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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K Mar 08. 2024

[미셸 들라크루아] 탄생 90주년: 파리의 벨 에포크

"They are records of impressions."

이달 말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진행하는 <미셸 들라크루아, 파리의 벨 에포크> 전을 관람하고 왔어요. 작가의 탄생 90주년 기념전이기도 합니다. 그림의 안내를 받으며 작가의 어린 마음에 따뜻한 흔적으로 남은 파리의 인상을 따라 걷는 동안 포근함을 느낄 수 있는 전시이니, 찬 바람이 물러가기 전에 다녀오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물랭 루주, 영원히>

전시장으로 발을 들이면 <물랭 루주, 영원히>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영상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옵니다. 바삐 움직이는 마차와 사람들의 걸음, 파리의 시내를 환하게 메우고 있음에도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불빛을 잠깐 서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1930년대 파리로 들어갈 준비가 되는 게 느껴져요.



물감을 도탑게 쌓아 올렸는데, 탁하거나 답답하지 않았어요. 차가운 날씨에 껴 입은 목을 감싸 안는 두꺼운 스웨터가 주는 포근함을 아크릴 물감으로 그려내면 이런 텍스쳐일까요. 물에 비친 모습, 흰 눈과 달빛에 비친 모습과 같은 반영은 오히려 놀랍도록 맑고 투명하게 그려졌고요. 물감만큼이나 켜켜이 쌓아 올린 화가의 애정이 흠뻑 드러납니다.


사진은 찍을 수 없었지만, 가을을 그려낸 <생 루이 섬의 끝에서>에서는 흰색 물감을 많이 섞어 넣은 듯한 색감으로 표현했는데, 그 물 빠진 듯한 색이 그림 속 가을을 더 그리운 것으로 만드는 듯했어요.


파리의 소박한 기쁨들

사실 미셸의 화재(畵材)에는 그리 특별할 게 없어요. 볕이 좋은 날 발코니에서 이불을 터는 사람, 다정한 연인, 활기차고 따뜻한 레스토랑, 공놀이를 즐기는 어린아이와 강아지, 장작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밀고 가는 부자, 가로등 불빛이 번져 나가는 모습.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누구보다 사랑에 찬 눈으로 캔버스에 그려내었고, 이 그림들은 아름다움과 기쁨, 명랑함의 소박함을 발견하도록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림 곳곳에서 똑같은 모습의 점박이 강아지를 발견할 수 있어요. 미셸이 어린 시절 키웠던 강아지 '퀸(Queen)'이라고 합니다. 때로는 그의 분신으로 그림 속에 감춰 두기도 했다고 해요. 혹자는 예술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찬양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사랑한 것은 파리 그 자체일까, 둥근 꿈같은 어린아이의 시선일까 궁금해지네요.



'My paintings are not photographs or documentation of the past. They are records of impressions, just like the 'Impressionist' paintings, such as Monet's Impression, Sunrise, they are impressions of Paris."

미셸은 자신의 그림이 사진이나 과거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모네의 그림처럼, 파리의 '인상'에 관한 기록이라고.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와 어린 시절의 경험을 조합하여 그의 마음에 남은 인상을 시각적인 기록으로 재구성한 실체인 그림들 가운데, 어린 화가의 눈으로 본 낭만의 좇을 수 있도록 빛으로 길을 내고 색채로 말하고 있어요.


그림이 미셸을 놓지 않았듯 그도 평생 그림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앞으로 그려갈 세상에 대한 약속이 담긴 그림으로 파리의 벨 에포크 산책을 마무리했어요. 아름다운 파리가 각인된 그의 어린 영혼이 순수했기에, 어린아이가 서툴게 그린 그림이 주는 기쁨과 같이 미셸의 감상은 마음을 흐뭇하게 하다가 빠듯하게 채워 오는 구석이 있었습니다.



전시장을 벗어나니 미셸 들라크루아의 판화가 별도로 전시된 공간이 보였어요.


<몬테크리스토>가 보이네요!
필름사진 같은, 맑은 그리움과 동경

캔버스에 아크릴로 그린 원화와는 또 다른, 깔끔하면서 더 팝한 색감이 눈에 들어왔어요.


티켓 수령 카운터 옆에는 미셸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프레임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부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전시의 감상을 오래 추억하기에 너무 좋은 기념품이기도 하니 돌아가기 전에 꼭 한 장씩 찍어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예술의전당 1층에는 커피가 맛있기로 너무 유명한 테라로사가 자리하고 있죠! 전시 관람의 감동이 휘발되기 전에 차분한 분위기로 꾸며진 카페에서 뺑 오 쇼콜라와 카페라떼 한 잔을 놓고 앉아 감상을 곱씹어보는 것도 기쁨의 연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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