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에세이] 내 커리어 장르는 블랙코미디 - 1

#1 내 커리어의 장르는 블랙코미디

by 직딩누아르

#1 내 커리어의 장르는 블랙코미디


퇴사를 하고 나서도 습관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간밤에 쌓인 업무 메일함과 라인 메시지를 부랴부랴 확인하는 버릇은 여전하다. 모닝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아 밝은 아침 햇살 가득한 거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잠시 쉬는 이 순간이 왜 이렇게 어색하기만 할까.


가끔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회사를 다닌 게 아니라, 한 편의 블랙코미디 영화에 출연한 게 아닐까?'


넷플릭스 각본 부문 정도는 한번 도전해 볼 만한 시나리오다.

문득, 상담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다.

“건강한 마음가짐을 위해서는 무조건 참고 담아두기보다, 풀어내는 게 중요합니다.”

내 안의 것을 바깥으로 내보내는 과정이 핵심이라는 말이었다. 어떤 방식이 좋을까 고민하다가, 예전에 인스타그램에 감사 일기를 포스팅하던 기억이 났다. 그때도 내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 데 꽤 도움이 됐었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아 워드를 실행했다. 새 문서를 열고 키보드를 두드렸다. 단 10분 남짓, 마음속 얽히고설킨 생각들이 하나씩 풀려나갔다. 더 이상 내 구석에만 응어리로 남지 않고 밖으로 흘러나올 수 있도록.



이상한 나라의 외국회사 체험기


처음엔 회사 생활이란 게 다 거기서 거기겠거니 했다. 하지만 오래 전, 보수적인 한국 회사와 임원들의 잡무에 시달리던 내게, 어느 날 한 헤드헌터가 제안한 다국적 외국계 기업 이직은 꽤 솔깃했다. 토익 시험 문제집으로만 갈고닦던 영어를 드디어 실전에 써먹게 되는 건가!


여행지에서 외국인과 잠깐 나누던 ‘신상 토크’를 넘어서, 외국인 동료와 치열하게 토론하고, 술 한잔 기울이며 농담도 던지고, 업무 스트레스도 풀 수 있는 진짜 대화! 내 머릿속은 이미 미드 오피스 드라마 몇 편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게다가 국내 사업에 큰 포부를 품고 한국 직원을 아끼며 장기간 투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외국인 대표의 인터뷰 기사까지. 그 전에 헤드헌터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 회사를 칭찬했고, “규모는 작지만 직원 행복지수가 높아요”는 말에 나는 단단히 꽂혀버렸다. 이국적인 분위기와 명성, 그리고 헤드헌터의 강력한 추천에 이끌려, 나는 큰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출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금세 긴장감과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일단, 외국계 회사는 맞았다. 메일과 전화는 영어를 써야 했으니까.
하지만 매일 출근하는 직원들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임원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일년에 많아야 두 번. 그것도 꼭 설이나 추석 즈음이라, 연차나 휴일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지구 반대편 대표의 기분에 따라 오더가 바뀌고 즉흥적인 지시가 쏟아졌다. 업무는 매번 새로 태어났고, 직원들은 마치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묵묵히 받아들였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내부 보고 체계’였다. 매일 채팅으로 이런 지시가 내려왔다.

“현재 00가(나랑 전혀 상관없는 부서) 뭘 하고 있는지 일일이 알려줘.”


일종의 ‘내부 스파이 미션’이었다. 부서 현황과 팩트, 주변 인물의 태도와 분위기를 파악하느라 긴장됐고, 괜히 잘못 보고했다가 다른 부서에 불호령이라도 떨어질까 늘 조마조마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모두가 다 그러고 있었다. 임원도, 중간관리자도, 심지어 신입까지 각자 대표에게 개별 보고. 이메일로, 채팅으로. 와우.

이건 회사라기보단 ‘정보 서바이벌 게임 쇼’였다. 고위 임원이 전체 보고를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모니터링하며 고자질 경쟁을 벌이는 꼴. 신뢰 따윈 사라지고, 의심과 불신, 질투만 가득한 곳. 그 와중에 대표는 이 시스템을 ‘최고 효율의 경영 철학’이라 믿고 즐겼다.


나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실과 자료, 양측의 의견까지 담아 중립적으로 보고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 죄로 오히려 주변의 경계 대상이 되었고, 승진할수록 내 지갑은 영양제와 상담비로 텅텅 비어갔다.


가끔 별똥별처럼 한국에 나타나는 대표. 그럴 때마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또 한국 선진문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리더인지 멋지게 포장하고 널리 알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그는 한국인의 습성과 태도, 한국의 시스템에 온갖 불만을 퍼붓고 직원들 앞에서 고성을 지르다가도 기자 앞에서는 순한 양으로 돌변했다. 그리고 다음 날, 성공적으로 특집 기사가 실린 신문을 볼 때면… 참으로 씁쓸했다.


내가 살고자 선택한 생존 기술, 즉 그를 다루는 방식도 점점 다양해지고 정교해졌다. 항상 일본산 유기농 티백을 휴대했고, 약 60도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분유 마스터기 보온병’까지 챙겨 다니며 그의 티타임을 보조했다.

그의 일정과 동선을 꿰차는 건 기본, 갑작스럽게 식사나 다과 자리에 들렀을 땐 알레르기도 없는 사람이 음식 재료와 조리법까지 따지며 셰프를 괴롭히는 걸 옆에서 뒷수습해야 했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를 국내 대기업 회장님처럼 ‘특급 대우를 받아야 할 인물’이라 믿었고, 나는 그 연극의 조연이자 연출가로서 극적인 상황의 연출을 총감독했다.

한번은 지방 출장 중, 회의 때문에 식사를 거른 탓에 신경이 날카로워지자 인근 5성급 호텔로 들이닥쳤다. 예약도 없이 들어간 고급 레스토랑에서 원하는 자리를 안 내주자 “내가 누군 줄 알아?”라며 지배인과 손님들 앞에서 씩씩거리며 어슬렁대던 그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결국 그와 동행하는 자리는 늘 같은 결말로 귀결되었다. 내가 앞장서서 허리 굽혀 양해를 구하고, 목이 부러져라 조아리며 사과하고, 애처롭게 부탁하는 것. 그렇게 ‘인간 방패’ 역할은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로 굳어졌다.


돌이켜보면, 내가 외국 임원의 자리에 있었다면 과연 어땠을까를 수없이 고민하게 되었다. 사업 현장에서 남을 감시하는 태도, 때론 인격을 깎아내리는 말투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나는 가까이서 생생히 지켜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경험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더 깊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게 했다.


결국 비즈니스도 관계도, 남을 무너뜨려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할 때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단순하지만 훈훈한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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