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의자
Barcelona Chair
1929년 미스 반 데 로에는 스페인 박람회의 독일관 설계를 맡게 됩니다.
미스의 아버지는 석공이었고, 시골의 작업장에서 어릴 때부터 돌을 만졌다고 해요.
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근대 건축의 초창기 거장인 페터 베렌스의 스튜디오에서 건축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규 교육이나 학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재능을 인정받고 곧 독립적인 건축가로 나서게 됩니다.
이때, 촌놈이었다가 새로운 디자인 이론과 독일의 문화를 접하면서 문화적 엘리트로 변모하면서 본명인 '마리아 루트비히 미하엘 미스'에서 좀 더 귀족적인 어머니의 성인 '반데어로에'를 붙여 '미스 반데어로에'로 개명했다고 해요. 즉 아버지의 성+어머니의 성.
미스뿐 아니라 르 코르뷔지에도 그렇고 당시 건축가들은 본래의 이름이 아닌 가명을 쓰는 경우들이 있었는데요, 아마도 당시 건축가로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 것 같아요.
전통적인 주택들을 설계하면서도 새로운 디자인 이론과 전위적인 사상을 계속 접하고 있었지만 미스를 극적으로 바꾼 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죠.
이 전쟁으로 유럽의 제국적 리더십이 가진 낡은 질서가 극적으로 실패하면서 문화계에서는 진보적인 이론들이 훨씬 신빙성을 얻게 되었고, 고전적이며 복고적인 건축양식은 불명예스러운 과거를 상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스는 대전 당시 독일제국군에서 복무했는데, 당시 독일군은 대졸자만 장교가 될 수 있었다 보니 사병으로 입대했고요.
주로 발칸반도에서 다리를 놓거나 도로 포장하는 일을 했다고 하고요.
그가 설계한 바르셀로나 전시관은 물 흐르는 듯 어디로도 뚫려 있는 공간에, 벽은 너무나 얇아 '물질'이 아닌 '방향성을 가진 면'으로만 인식되고, 빛나는 크롬 재질의 기둥은 지붕을 받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가벼워서 떠 있는 지붕을 날아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고 해요.
기둥은 지붕을 받치기도 하지만 바람이 불어서 양력이 생기는 경우에 지붕을 붙잡고 있는 역할이 더 컸다고요.
이 건물이 당대에 안겨준 충격이 상당했다 보니 박람회가 폐막하고 철거되자 사진으로만 남게 된 본 건축작품에 대한 여러 소문이 붙어 거의 전설처럼 여겨졌다죠.
오히려 이후 바르셀로나에 다시 복원했을 때는 너무 커졌던 신화에 미치지 못했답니다.
미스는 고전적인 양식들을 버리면서 단순히 새로운 이론과 형태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강철과 유리라는 새로운 재료, 공법을 폭넓게 연구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해요.
1929년 이후 대공황으로 일감이 줄어든 무렵 친구이자 경쟁자인 발터 그로피우스의 요청으로 1930년 그 ‘유명한!’ 바우하우스의 교장을 맡았답니다.
미스는 나치 집권 후의 정부로부터 설계 수주를 받으려 노력했지만 그의 양식이 '독일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고도 하고요.
당시 '독일적인 건축'은 알베르트 슈페어로 대표되는 양식으로 나치는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현대건축보다 민족정신을 대변하는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건축을 선호했답니다.
바우하우스의 진보적인 학풍을 혐오한 나치당의 정치적 압박이 계속되자 1933년 폐교당했고요.
1937년 마지못해 조국을 떠난 그를 받아준 것은 미국이었는데요. 미국에 도착한 그는 엄청난 환대를 받았는데, 국제주의 양식의 열렬한 후원자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따라서 시카고의 아머 공과 대학(IIT의 전신)의 건축학부장을 맡으면서 캠퍼스의 새 건물들을 자기가 짓는 것을 조건으로 건 것은 무리수가 아니었던 것이죠. 1944년 미스는 미국 시민권을 얻었고, 독일 국적을 버렸답니다.
바르셀로나 박람회 독일관.
모더니즘 건축사에서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게 된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강철, 유리, 대리석을 이용한 모던풍 공간을 설계하던 중 자신이 새롭게 표현한 건축 언어에 어울리는 가구가 없다고 판단해 그 공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의자를 추가로 디자인합니다.
독일관은 당시 스페인 국왕의 휴식 공간으로 쓰일 예정이었기 때문에 미스 반 데 로에는 왕과 왕비에게 어울리는 가구를 고민하다 권위와 전통이 있는 역사적 가구에서 모티프를 따고자 합니다.
그는 고대 로마로부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최고 지위제의 하나로 쓰였던 쿠룰레 의자의 X자 프레임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깔끔하게 정돈된 블록 형태의 가죽 쿠션과 크롬 도금한 스틸 다리의 곡선 디자인으로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바르셀로나 체어는 크롬 도금을 한 강철 프레임이 특징인데, 이는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기둥과 문틀이 모두 크롬으로 도금되어 있어 잘 어울리도록 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강철 프레임을 옆에서 보면 엑스자 형태로 디자인되어 하부 쿠션이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입니다.
당시에는 의자의 다리가 아래로 향하지 않고 45도 이상 옆으로 누워있는 것이 매우 새롭고
혁명적인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바르셀로나 세계 박람회가 끝나고 바르셀로나 체어는 1953년부터 가구 브랜드 놀 Knoll에서 대량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 놀의 시그니처 의자가 되었죠.
거의 대부분의 작업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각 의자마다 Knoll Studio와 루드윅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사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90년 이상이 지나도록 디자인의 '참신함'과 '우아함'이 그 빛을 잃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답니다.
'바르셀로나'라는 이름을 갖게 된 이 X 프레임 의자는 미스 반 데 로에가 창조한 모던한 공간 속에서 가장 빛을 밝히는 의자로 명성을 얻게 됩니다.
현대 모더니즘의 미학이 돋보이는 20세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오리지널 바르셀로나 체어는 무려 7000달러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데요
최근까지 샤넬 부띠크에도 늘 이 바르셀로나 체어가 있었어요.
100년 가까이 베스트셀러가 된 의자!
놀랍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