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결정, 정리를 위한...

이별은 끝이 아닌 시작을 위한 준비

by jayjay

확장을 꿈꾸려면, 무엇보다 지금의 공간을 내려놓아야 했다. 단순한 "포기"가 아닌, "정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건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준비라고.” 나는 가게의 양도를 결심했다. 그 결정은 단호했지만 참으로 아려왔다.

결정을 하자 의외로 정리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8년간 공들여 가꿔온 작은 카페였지만, 그 안에 깃든 정성과 철학을 알아봐 주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의 크기나 위치가 아니라, 그 안에 쌓인 시간과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십자인대 수술을 위해 머물렀던 병원

양도 계약서를 들고 정리를 위한 마지막 발걸음. 그 발걸음 속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정말 이 공간을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나?” “다시 이런 공간을 만들 수 있을까?” 두려움과 기대, 아쉬움과 설렘이 서로 얽히고 뒤섞였다. 문이 닫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8년 동안 드나들던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침묵은 낯설게만 다가왔다.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았고, 처음 벽에 페인트를 칠하던 날의 고단함과 설렘, 첫 손님에게 커피를 건넸던 떨림, 한겨울 눈 내리던 날 창밖을 바라보았던 고요함. 그 모든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8년이라는 시간은 단지 ‘운영의 기록’이 아니라, ‘느리지만 추억으로 쌓아 올린 나의 이야기’였다.

쌓여있는 8년이라는 시간은 나의 손에 들려있는 양도계약서처럼 너무도 가볍게 나에게서 멀어져 가는 듯했다. 계약 후, 건강 회복을 위한 뜻하지 않은 안식년을 맞았다.

재활을 위한 병원에서의 시간은 더디지만 꾸준하게 흘러갔다. 기계에 다리를 올려놓고, 근육을 깨우는 연습을 반복하며, 무릎의 움직임 하나에도 깃드는 통증을 느꼈다. 새로 이어진 인공 인대가 잘못될까 봐 한 걸음 한 걸음이 두려웠다. 하지만 매일 달라지는 몸의 감각은 천천히 내게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나아지고 있는 중이라고.”

몸이 멈춘 동안, 정신의 속도를 늦추지 않기로 했다. 독서와 글쓰기,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사업 아이디어들을 정리하며, 또 한 번의 도전을 위해 단단히 다져나갔다. 삶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멈춤을 요구한다. 때론 사고로, 질병으로, 인간관계의 틈에서. 하지만 그 멈춤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몫일 것이다. 이번 기회로 그 사실을 배울 수 있었고 실패가 아닌 새로운 도전을 위한 시간이라는 사실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이 멈춤의 시간은 삶을 재 정비하고, 깊게 성찰하며,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한 재도약의 시간으로 만들어 갔다. 몇 개월의 재활 끝에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렇게 걸을 수 있으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도 되찾을 수 있었다. 스키장에서의 찰나 같은 순간은 분명 치명적인 실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또 다른 가능성의 시작점이 되어 주었다. 중요한 건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길을 보여주는 가다. 그 길을 찾기 시작했고 그리고 머지않아, 그 길 위에서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더 넓은 세계로의 발걸음이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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