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다음은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떤 기회는 인기척도 없이 다가왔는데 주인이 알아보지 못해 섭섭해하며 스쳐 지나가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모든 선택의 기로에서 ‘못 먹어도 고! 내 인생에 빠꾸란 없다!’를 외치며 살아가고 있다. 항상 내 귓전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는 ‘다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꿀지도 모를 기회가 찾아왔는데 융숭한 대접은커녕 알아차리지도 못한다면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작년 10월 말, 나에게 그 세 번 중 한 번이 될지도 모를 기회가 찾아왔다.
스산한 바람이 코트 속을 파고드는 이른 아침 출근길이었다. 갑자기 뚝 떨어진 아침 기온처럼 당시 내 마음은 황량한 황무지에서 모래바람을 맞으며 홀로 우뚝 서 있는 기분이었다. 떠오르지 않았으면 했던 해는 떠올랐고, 마음과는 달리 여느 때와 같이 발걸음을 재촉해 회사로 향하던 중이었다.
출근길마다 지나치는 예쁜 카페가 있다. 그 앞을 지나던 중 평소와 다른 느낌에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카페 앞 벽면에 붙은 하얀 전단, 그 전단엔 예쁜 그림 그리고 마음을 끌어당기던 글귀가 있었다. 퇴근 후 설렘 그리고 작가의 서재, 글쓰기, 마음치유.
‘퇴근 후 설렘’이라는 문구에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아~ 퇴근 후 설레는 무언가가 날 기다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퇴근하고 나면 내일 아침이 오는 게 무서운 걸...’
자기 삶에서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음’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막상 다음 순간이 찾아오면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고. 자기가 원하는 일을 지금 이 순간에 하지 않으면 결국 그것을 놓치고 만다고.
- 지구별 여행자, 류시화 -
누구나 살아가면서 죽기 전엔 꼭 이루고 말리라는 버킷리스트를 하나씩은 품고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나에겐 내 이름이 새겨진 책을 출간하는 것이다.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에서 산호 목걸이를 파는 여자가 했던 말처럼 내 귓전에선 ‘지금이야, 이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을 수도 있어’라는 말이 온종일 맴돌았다.
불현듯 몇 년 전 이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캐나다 업체에서 출장 나온 매니저가 날 좋게 봐주어 함께 캐나다에서 일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항상 이곳을 벗어나 바깥세상으로 나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내게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행운이었다. 그 제안을 받았을 때 오랫동안 고대해오던 꿈만 같은 일이라 들뜨기도 했지만, 당시 불안정했던 내 마음 탓에 -정확한 진단을 받진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난 우울증과 불안장애를 앓고 있었던 것 같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기회는 그렇게 떠나갔고, 난 공직에 몸을 담게 되며 해외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아득히 멀어져만 갔다. 돌이켜 보면 그 기회가 나에게 찾아온 인생을 바꿀 세 번의 기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또다시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었다. 불안정한 내 마음 탓을 하며, 더 이상 욱여넣을 수 없는 내 스케줄러 탓을 하며. 또한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모래바람을 이 글쓰기 수업이 잠재워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왠지 모를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렇게 난 퇴근길에 하얀 전단에 적힌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이지 않고 ‘고!’를 외친 덕에 난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고, 지금 이 순간도 글을 연재 중이다. 내 마음의 모래바람은 잦아들었고, 삶은 더욱 풍부해져 가고 있다.
다음 기회가 찾아와도 난 ‘못 먹어도 고! 노빠꾸!’를 외칠 것이다. 더 단단해지고, 강해져서 그때는 망설임 없이 기회를 낚아채야지. 메리야 잘할 수 있겠지?
아, 오늘도 퇴근 후 설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