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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치아야 Apr 01. 2021

내 가족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미친 할배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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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를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 주고 은행에 볼 일이 생겨서 근처 농협으로 갔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잠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멍하니 있다가 문을 열고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옆차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내리더니 다짜고짜 나한테 '아줌마!!!'라고 소리를 쳤다. 이게 무슨 일이지?

당황할 틈도 없이 다시 소리를 지르며 내가 자기차를 문콕했다고 두 눈을 부라리며 화를 냈다. 내가? 난 전혀 몰랐는데. 아니 안 한것 같은데. 아무튼 일단 상황을 수습하고 싶었기에 연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죄송하다고 정말 몰랐다고. 그런데 나보고 모르는게 말이 되냐며 자기차에 상처 하나라도 있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휴대폰 후레시를 켜서 차를 살피기 시작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눈물이 나려 했지만 꾹 참고 죄송하다고 살펴보시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연히 차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뭐라고 하기에 심호흡을 하고 '제가 계속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차에도 아무런 흔적이 없는데 제가 뭘 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더니 그 할배가 혼자 궁시렁 거리면서 자기차 운전석으로 돌아갔다.

아무렇지 않은듯 나도 발길을 돌려서 은행으로 걸어갔다. 은행문 앞에 다다르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사실은 많이 무서웠다. 주변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내앞에는 나를 죽일듯이 노려보는 어떤 남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라면 내가 느꼈던 공포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것이다.

마음을 추스리고 침착하게 은행 업무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주차장으로 가니, 다행히 그 노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안심하고 운전석에 앉는데 또 눈물이 나오면서 억울함이 밀려왔다. 내가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면 그 늙은이가 나를 그렇게 함부로 대했을까? 나는 왜 계속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하지 못했을까. 내 모습이 너무 추레해보였나?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지금 나에게 벌어진 이 어이없는 상황을 전하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했는데 말은 안나오고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도 놀래서 무슨일이냐고 당장 나에게 오겠다며 어디인지 물었다. 난 별일 아니라며 내가 사무실에 가겠다고 말했다. (울면서 별일 아니라고 하다니...) 남편을 보는 순간 서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와서 남편 품에 안겨서 한참을 엉엉 아이처럼 울었다.

그렇게 울고나니 왠지 속이 후련했다. 남편에게 오늘 내가 당했던 일을 이야기해주자, 쌍욕을 하며 나보다 더 흥분하고 화를 내주었다. 그래, 내편이 있었지. 그렇게 한참을 남편이 하는 시원한 욕을 듣고 나니 마음이 풀리는 듯 했다. 내편이 이렇게 내 가까이 있다는게 이리 큰 힘이 되고,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자주 활동하는 온라인카페에 오늘 겪은일을 올렸는데, 많은이들이 내 마음에 공감해주고 함께 그 노인네를 욕해주었다. 그 중 유독 한 댓글이 내 마음에 콕 박혔다.

'그런 사람이 내 가족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밖에서 하는 행실로 봤을때 그 할배가 집에서 어찌 행세하며 지낼지 상상이 되었다. 너무 끔찍했다. 나는 오늘 하루뿐이지만 그 가족은 얼마나 힘이 들까. 다행스럽게도 내곁에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편이 되어 줄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그 순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좀 괜찮아? 저녁에 맛있는거 먹을까? 치킨 어때?


그래, 기분이 꿀꿀할땐 치맥이 진리지. 치킨을 뜯으며 그 할배 흉을 보고, 맥주를 벌컥 벌컥 들이켰다. 캬, 좋다. '그래, 그딴 사람때문에 내가 우울해하거나 힘들어하는건 억울한 일이야. 내 주위엔 이렇게 좋은 사람들로 가득한걸. 다 잊어버리자.' 내 마음을 스스로 다독여 본다. 비 온 뒤 땅이 굳듯, 그 할배 덕분에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에도 감사하게 된다.

할배요, 고맙심데이. 다신 내랑 마주치지 맙시데잉. 그땐 내도 가만 있진 않을겁니데이.


주어진 모든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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