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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예원 Dec 10. 2020

타임스퀘어는 반짝이지만 침대가 좋은걸

뉴욕의 중심에 살지만 집이 너무 좋은 집순이의 생각회로

    코로나로 인해 파크 에비뉴 썸머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즐길 수 없고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영업이나 각종 퍼레이드가 취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뉴욕이 세상에서 가장 할 게 많은 도시임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연어 베이글을 포장해 센트럴 파크에서 이제는 당당하게 내 마린 블루 색의 돗자리를 펴고 책을 읽는 피크닉을 할 수도 있고, 센츄리 21이나 블루밍데일스, 그 유명한 5번가를 돌아다니며 좋은 옷을 더 좋은 가격에 쇼핑할 수도 있으며 육지가 지루하다 싶은 날에는 어디서든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피어에 가 페리를 타고 노을을 감상하면 된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데 그런 날에는 편한 샌들을 신고 에코백을 맨 뒤 맨해튼 여기저기를 걸어 다녀본다. 그러다 보면 갈 때마다 희열을 느끼는 타임스퀘어나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럭셔리한 주택가를 지나며 2만 보를 걸은 뒤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게 된다. 아직도 구글맵의 ‘가보고 싶은 리스트’에 이백 개가 넘는 핀이 있지만 일요일 오후 한 시인 지금, 나는 이틀 동안 집 밖의 땅을 밟지 않았다.


     뉴욕에 오고 난 뒤 밖에 나가지 않는 날은 그저 쉬어가는 조금 아까운 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만한 게 밖에 나가서 후회를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을뿐더러 버스로 20분 거리인 허드슨강에 잠깐 나가 노을만 보고 오더라도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고 수많은 감정을 꼭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특정 옷 가게나 서점, 레스토랑을 가지 않더라도 브라이언트 파크나 센트럴 파크에 가서 몇 시간 정도는 책을 읽다가 온다. 며칠 전에는 처음 먹어보는 프렌치토스트 베이글 (베이컨과 잼의 조화는 환상이었다)을 테이크아웃해서 센트럴 파크 벨베디어 성 옆에 앉아 책을 읽었는데 솔솔 불어오는 바람과 돔처럼 넓게 펼쳐진 나뭇잎들 사이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은 단연코 집에 있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상적인 외출도 좋으니 코니아일랜드나 호보켄을 여행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몇 번 정도는 오롯이 집에 있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게으른 건가, 깨어있는 시간 동안 이렇게 침대에 엎드려 있고 낮잠을 자도 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반신욕을 하거나 그저 누워 쉬는 등 벽난로가 있는 나의 하얀 스튜디오는 재충전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 보면 나에게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반짝이는 동상, 해질녘에 걸어 다니는 도시, 처음 먹어본 음식. 이곳은 남의 도시이기 때문에 사소한 경험 하나도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자 영감이 된다. 첼시 피어를 걸으며 도시와 자연이 너무나도 가깝고 잘 어우러지게 설계된 뉴욕의 도시 계획에 감탄하고, 이스트 리버 파크에서 바다 냄새를 맡으며 아침 조깅을 하면서 열심히 운동하는 멋진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고, 코니아일랜드 해변의 빈티지 놀이공원을 걸어 다니며 캘리포니아 하이틴 영화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많은 경험을 하다 보면 매일 집 열쇠가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수많은 작은 보석들을 들고 돌아오는듯 하다. 하지만 이 보석들을 그냥 놔두면 그저 갤러리 속 한 장의 추억이 될 뿐이다. 자꾸 생각하고, 갈고닦고, 재창조해 주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완전한 내 것이 된다.


 요즘 내 플래너에는 매일같이 ‘창의적인 활동하기’가 적혀 있다. 책에서 영감을 받은 이후로 나는 내가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임을 인지하고 자꾸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표현에 목말라있는 것은 뉴욕에서 내가 받는 인풋에 비해 아웃풋이 부족해서일지도 모른다. 집에서의 시간은 생각하는 시간이다. 또 재창조하는 시간이다. 집 밖에서의 시간만큼 소중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일요일 오후, 나는 맨해튼 시내를 나가지 않고 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이 부끄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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