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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Oct 13. 2015

영화 <마션>을 보는 3개의 코드

감독, 유머, 중국은 <마션>에서 어떻게 작용하나


내가 관심을 둔 것은 화성이 아니다. 이미 탐사선이 착륙해 화성의 실제 모습이 수시로 공개되고, 최근에는 물의 흔적까지 발견된 상황이라 신비감이 많이 사라진 탓도 있으리라. 그것보다는 화성에서 물의 흔적이 발견됐다는 NASA의 발표, 그리고 영화 <마션> 개봉, 그리고 때 맞춰 이루어지고 있는 NASA의 대대적인 화성 탐사 홍보 등에 비추어볼 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마션은 NASA의 홍보영화’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리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를 보면 이런 주장이 꼭 터무니없는 억측은 아닌 것 같다. 배우들은 NASA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등장하며, 우주 상황실은 실제 NASA 상황실에서 촬영이 이루어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술 대부분은 NASA가 현재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거나 진행할 예정인 기술들이라고 한다. NASA는 20년 후 정도에 사람을 태운 유인 탐사선을 화성에 보내기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국민적 공감대를 넘어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지원이 있어야 프로젝트 수행이 가능하다. 화성에 대한 호기심과 모험심, 도전의식, 그리고 어떤 난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강한 의지. 영화의 메시지는 NASA의 메시지로 읽힌다. 

◇화성이 아니라 리들리 스콧 감독   


내가 관심을 둔 것은 리들리 스콧 감독이다. 영화를 보는 첫 번째 코드이기도 하다. 나의 이메일을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디는 ‘blade(블레이드)'로 시작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서 따온 단어다. 내 아이디는 그의 (SF)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 셈이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룻거 하우어가 연기한 사이보그가, 사이보그를 색출하는 경찰 해리슨 포드를 앞에 두고 한 마지막 독백은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모든 게 사라지겠지.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내 눈물처럼.” SF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어느 평론가의 표현에 기꺼이 동의한다.  


사실 그는 SF 영화 말고도 <블랙 레인>, <델마와 루이스>, <지, 아이, 제인>, <글래디에이터>, <킹덤 오브 헤븐>, <블랙 호크 다운> 등  볼 때마다 재미있는 영화를 수없이 많이 만들었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은 여전히 나에게 <블레이드 러너>와 <에이리언>의 감독이며, SF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 가운데 한 명이다. 이런 감독이 만든 영화인데 NASA 홍보 영화이면 어떻고, 나사를 만드는 제조회사 홍보 영화이면 어떠랴. <프로메테우스>가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리다 개봉하자마자 달려간 것처럼 <마션>도 그랬다. 


아 그런데 어쩌랴. 늘 영화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고, 막상 보면 실망하는 사례가 더 많은 나의 영화 보기 습관을 바꿔야 할 모양이다. 영화평도 하나같이 칭찬 일색인지라 가급적 좋은 점만 보려고 애쓰면서 영화를 봤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만든 영화가 맞는지 자꾸 의문이 들었다. 우주에서 혼자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역정과 순간순간 마주치는 위기의 긴장감은 <그래비티>보다 덜 했다. 동료 한 명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많은 동료가 목숨을 건다는 스토리의 감동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자신들의 임무를 위해 자신들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스토리는 허무맹랑하다고 욕을 숱하게 먹은 <아마겟돈>이 차라리 더 극적이었다. 아무래도 기대가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유머 코드, 혹은 차이나 코드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은 유머 코드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위기의 순간에도 긴장된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주인공들의 유머는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네가 지금 혼자만 남아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생존에 필요한 지식과 과학기술이 아니야. 죽음의 문턱을 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단 하나, 그 상황에서도 유머를 던질 수 있는 여유야.”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주인공이 극적인 요소를 더 배가 시키기 위해 즐겨 쓰는 코드가 유머라는 사실(<다이 하드>에서의 브루스 윌리스를 보라)을 알면서도 SF라기보다는 극사실적인 과학 영화에 가까운 <마션>에서의 유머는 다르게 느껴진다. 
 


그리고 세 번째는 차이나 코드. <그래비티>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에서도 고립된 우주인의 지구 귀환에 직간접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중국의 기술이다. <그래비티>보다 <마션>에서는 그 코드가 더 노골적이고 작위적이다. 이것이 턱밑까지 쫓아오는 중국의 우주기술에 대한 위기감 때문인지, 갈수록 커지고 있는 중국 영화시장을 겨냥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과거 냉전시절 유일한 라이벌이었던 구소련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늘 ‘절대 악’으로 등장했다. 중국은 그렇지 않다. <마션>에서도 중국은 NASA의 동료 우주인 구조에 적극 동참한다. 그리고 성공을 간절히 기원한다. 이런 점에서 차이나 코드는 아무래도 중국 영화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일 것 같다.  


NASA의 우주인들이 화성에 고립된 동료 우주인을 구조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고 중국 등 세계 곳곳의 도시에 사람들이 모여 이 광경을 지켜보며 열광한다. 그 순간 화성 탐사는 미국 NASA의 임무가 아니라 전 인류의 임무가 된다. 맞다. 화성을 비롯한 우주 탐사, 혹은 우주의 비밀을 벗기는 것은 특정 나라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미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지구를 침공한 외계인을 무찌르고(심지어 어떤 영화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외계인과 맞서 싸우기도 했다),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행성을 파괴하는 것도 늘 미국이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런 '사명감'이 왠지 거북하다.


영화는 기대에 미치지 못 했다(다시 말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맷 데이먼 주연의 영화 아닌가). 우주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무래도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라는 부제가 붙은 원작 <마션>을 읽어봐야겠다. 누가 아나? 원작을 읽고 나면 영화에서 놓쳤던 부분이 다시 보일지. 


by 책방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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