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스키장에서의 사고

한순간에 덮친 삶의 질문

by jayjay

2023년 1월 1일, 새해 첫날. 나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오랜 시간 숨 가쁘게만 달려왔던 내게 “새해”는 단지 달력의 숫자만 바뀌는 날에 불과했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카페 운영이라는 일정한 삶의 리듬 속에서 오랜만에 “나를 위한 하루”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겨울과 가장 잘 어울릴 만한 선택을 했다. 스키장을 향한 발걸음은 마치 어린 시절, 마을 뒷산에서 비료 포대를 깔고 눈 위를 미끄러져 내려오던 유년의 기억을 불러왔다. 가슴이 묘하게 두근거렸다. 겨울 스포츠에 대한 동경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배워본 적은 없었다. 유튜브 영상으로 기초 강습을 익히고, 몇 차례의 짧은 경험을 거치며 얻게 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스노보드 대신 조금 더 직관적인 스키를 택했고, 활강의 속도감과 눈발을 가르며 느끼는 자유로움은 짜릿함 그 자체였다. 몸은 땀에 젖고 숨이 차올랐지만, 마음은 오랜만에 맑고 개운했다.

그날도 여러 번의 연습 때처럼 오전부터 리프트를 타고 슬로프를 오르내렸다. 잦은 실수가 있었지만, 익숙해진 탓에 중급 코스를 제법 자연스럽게 내려올 수 있었다. 오후가 되자 슬로프 위의 풍경까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찬바람은 피부를 스쳐 지나가며 묘한 해방감을 선물했다.

그러나 리프트 종료 시간이 가까워 오자, ‘한 번만 더’라는 욕심이 문제였다. 이미 몸은 피로에 젖어 있었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한 채 서둘러 슬로프를 향했다. 조급했던 마음, 방심했던 판단, 그리고 지형을 무시한 무리한 속도. 그렇게 나는 눈 위로 미끄러지듯 굴러 떨어졌고, 예전의 넘어짐이랑은 사뭇 달랐다. “툭” 소리와 함께 왼쪽 무릎에서 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그 순간에도 나는 부정하고 있었다. “그저 타박상일 거야.” 침착한 척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자세를 바꿔봤고, 일어나 내려오려 했지만 계속해서 넘어졌다. 고통은 묵직하게 자리를 지켰다.

사고 전 연습 시 이용한 패트롤 서비스 - 친구가 찍은 뒷모습

주변엔 사람들이 드물게 있었고, 도움을 요청하기엔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평정심을 찾을 때쯤 펜스 위로 구조번호가 보였다. 휴대폰을 꺼내 응급 구조를 요청했다. 패트롤 팀이 도착해 나를 구조해 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 사고가 내 삶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귀가전 연락이 닿은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걱정스러워하는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다음 날 찾은 병원. 촬영한 MRI 결과는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전방 십자인대 완전 파열. 수술 필요.” 조심스러운 의사의 말에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문장만이 맴돌았다. “수술을 하면 당분간 정상적인 보행이 어렵습니다.” 그 말은 곧, 내가 그토록 정성 들여 지켜온 가게를, 잠시 멈춰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차곡차곡 쌓아온 일상, 매일 찾아주는 단골들, 하나하나 직접 꾸려온 공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멈출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나를 덮쳐왔다. “이제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나의 건강보다는 가게에 대한 질문들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워라밸을 누려보겠다며 스스로에게 준 작은 선물이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큰 파장이 되어 돌아올 줄 몰랐다.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었고 가게문을 닫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나는 입원 준비를 하면서 다시 깊은 침묵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이 사고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왜 또다시, 이런 형태로 삶은 나를 시험하는 걸까?” 수술은 생각보다 길고 버거운 과정이었다. 회복은 더더욱 그랬다. 수술 후 무릎을 구부리는 재활조차 고통스러웠고, 목발에 의지해야만 하는 일상은 모든 행동에 제약을 줬다. 혼자 씻기도 어려웠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조차 두려웠다. 무엇보다 가게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은 내 존재가 내 삶에서 한 발짝 밀려난 듯한 소외감을 안겨주었다. 나는 병상에 누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이 상황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가게를 계속 비워둘 수는 없었다. 매일 찾아오는 단골고객들, 나를 믿고 응원해 준 주위분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멈출 수 없는 나의 의지였다. 깊은 고민 끝에,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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