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커를 꺼야 냉장고 소리가 들린다

스마트폰을 내려놔야 내면의 소리가 들린다

by 대장장이 휴

한 쪽에서 오는 자극을 차단해야 다른 쪽에서 오는 자극을 느낄 수 있다. 스피커 볼륨을 올려놓고 노래를 듣고 있거나 친구와 정신없이 통화를 할 때는 잘 모르지만, 그런 청각적 자극들을 다 없애고 나면 비로소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작곡을 할 때, 코드를 따기 위해 나처럼 막귀인 사람이 처음에 연습하는 일 중 하나는 바로 베이스음을 듣는 것이다. 처음에는 들리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음역대의 각종 악기소리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베이스음을 정확히 듣는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럴 때 팁으로 알려주는 것 중 하나가 아주 낮은 음역대 외의 음을 전부 작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비로소 가장 낮은 곳에서 화음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악기의 음들을 받쳐주고 있는 근음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확실히 어떤 특정한 것을 지각하기 위해서는 그 외의 다른 자극들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도 이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우리 마음의 소리가 굉장히 스스로에게 크게 들린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항상 내 속에 내 마음이 있으니 그걸 알아차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게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생각 같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마음의 소리는 어떤 이유에서인가 굉장히 희미하고 작게 울려퍼진다. 유심히 귀기울여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는 수준으로 말이다. 그래서 마음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생활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공부를 하거나 유튜브를 보는 동안에는 절대 우리 내면의 소리를 지각할 수가 없다. 정신없는 자극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소리를 명료하게 지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많이 어렵다.


물론 음악에 정통한 사람들이 카페를 지나치면서 얼핏 듣고서도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속 화음의 모든 음 하나하나를 명확히 캐치하는 경지에 이르듯이, 우리도 언젠가는 그리 될 수 있다.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면, 바쁘고 혼란스러운 일상 속에서도 아주 날카롭고 섬세하게 우리의 마음의 결 하나하나를 명확하게 자각할 수도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지금은 그런 것을 기대할 단계가 아니다. 이런 류의 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아온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갓 걸음마를 배우는 초보자에 가깝고, 그러니 다른 자극을 잠깐이라도 차단시켜둘 필요가 있다. 특히 스마트폰. 분명히 스마트폰은 우리가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우연한 기회조차 모두 앗아가고 있다. 요즘은 지하철을 타면 폰을 보고 있지 않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스마트폰을 통한 카톡대화나 유튜브, 핸드폰 게임은 우리의 주의와 시간과 체력을 먹어치우는 대신 우리에게 잠깐 잠깐 의식의 질서를 부여해준다. 이는 분명히 우리에게 일시적이지만 평온한 느낌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언제나 어떤 종류의 자극이든 상시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일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는 소셜네트워크가 기본이 되어버린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우리를 잃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의외로 외부의 자극에 너무 많이 노출된 채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져서, 내가 외부 자극에 뭐 그렇게 많이 노출되었다고 그러는 것인지, 자극에 노출되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에 공감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실제로 외부자극에 굉장히 많이 노출되었다는 주장은, 어떤 특별한 체계적 증명없이도 공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우리의 일상을 간단히 떠올려보자. 언젠가부터 우리는 아무 자극 없이 가만히 서있거나 앉아있는 시간을 보내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잠드는 순간 직전까지도 침대에 누워서 어떤 자극을 찾는다. 만약 잠자리에 누워서 무언가 고요하고 평온하게 그 시간을 음미하며 내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대신, 몸이 피곤해서 스르륵 잠이 들기 직전까지 휴대폰을 자꾸 만지작거린다면 스스로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끊임없이 내 몸과 마음으로 스며들어오는 자극에 중독된 것은 아닌지. 그것이 없는 상태를 너무 좌불안석인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설령 그런 자극에 중독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큰 잘못이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그건 전적으로 본인의 자유이고 선택이니까. 다만 그렇게 어떤 자극에 계속 흠뻑 젖어있게 되면, 앞서 말한 것처럼 그 외의 신호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 특히 내 마음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아는 형님이나 삼시세끼를 보면서 웃고 있는 동안 내면의 소리를 명료하게 지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자극이 내 하루를 가득 채우면, 그런 식의 하루가 모여 1년이 되고 내 인생 전체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인생 전체에서 내가 날 이해하고 내 내면을 보고 들을 시간을 모두 외부 자극에 빼앗긴 채 살다가 삶을 마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지는 한 번 고민해볼 필요 정도는 있지 않나, 하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러니 그냥 이따금씩 시간을 내어 휴대폰을 내려놓고 컴퓨터도 켜지 말고 음악도 듣지 말고 친구와 수다도 떨지 말고 그냥 가만히 그 어떤 자극도 없이 가만히 있어보자. 무언가 거창하게 생산적이고 가치있는 것을 해보자는 말이 절대 아님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즉, 나를 알아차리기 위해 노력하지도 말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기 위해 애쓰지도 말고, 정말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보자. 의외로 자신의 집에서 고요한 상태로 아무 자극에도 의존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걸 잘 안다. 그 시간이 이상하게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고 자꾸 다른 자극이 있는 어딘가로 얼른 도망가버리고 싶은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그 어떤 자극도 없이 가만히 있게 된다면, 내 내면에서 그런 불편함 따위가 올라오는 것이라도 최소한 자각할 수 있지 않나. 이것부터가 아주 작지만 굉장히 의미있는 첫걸음이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면, 그렇게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내 감정과 마음이라도 선명하게 자각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큰 변화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P.S) 확실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내 짐작에, 학점도 따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월급으로 저축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말이 배부른 소리나 시간낭비로 들릴 수도 있을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에, 인생에서의 가장 큰 시간낭비 중 하나는 내가 어떤 마음을 가진 어떤 사람인지도, 무얼 향해 살아가고 싶은지도 잘 모르면서 초조한 마음에 무작정 어디론가 내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보통 그 '어디론가'는 남들이 원하는 방향이 된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좋으니, 외부의 자극을 모두 차단하고 내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며 이 글을 마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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