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한계>, 삶과 죽음의 경계를 확장시킨 인류의 위대한 여정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은 가장 혹독한 환경의 영역들을 대부분 정복했고,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살아간다. 우리가 밖으로는 활동 범위를 이토록 크게 확장하고, 안으로는 인간 생명의 가장자리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의학과 과학의 선구자들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시대착오적인 모험을 한 덕분이다.” -<생존의 한계> 본문 중에서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안나의 심장은 얼어 있었다. 벌써 두 시간째 심장은 멈춘 상태였다. 심부 체온은 13.7℃. 이처럼 낮은 온도의 환자는 의료 역사상 안나가 처음이었다. 의료진들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래도 끝까지 해보기로 했다. 안나의 뇌가 혹독한 추위로 보존되어 있을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얼음물에 빠져 죽음의 문턱으로 걸어갔지만, 그것이 오히려 죽음에서 탈출할 수 있는 이유가 될지는 환자인 안나도, 의료진도 몰랐다. 안나는 결국 다시 살아났다. 낮아진 체온이 뇌와 심장을 온전하게 보존했기 때문이다. 초저체온 심장 정지 기술을 활용해 체온을 18℃까지 낮추고, 혈액 공급이 되지 않는 환자의 뇌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하는 심장 수술은 그렇게 개발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피부 이식 수술의 개념이 정착되지 않았다. 이때 아치볼드 매킨도라는 의사는 화상 환자의 상처 부위에 이식할 피부판을 환자의 정상 부위에 한쪽 끝 부분만 매단 채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피부이식 수술을 시도했다.
환자들의 모습은 기괴했다. 혈액을 공급받기 위해 몇 개월 동안 피부판이 상처 부위와 정상 부위에 매달려 있는 모습으로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성형 수술법은 급속히 발전했다. 피부 이식과 복원 수술을 통해 얼굴이 완전히 사라진 환자조차 입술과 피부로 감촉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대부분의 과학기술이 그렇듯 의술의 혁명을 가져온 계기도 전쟁이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는 극단의 상황에서 그들의 살리고 회복시키는 의술은 발전한 것이다. 최초의 심장 수술 역시 전장에서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 대위이자 흉부외과의였던 드와이트 하켄은 부상당한 병사를 대상으로 심장 수술을 했다. 세상의 모든 외과 의사가 심장 안으로 들어가길 꺼리던 시대에 그는 적진을 뚫고 전진하는 병사처럼 심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다친 병사들의 심장을 열고 칼을 댔다.
◇사람 죽이는 전쟁에서 발달한 사람 살리는 기술
가슴뼈에서 심장까지의 직선거리는 2.5cm에 불과하다. 하지만 의학이 이 짧은 거리를 여행하기까지는 무려 2,500년의 세월이 걸렸다. 오랫동안 의사들은 심장을 신성시했다. 19세기가 끝날 때까지도 여기에 도전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 오래된 신념을 뛰어넘은 계기는 잔인하지만 '전쟁'이었다. 하켄은 1944년 10개월 동안 부상병의 심장에 박힌 총탄과 파편을 무려 134번 꺼냈다.
‘살인자’라고 불린 찰스 베일리라는 심장 외과의도 있었다. 그는 가슴을 절개하고 심장을 직접 건드리는 수술을 시도했다. 심장 수술은 물론 다른 외과 수술도 아직 체계화되지 않았던 20세기 중반의 일이었다. 당연히 수많은 환자가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수술법은 성공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어디까지 견뎌낼 수 있을까?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해 왔을까? 케빈 퐁의 <생존의 한계>는 극한 환경에서 생존의 경계선을 확장한 지난 100년의 위대한 도전을 추적한다. 또 이런 적대적 조건에서 인체가 어떤 영향을 받고 반응하고 견디는지, 그리고 그 한계를 인류가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생생하게 소개한다.
저자는 의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한 뒤 NASA에서 의학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또 집중치료 전문의로 세계 여러 병원의 응급실에서 수많은 위급 환자를 치료했다. 영국에서는 BBC 메디컬 다큐멘터리 진행자로 더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저자가 극한 조건을 직접 체험하는 '세상 끝으로의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2013년 KBS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케빈 퐁은 '세상에서 가장 익스트림한 의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죽음의 현장을 찾아가지만, 책은 궁극적으로 생명을 다룬다. 생명의 허약함과 놀라운 회복력을 살핀다. 동시에 이러한 생명을 연장시킨 의학과 과학기술을 조명한다. 온도와 산소가 희박한 공간, 무중력 상태와 같은 극한 환경의 생리 반응에서부터 화성이나 치명적 외상, 전염병 등에 맞선 현대 의학의 사투, 여기에 저체온 수술법과 인공 중력 장치와 같은 최첨단 기법에 이르기까지 의학은 과학기술과 함께 발전의 발전을 거듭했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생명의 개념까지 바꿀 정도로 급격한 변화를 가져온 지난 100년간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 이 100년 동안 우리는 이전에는 가망이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던 상태를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100년 동안 인간은 가장 혹독한 환경의 영역들을 대부분 정복했고,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살아간다. 우리가 밖으로는 활동 범위를 이토록 크게 확장하고, 안으로는 인간 생명의 가장자리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것은 의학과 과학의 선구자들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시대착오적인 모험을 한 덕분이다.“
◇다큐멘터리처럼 그린 생명과 죽음의 최전선
이처럼 생존의 한계선을 끌어올린 도전 덕분에 인간의 기대수명은 지난 100년 사이 2배가 넘게 늘었다. 또 수천 년간 접근조차 못 했던 극도로 춥거나 뜨겁거나, 너무 높거나 깊은 불모의 지역까지 인간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영역을 깊은 심해나 지구 바깥으로 확장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썼기 때문일까? 책은 마치 생명과 죽음의 최전선에서 수없이 맞닥뜨리는 긴박한 상황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타고 있던 헬기가 추락해 깊은 물속에 빠진 저자의 위기 상황, 런던 한복판의 폭탄 테러 현장에서 생명을 살리려는 의료진들의 분투, 사상 초유의 전체 얼굴 이식 수술,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의 지구 귀환까지 사선을 넘나드는 극적인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가 머리를 헬리콥터 벽에다 바짝 갖다 대자 헬멧이 칸막이벽에 부딪히며 꽝 소리가 울렸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물 위로 추락했고, 즉각 가라앉기 시작했다. 헬리콥터는 1초에 1m씩 가라앉을 것이다. 물은 이미 허리춤까지 차올랐고, 내 몸의 모든 신경 섬유들은 내게 안전띠를 풀고 창문을 뚫고 나가라고 외친다.”
책에는 심장이 얼어붙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을까(저체온 생리학), 인간은 물속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호흡의 비밀), 2500년간 의사들이 다가가기 가장 두려워한 곳(심장 수술), 생존을 위한 우선순위(응급의학과 외상 치료), 생명의 한계를 인위적으로 연장하는 일(집중치료와 생명유지 장치) 등이 담겨 있다.
또 불에 타버린 얼굴을 복원하라(화상과 피부이식), NASA의 의료진들은 어떤 일을 할까(항공우주의학), 우주를 여행하려는 인간을 위한 생존 설명서(중력, 그리고 화성 여행의 조건), 인간은 시간의 힘을 거스를 수 있을까(노화) 등 책에서 다룬 9개의 주제는 제목만으로도 심장이 뛰게 한다.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도전
책의 후반부에서는 현대 과학기술과 의학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항공우주의학을 다루고 있는데 반가운 이름도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의 지구 귀한 이야기다. 당시 이소연 씨의 지구 귀환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원래 착륙 예상 지점보다 훨씬 먼 곳에 떨어졌다는 소식은 뉴스를 통해 알았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의 상황에 직면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소연 씨는 잘 알려진 것처럼 국제 우주정거장에서 10일 동안 머문 후 지구로 향하는 귀환선에 탑승했다. 재진입 직전에 승무원들이 탄 캡슐이 모듈과 분리됐다. 훈련 당시 이소연은 분리 후 다른 모듈이 보인다면 뭔가 아주 잘못되고 있는 거라고 들었다. 그런데 이소연은 머리 위의 창을 통해 모듈 일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결국, 캡슐 내부의 G 측정계(감속 정도를 측정하는)는 정상 값보다 2배 이상 높은 8.2G를 가리켰다. 외부 온도는 3,000℃에 달했다. 설상가상으로 원인 모를 연기도 피어올랐다. 뭔가 이상이 있었지만 캡슐은 원인 모를 그 '이상'을 다행히 견뎌냈다. 착륙 지점에서 멀리 벗어나긴 했지만, 캡슐은 카자흐스탄 초원에 떨어졌고 이소연 씨를 비롯한 3명의 우주 비행사는 무사히 땅에 발을 디뎠다.
인간은 아직 달을 넘어 더 먼 곳에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화성 여행은 늘 담대한 목표이자 '가까운 미래'의 일이었다. 우주계획을 시작한 이후 인간은 늘 20년 안에 화성을 방문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화성에 발을 디디고 돌아오려면 3년이 걸린다. 승무원 4명이 3년 동안 우주공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식량을 자급하고 태양 방사선도 피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중력 상태에서 오랜 시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지금도 과학자들, 그리고 인류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영화 <마션>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 원작도 영화만큼이나 큰 관심을 받았다. <마션>의 주인공은 우주과학자이자 식물학자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결국 화성에서 살아남는다. 우리가 화성에 혼자 남게 된다면 <마션>과 함께 이 책 <생존의 한계>를 갖고 있다면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런 일이 생겨서도 안되고, 당분간은 그럴 일도 없겠지만.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