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내 커리어 장르는 블랙코미디

프롤로그 - 글로벌 코미디 극장, 그 문을 열다.

by 직딩누아르

외국계 기업에 다니면 뭔가 있어 보인다고들 한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글로벌 인재!”

듣기만 해도 번쩍거리는 타이틀 같지만…

실상은? 음, 차라리 리얼타임 스탠딩코미디 극장 무대에 더 가깝다.


내 첫 환상은 영국인에게서 깨졌다.

신사의 나라답게 젠틀하다던 그들은, 직접적이지 않으면서 우회하는 표현법에 결국 괴이하고 그로테스크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그들 저변에 깔린 유럽인 우선주의를 드러낸다.

아니, 차라리 솔직하게 속내를 까던지!


다음은 미국인. 자신감 뿜뿜! 근데 그 자신감의 근거는?

“난 미국인이니까. 끝.”

단순 무식도 이런 단순 무식이 없다.


캐나다인은 친절하다 했는데…

자기네는 미국과 다르다고 선 긋지만, 은근슬쩍 ‘북미 사람’이란 이름표를 달며 휴가 때는 연락두절 1순위이다.


그리고 호주인!

솔직하다고? 아니, 솔직을 넘어서 비속어 겁나 쓰며 고래고래 소리.

“여보세요? 나 아직 안 귀머거리거든요?” 하고 소리치고 싶은 순간이 몇 번이나 왔는지 모른다.


그렇게 각국의 “매력”은 내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고,

그 조각들이 모여 만든 건…

글로벌 비즈니스가 아니라 글로벌 블랙코미디극장이었다.


나는 올해로 15년 넘게 외국계 회사 경력을 가진 커리어인이다.

명함에는 ‘Senior Marketing Manager ’ 영어 직함이 박혀 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잡다한 서포트 + 위기관리 + 돌발상황 소방수.

즉, 글로벌 회사라는 무대 뒤에서 일인 다역을 해내는 만능 코미디언이다.


사람들은 묻는다.

“외국계 다니면 월급도 높고, 워라밸도 좋고, 간지 나지 않나요?”

음…내 대답은 언제나 같다.

“간지는 나지. 다만 밖에서 보기에만... 빛 좋은 개살구랄까?”


비밀을 하나 털어놓자면,

나는 ‘외국계 판타지’에 빠진 취준생과 이직러들을 위한 안티-판타지 전도사다.

체계없는 무늬만 외국계회사에서의 내 경험담은 환상을 부수고, 현실은 더 코믹하게 비틀어버린다.

웃다 보면 알게 된다. 외국계는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다른 여느 회사처럼 웃픈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한 편의 다른 장르일 뿐라는 걸.


문화와 다양성을 존중하고, 조직과 사람, 시스템의 가치를 실천하는 선진적인 글로벌 기업을 찾는 데 작은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

부끄럽고 아픈 기억이지만, 용기를 내어 이렇게 꺼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