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라이팅: 설탕

망설이는 나를 바라보며

by 천곰

오랜만에 미숫가루를 타 먹으려 설탕통을 꺼내 열었습니다. 설탕을 부울려고 기울었지만 설탕은 옛날처럼 쏟아 나오지 않자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엔 백설처럼 하얬을 텐데, 빛의 입자처럼 곱고 반짝였을 텐데. 지금은 그저 잿가루처럼 텁텁하고 바위처럼 투박한 설탕 덩어리로 남아있구나


설탕을 부울려고 흔들었지만 설탕은 얌전히 쏟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옛날엔 분수처럼 나왔을 텐데, 나오고자 했으면 얼마든지 나왔을 텐데. 지금은 누군가가 흔들어야, 세게 빻아주어야만 나오는구나. 그렇게 부순 설탕이 날아가 부엌의 바닥에 흩뿌려졌을 때 저는 알고 말았습니다.


저 또한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고, 그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설탕이었습니다. 지금은 굳은 설탕입니다. 다시금 통 밖으로 나가기 위해 저를 부숩니다. 엄지손가락으로 누릅니다. 안될 거란 불안에 스스로를 굳혀버린 댓가라는듯 저는 부서집니다, 이리저리 휘둘립니다.


하지만 저는 저를 부숩니다. 이제 다시 반짝이고 싶기에, 이제 그만 쏟아지고 싶기에.

하 근데 저 부엌의 끈적함은 어떻게 치워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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