권 되지 못했다. 나머지는 이 집에 살 동안 책장을 넘겨볼 일 없이 사과 상자 속에서 잠자야 할 처지였다. 그럼에도 나는 고집을 부렸다. 이십 대에 미친놈처럼 헌책방을 돌며 사모으고 읽었던 추억들이 책마다 서려있었다. 30~40대도 책을 살 때마다 사연이 있었다. 이런 생각에 휩싸여서 그런지 도저히 책을 버릴 수 없었다. 국어사전부터 영영사전, 영중, 중영사전, 갖가지 전문용어 사전 따위같이, 벽돌책의 우두머리인 종이사전들도 버리지 못하고 쌓아놓았다. 나도 이제는 인터넷 사전에 의존하지만 본전 생각이 나서 버릴 용기가 나질 않는다.
십수 년 고생고생하여 마련한 자가 아파트, 몇 달, 몇 년을 아끼고 아껴 산 자동차나 명품 가방 대한 애착도 마찬가지다. 직장과 거리가 멀고 예산에 따라 마지못해 선택한 곳에서 집을 샀어도, 오래 살다 보면 자신이 사는 동네가 좋다고 생각한다. 아파트 가격이 올라갈 때에 비해 시원하게 내리지 않는 이유이다. 너도나도 내가 사는 집과 지역이 좋다고 생각하니 어쩔 수 없는 급매 상황이 아니라면, 가격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광택을 내고 선팅을 하며 내장 기기를 최고급으로 바꾸면서 차를 애지중지해 온 사람은 중고 시세보다 높게 받으려 한다. 그간 쏟아부은 비용과 노력이 아까워서이다. 도둑놈 심보 아니냐고 욕할지 모르지만 실상이 그렇다.
재밌게도, '막' 자신의 소유가 되거나 '될 뻔 한' 경우에도 사람들은 그 가치를 정상보다 높게 평가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사무실 캐비닛이나 물품 보관 창고를 정리하다가 뜻밖의 횡재를 맞는다. 각 부서별로 제작했던 기념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공책부터 우산, 소형 선풍기, 명함지갑. 포스트잇 등을 나눠 갖는다. 평소에는 관심도 없고 있는지도 몰랐던 기념품들이 빛을 보는 순간 너도나도 거기에 가치를 매긴다. 서무 담당자가 되도록 골고루 나눠주려고 하지만 적게 받거나 아예 받지 못한 직원들은 볼멘소리를 한다.
이케O의 핵심 판매 전략인 직접 조립이나 홈쇼핑의 일주일 무료 사용도 소유효과에 기반한 소비자 유혹 수단에 속한다. 땀 흘리고 고민하며 부속품을 조립하고 망치질해 가며 세운 장롱이나 탁자를 보면 왠지 뿌듯하다. 이건 진짜 내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반납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홈쇼핑에서 보내온 안마기나 온수매트를 일주일 써보고 환불 요청하는 사례도 많지 않다. 가격 대비 성능이 무난하다면 와서 힘들게 설치했는데 다시 기사가 와서 회수해 간다는 생각에 웬만하면 그냥 쓰고 말자며 그 물건을 갖고 만다.
경매 회사도 소비자 머리 위에 있다. 경매가가 나올 때마다 경매 물건은 구매력이 있는 참가자들에게 이미 자신의 것이 된 듯한 착각을 준다. 그러니 다른 참가자가 자기보다 더 높은 경매가를 부르면 손해를 본 것 같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더 높은 경매가를 부르고 다시 또 더 높은 경매가를 부르는 '가격 인플레이션'이 이어진다. 결국 대상 물건은 실제 가치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에 낙찰된다. 이겨 놓고도 진 ‘승자의 저주’에 빠진다.
소유 효과는 내가 지닌 물건에 지나치게 얽매인 나머지 빠지는 비합리적인 현상이다. 아끼는 물건에 대한 애착과 함께 자신의 소유물을 남에게 넘기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하는 심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남 주기 아깝다는 것이다.
수백 년 내려오는 집안의 가보, 엄마가 숨을 거두면서 딸에 손에 끼워 준 금가락지를 돈으로 쉽게 바꿀 수 있을까? 굶어 죽게 된다 해도 팔아치울 마음이 생길까? 이렇게 애착과, 남에게 주기 아까운 마음이 합쳐져 비합리적인 소유효과가 나타난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비합리적이란 뜻은 시장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제적 가치 측면을 말한다. 따라서 목숨과도 바꾸지 못하는 신념이 있다면 소유효과는 합리적 현상이 된다.
결론적으로 소유 효과는 표면 가치 또는 시장 가치는 정해져 있지만 개인마다 물건에 대한 심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물건에만 그런 게 아니다. 사람이나 사고방식에도 소유 효과는 적용된다.
'내 아들이 최고야' 심리가 그것이다. 온라인에서 시어머니 전화에 "여보세요" 했다가 며느리가 혼쭐이 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며느리의 전화받는 태도에 시어머니가 기분이 상했는지 아들과 딸에게 불평한 모양이다.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번호가 저장되어 있는데 어머니 전화를 왜 그렇게 받냐" 하고 물었단다. 이 말에 전화가 오면 '여보세요'라고 받지 뭐라고 받겠냐고 아내가 반문했다는 이야기다. 아들의 대응도 아쉽지만, 시어머니의 머릿속에는 자기 아들이 며느리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이 깊다.
고슴도치도 제 자식이 예쁘다고, 세상 모든 엄마는 자기 아들이 최고다. 아들 '상태'가 어떻든 잘난 아들을 두고 으스대는 성향이 강하다. 21세기 들어 좀 나아진 면이 있지만 여전하다. 시어머니를 불편해하지 않는 며느리가 얼마나 될까? 씨월드 병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바깥일 편하게 하도록 내조 잘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아들 우위 심리다. "열 달 뱃속에 기르다가 힘들게 나서 먹이고 키웠는데 감히 우리 아들을 데려간다고? 내가 얼마나 공을 들여 키운 아들인데 나만큼 아들을 잘 알아? 어디 한번 잘하나 보자!" 등등. 손에 두었던 아들을 남에게 내놓는 거에 대한 불안감이기도, 그간 가졌던 것을 뺏기는 거에 대한 본전 생각이기도 하다. 고부갈등이 사라지기 어려운 까닭이다.
어제의 지식이 오늘은 구식이 되는 세상이다. 기업의 전략도 때와 장소에 맞게 발휘되어야 한다. 자신을 살찌우고 기업을 성장시키는데 데 퍼부은 시간과 노력, 비용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한 번의 성공이 그 다음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10년 전 받은 박사학위 지식으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도 없이 쏟아지는 관련 분야 최신 논문을 읽어내기 어렵다. 기업의 경영 전략도 시시각각 변하는 맥락과 소비자 성향에 맞게 수립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계륵'이라는 고사가 있다. 닭갈비라는 한자어로 ‘별 소용은 없지만 그냥 버리기도 아까운 물건이나 상황’을 말한다. 닭갈비 요리가 흔한 지금과 사뭇 다르지만, 어쨌든 ‘계륵’은 자기가 가지고 있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주기도 아까운 마음이 작용한 결과이다. 소유 효과와 일맥상통한다.
버릴 건 버리고 새롭게 할 건 새롭게 해야 한다. 쥐고 있는 게 만사는 아니다. 채우려면 그만큼 비워야 한다. 세상의 평가와 가치는 끊임없이 바뀌는데, 나는 본전 생각에 사로잡혀 절대 손해보지 않겠단다. 결코 합리적인 행동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