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안녕을 바랄게

나역시, 관계정리 대상자

by 검은별




1.

너의 생일 곧 다가와.

같은 달이여도 가족의 행사들로 매번 못 챙기는 친구가 있지만,

너의 생일쯤 우리 모두 모일 수 있겠어.

우리 모두 엄마가 되어 바삐 지내지만,

시간을 만들어 보자! 언제 봐도 반가운 너희들.


2.

다음날이 되어도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는 너, 혹시나 해서 점심시간을 기다려 전화를 걸었어.

일을 했었고 확인하지 않았다고. 식사 중이라고 해서 짧게 통화를 마쳤지.

그래, 나중에 연락하자. 연락 주겠지.


3.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예민하지는 않지. 그래도 이 기분은 좀 다르게 느껴졌어.

혹여나 메시지를 확인할까? 메시지나 전화가 올까?

하루 종일 휴대폰을 들여다 보네.



4.

우리와, 나와 연락을 접고 싶은 건가? 이런 생각이 계속 밀려와.

정신없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침대에 반쯤 걸쳐 늘어지고 있어. 오늘은 하염없이 굴을 파고 있을 생각이야.

금요일이긴 한데 마침 비도 오고, 오늘은 교회 주변 쓰레기 줍는 봉사도 없겠지?


아, 비가 와도 봉사는 진행하신다네.


그래. 자리에서 일어나자.

1시간 남짓 땅만 보며 쓰레기나 담배꽁치를 줍는다.

마치고 나니 수고했다며 챙겨주신 단팥빵.

단팥이라니, 너무 달 거 같아 못 먹겠다.


나, 지금 울고 싶다는데..



집으로 바로 가기 전에 도서관에 들려서 책을 빌렸어.

준비된 상태가 아니라 손에 들었는데, 생각 없이 너무 많이 빌렸다.

갑자기 다시 비가 내리고. 어쩌지..... 그래 오늘은 사치를 부리지 뭐. 택시를 잡아 볼까..

이런 그나마 잡힌 택시는 나를 취소해 버렸다.

자꾸 거절당하는 느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몇 권 반납하고 들 수 있는 만큼 들고 버스를 다시 기다렸어.

무슨 비가 이렇게 오락가락인지. 축축하게 젖고 정신 사납다.


설거지를 하는데 자꾸 눈물이 고여,

그런데 이상하지? 확 쏟아붓고 싶은데.... 뜨겁게 고여만 있어.


5.

남편이 어젯밤 퇴근길 내가 갔던 도서관 근처에 차가 막혔고, 주변에 가림막이 있어서 차가 막혔다는 거야.

뉴스를 찾아봤더니 그곳에서 사망사고가 있었다고, 비가 와 미끄러졌는데 버스에 그만 깔려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같은 날 내가 버스를 탔던 그 장소에서.


살아 있는 것에 감사를 해야겠지.

어찌 보면 살아가면서 당연히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는 것인데.

쓸데없이 너무 그 감정에 허우적 대고 있나 봐. 정신 차려야겠다.


어떤 말을 써야 할까. 꼭 해야 할 말이 뭘까?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연락을 원치 않는 건가 싶어서.
그렇다면 이렇게라도 인사를 하고 싶어.

편안하게 대해 줬던 그 시간들에 감사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 그 시간들에 대해 미안해.
너를 서운하게 하고 겉도는 느낌을 받게 해 너의 마음이 아팠다면, 그 시간들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
그리고, 고민했을 시간들을 존중해.

진심으로 너의 안녕을 바랄게.


내가 요즘 몸도 마음도 침체기라 잠수 중이야.
걱정했지 미안해.
나 생각해 준 마음 너무 고맙고, 늘 간직하고 있을게.
건강 잘 지키고 잘 지내고 있어!


7.

왜 진작 너에게 더 배려하지 못했을까?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뭐, 감기도 며칠을 앓는데, 너를 잃은 슬픔은 더 하지 않을까?


생각보다 꽤나 질척거린다. 또 울컥


8.

그 누구의 목소리도 듣기 싫었던 마음 안에도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혹시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9.

너의 생일이야.

사랑하는 이들에게 축하 많이 받고 기쁜 날이길 바래. 그 하루가 편안하길.


10.

아무래도 불쑥불쑥 생각들이 자꾸 들어 글로 남겨야 정리가 될 거 같아.

의미 있는 시간으로 채워준 너에게 감사해.


이제 털어 낼 수 있을까?





너와 이야기할 때면
여름날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무릎은 반쯤 접어 세운 채,
창문넘어 한들한들 초록빛 나무를 한가로이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처럼 자연스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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