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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Jul 30. 2018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모든 것의 기원>



코페르니쿠스(1473~1543)가 최초는 아니었다. 그의 이론은 과학적 계산이나 관측의 결과가 아니라 철학적 직관에 가까웠다. 사제였던 그는 아름다운 우주를 추구했다. 지구가 중심이라는 천동설에 끼워 맞춘 우주는 아름답지 않았다. 지동설을 적용하면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지저분한) 문제가 해결됐다. 


코페르니쿠스보다 1,700년 전에 지동설을 주창한 학자가 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타르코스였다. 그는 태양과 지구, 달까지의 거리까지 계산했다. 부정확했으나 과학적 방법을 사용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천문학 사상 가장 위대한 ‘재발견’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살아남았다.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화형은 피했다. 그는 독실한 로마 가톨릭 신자였다. 동시에 실험적인 검증을 중시했다. 망원경을 직접 만들어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이론을 제시했다. 과학적 연구 방법을 통한 수학 법칙과 수량 분석을 확립했다.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혹은 근대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다. 


동시대를 살았던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 역시 종교 재판에 회부되었다. "우주는 무한하게 퍼져 있고, 태양은 그중 하나의 항성에 불과하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모두 태양과 같은 종류의 항성이다.” 그는 무한 우주론을 주장했다. 로마 교황청은 브루노를 화형에 처했다. 마지막 순간, 브루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화형대에 묶인 나보다 나를 묶고 불을 붙이려는 당신들이 더 떨고 있구려.”  


빅뱅과 이후 우주 팽창을 설명한 개념도. <사진 출처=NASA>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브루노……. 그들이 보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운명은 엇갈렸지만, 보고 싶었던 것은 하나였다. 시작, 혹은 기원. 그들은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우주와 지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었다. 결국, 그것은 인간의 기원에 관한 문제였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질문은 종교에서 찾았으나 답은 과학에서 구했다. 


시작을 찾는 모든 탐구는 본질적이다. 기원을 찾는 모든 질문은 실존적이다. 그래서 교양과학 서적을 읽을 때면 철학책을 읽는 느낌을 받는다.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라는 부제가 붙은 <모든 것의 기원 The Origins of Everything>도 그렇다. 별과 은하의 탄생에서 생명과 진화, 문명에 이르기까지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바꾼 핵심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그 기원을 찾아 나선다. 


핵심 질문은 하나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우리는 누구인가? 많은 과학자가 이미 그 점을 간파했다. 칼 세이건은 자신의 역작 <코스모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이다.”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호킨스(1824~1910)는 이런 말을 남겼다. “태양과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들의 상당 부분이 별에서도 발견된다.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수많은 별에서 발견되는 가장 흔한 원소가 다름 아닌 행성 지구에서의 생명 현상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수소, 나트륨, 마그네슘, 철 등이라니!” 


태양과 지구에 존재하는 원소의 상당수가 별에서도 발견된다. 우주는 하나의 물질 공동체인 셈이다. <사진 출처=픽사베이>


기원에 의문을 가졌던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는 늘 자신의 기원에 의문을 가졌다. 그 의문과 궁금증이 과학기술을 발전시켰다. 많은 과학자가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풀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실험했다.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경쟁하면서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미국 벨연구소의 젊은 물리학자 아르노 펜지어스와 로버트 윌슨은 대형 통신 안테나 활용법을 연구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출처를 알 수 없는 잡음이 그들을 방해했다.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나 잡음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결국, 이들은 인근 프린스턴 대학의 로버트 디키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다. 설명을 들은 디키는 두 젊은이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눈치챘다.


그들이 그토록 없애고 싶었던 잡음은, 자신들이 그토록 찾고 싶었던 신호였다. 바로 우주배경복사였다. 138억 년 전 대폭발로 우주가 만들어질 때 방출되었던 빛이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약 15조km의 100억 배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빛, 다시 말해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빛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최초에 빅뱅이 있었다. 


최초에 대폭발이 있었다


최초에 대폭발((Big Bang)이 있었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의 강력한 증거다. 시작은 작은 점이었다. 빅뱅이 일어나기 전까지 현재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과 에너지가 원자보다 훨씬 작은 영역에 뭉쳐 있었다. 온도와 압력이 얼마나 높았을지는 상상에 맡기자. 이 상태는 10-43초 동안 계속된다. 이 찰나보다 짧은 시간대를 ‘플랑크 시대’라고 부른다. 그 후 우주는 10-35초 동안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록 빠르게 팽창한다. 이 시간대를 ‘인플레이션 시대’라고 한다. 


20세기 초까지 천문학자들은 은하수가 우주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도 정적이면서 영원불변이라고 믿었다. 1920년대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이 지름 250cm 천체망원경으로 다른 은하를 발견했다. 게다가 모든 은하가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관측해 우주 팽창을 입증했다.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빅뱅 전에는 무엇이 있었는가? 무책임하게 들리겠지만, 아무도 모른다. 현대 물리학과 천문학은 빅뱅까지만 규명했다. 물론 플랑크 시대와 인플레이션 시대, 우주가 어떤 상태였는지도 불분명하다. 빅뱅이 모든 것의 시작이 아닐 수도 있다. 분명한 건 하나의 점에 모여 있던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빅뱅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 에너지는 훗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과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우리가 사는 지구와 생명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사진출처=픽사베이>


138억 년의 역사를 꾹꾹 눌러 담았다


이 책은 예일대학교 학부생을 대상으로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제목으로 한 학기 동안 진행한 세미나를 엮은 것이다. 목적은 검증 가능한 커다란 가설을 통해 학생들에게 과학을 가르치는 것. 저자인 데이비드 버코비치는 ‘기원(Origins)’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기원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과학적인 개념이다. 무언가의 기원을 추적한다는 것은 신화나 옛날이야기를 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주는 가설을 세운다는 뜻이다. 과학적 가설은 측정 가능한 예측을 수반하기 때문에 과학자는 실험이나 관측을 통해 가설이 틀렸음을 반증할 수 있다.”


인간은 약 700만 년 전에 처음 등장했다. 동물은 인간보다 6억 년, 최초의 생명체는 동물보다 약 30억 년 먼저 출현했다. 태양계와 지구는 이보다 10억 년쯤 형성되었다. 우주에 시간이 처음 흐르기 시작한 시점은 여기서 또 90억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적 가설이다. 이렇게 138억 년 동안 벌어진 모든 것의 기원을 이 책 한 권으로 알 수는 없다. 다만 어디에서 출발하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된다. 책 뒤표지의 추천사 하나가 마음에 들어 맺음 글로 삼는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의 추천사다. 


“생명의 기원은 하나, 생명을 이루는 모든 원소는 별에서 왔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교과서가 필요하다. 모두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던가. 모든 것의 기원을 단 한 권의 책에 꾹꾹 눌러 담았다. 우주가 가장 잘한 일은 호모 사피엔스를 빚어낸 것이다.”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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