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물 사이
보이지 않는 가장자리에서
연한 뿌리가 숨을 틔운다
가는 줄기는
빛을 향해 올라와
물 위에 둥둥 떠있다
작은 흔들림에도 기울고
물결 하나에도 방향을 틀지만
유연한 만큼 빠르게 자란다
비어 있는 줄기 속은
무엇이든 통과시키고
가벼움 덕분에
쉽게 꺾이지 않는다
시간을 담을수록
줄기는 길어지고
잎은 또렷해지며
물 위를 스치듯 퍼져 간다
속이 빈 채로도
곧게 서 있을 수 있었던 건
아직 봄이어서였을까
물은 계속 흐르고
빛은 머물지 않는다
봄의 온기가 말라갈 즈음
겉은 여전히 푸른데
속은 마르기 시작한다
줄기 속은 여전히 비어 있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못한 채
살아남은 시간만 통과해 간다
단단해 보이던 줄기는
질긴 쪽으로 굳고
푸릇했던 향은 얇아져
닿기도 전에 흩어진다
여전히 서 있는 듯하지만
더는 자라지 못하는 방식으로
같은 자리에 머문다
부드러움이 빼앗긴 자리에는
버티는 힘만 남아
그 끝에 남은 것은 형태뿐
입안에 봄을 남기던 순간은
물속으로 사라진다
처음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뉴욕일보 칼럼니스트 작가 송지
https://m.newyorkilbo.com/4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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