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차려진 식탁

늦게 도착하는 마음들

by Roselle

10년 전, 제대로 된 레포트 하나 써본 적 없던 대학교 1학년을 갓 마치고, 인턴직에 합격했다. 경쟁률은 꽤 높았고, 나는 아무 스펙도 없었지만 운 좋게 14명의 청년인턴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다.

한 학기 남짓의 짧은 체험형 인턴. 학교 생활이 맞지 않았던 나에게는 휴학할 명분이자, 잠시 다른 방향으로 숨을 돌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복합기 하나도 쓸 줄 모르던 나는 아무 준비 없이 첫 출근을 했고, 동기들 중 가장 어렸다.

14명 중 3명만 판교 분원으로 배정되었다. 나이도, 학교도, 전공도, 고향도 달랐던 우리는 그렇게 묶였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을 꺼내며 웃고 떠드는 사이로 여전히 남아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그 조합 자체가 이미 희박한 확률이었다.


나와 달리 대부분의 동기들은 ‘취준생’이었다. 최저시급 수준의 월급은 그들에게 버틸 수 있는 힘이었고, 몇 개월짜리 체험형 인턴은 이력서 한 줄을 채울 수 있는 절실한 기회였다.

그런 틈에서 나는 “벌써 왜 인턴을 하냐”는 질문을 달고 다녔고, 가끔은 내가 누군가의 간절한 자리를 대신 차지한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나는 종종,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운이 좋은 사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우연히 올려진 한 접시


평소에는 스팸 취급했던 학교 공지 메일을, 그날따라 정리하려고 열어봤다. 그 메일 속 인턴십 공고를 발견한 것부터,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것, 세 명뿐인 분원으로 배정된 것, 그리고 그 동기들을 만난 것까지. 이어진 모든 장면들이 우연처럼 겹쳐져 있었다.

그 일을 시작으로 나는 이후 여러 인턴십을 경험했고, 스타트업을 거쳐 광고회사로, 그리고 언론대학원으로 이어졌다.

만약 그날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곳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 그 3인조 동기 중 한 명이 딸을 낳았다. 무던하고, 꼬인 데 없이, 성실하게 자기 몫을 살아내던 친구. 제 힘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오랜 꿈을 이루고, 적당한 시기에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예쁘고 에너지 넘치던 친구가 이제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를 돌보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쪼그만 아기가 하루 24시간을 다 써버린다. 먹이고, 달래고, 살피고, 안고. 그 안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만들어진다.

행복하냐는 질문에 친구는 말했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행복을 느낀다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깊이 행복하다고.

몇 개월 만에, 그 친구는 이미 많은 부모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다른 친구의 부친상 소식을 들었다.


한 세계가 사라지는 일


인생이 순리를 따른다면, 자식은 결국 부모의 죽음을 맞는다. 우리는 평균 수명이라는 숫자를 믿고 살아가지만, 그 평균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뉘지 않는다.

죽음은 언제나 무겁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이별은, 그 무게를 더 깊게 내려앉힌다.

태어날 때부터 내 위에 지붕이 되어주고, 울타리를 세워주고, 방향을 잃지 않게 해 주던 나침반 같은 존재.

부모의 죽음은 그 역할 하나를 잃는 일이 아니라, 한 세계를 통째로 비워내는 일에 가깝다.


우리는 왜, 대부분의 것들을 너무 늦게 이해하게 되는 걸까


우리는 늘 당장의 앞을 보며 살아간다. 눈앞의 일을 처리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바쁘게, 치열하게, 정신없이 하루를 넘긴다.

그렇게 살다 보면 뒤를 돌아보는 일은 점점 줄어든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놓치는 것들이 생긴다.

아마 그중 하나가, 부모를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각자의 리듬을 만든다. 어느 순간 부모와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고, 조금씩 거리를 두며 나만의 사이클을 찾는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주일, 항상 짧게 느껴지는 휴일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내 삶’에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 속에서, 나는 누구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는지. 그리고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 앞에서, 부모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지.


엄마가 된 친구가 했던 말이 오래 남았다.

무례하게 느껴지는 시어머니 말 앞에서 화를 내는 남편을 보며, “그래도 저분들도 내 남편을 이렇게 애지중지 키웠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모든 관계가 같을 수는 없지만, 방향만큼은 비슷하지 않을까. 서툴고, 때로는 틀리고, 표현이 거칠어도, 결국 부모의 마음은 한쪽을 향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정석대로 젓가락질을 할 줄 알고, 또박또박 글씨를 쓰고, 또렷하게 발음을 하고, 바른 자세로 걷는 법을 안다. 너무 사소해서 당연한 것 같지만, 누군가가 반복해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자연스럽게 익혀지지 않았을 것들이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법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사람.
그게 부모다.


학생이 되어 지식을 쌓고,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사람을 만나며 지혜를 쌓는 일은 결국 내 몫이다. 하지만 그전에, 내 인생의 첫 번째 선생은 부모였다.

인생에는 ‘처음’이 많다. 첫사랑, 첫 월급, 첫 회사, 첫 도전.

그 설레는 시작들 사이에서, 우리는 종종 가장 처음을 잊는다.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받아들이고,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해 애썼던 사람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부모의 죽음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어떤 설렘의 근원을 잃는 일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진실을 보느라, 진심을 놓치는 일


우리는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하나는 사실을 보기 위해, 다른 하나는 마음을 보기 위해.

눈이 두 개인 이유는, 하나는 진실을 보고 하나는 진심을 보기 위함이 아닐까.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너무 자주 ‘진실’만 확인한다. 얼마나 바쁜지, 얼마나 힘든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지만 조금만 시선을 옮기면, 그 너머에 있는 ‘진심’이 보이기도 한다. 서툴게 건네는 말, 투박한 방식의 걱정,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 속에도 오래된 마음이 숨어 있다는 것.

그래서 가끔은, 확인하듯 보지 말고 들여다보듯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미 지나온 것들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남아 있는 시간을 조금 덜 놓치기 위해서.

그날의 인턴 합격 메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도 있었던 순간들이 사실은 삶의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늘 한참 뒤에야 알게 되니까.


미루지 않아도 될 순간들


그래서 오늘의 식탁 앞에서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도 괜찮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그저 문득 떠오른 김에, 부모님께 전화 한 통을 걸어보는 일. 별일 없다는 안부 한마디, 오늘 뭐 먹었냐는 가벼운 질문 하나.


우리는 늘 나중에 알게 될 것들을 지금은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그래서 어떤 마음은
항상 한 발 늦게 도착한다. 부모를 이해하는 일도 그렇다. 대개는 충분히 멀어진 뒤에야, 혹은 되돌릴 수 없어진 뒤에야 선명해진다.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의 하루는 아직 남아 있으니까.

오늘은, 조금 먼저 도착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뉴욕일보 칼럼니스트 작가 송지

https://newyorkilbo.com/4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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