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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21. 2024

고향에 한번 가고 싶은 친구



동네 어귀에 다리가 놓여 있다. 

앞 개울의 언덕이 높고 물이 돌아가는 동네이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가 있고, 그 다리를 건너면 동네의 중심인 도가 거리였다. 도가는 막걸리를 만들고 그곳에서 팔기도 하면서 술 먹으러 모이는 장소로 양조장을 그렇게 불렀다.

도가 거리는 사거리로 동네의 중심이고 늘 사람들과 술 마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컸던 곳이다. 동네에서 골목길이 모이는 이곳에서는 여름밤이면 사람들이 또래들을 만나는 곳이기도 했다.


도가 거리에 늘 친구는 그곳에 있었다. 

도가 집 아들이기 때문에 술도 만들고, 도가를 지키기도 했었다. 겨울이면 사무실에 난로가 있어 또래들이 모이고, 여름이면 도가 거리에 시원한 느티나무가 있어서 그곳에 모였다. 젊은 청춘들은 미래도 이야기하고 막걸리를 한잔하기도 했다. 

막걸리는 찌그러진 주전자에 큰 술잔으로 마셨다. 술잔이 커서 단순에 마시기에 숨이 찰 정도이고, 술량이 적은 사람은 두 번 나눠 마셨다. 그때 기본 안주는 굵은 소금이었다. 

큰 잔에 가득 채워 숨차게 들이마시고는 소금을 손으로 집어 입으로 넣으면 한잔이다. 그때는 한창이라서 다섯 잔 정도 연이어 마시면 배가 불룩해지고 약간의 취기를 느꼈다. 그렇게 계속 마셔도 취하기보다 소변을 누러 자주 가는 일이 많았다. 배가 불러서 막걸리를 못 먹겠다는 친구도 있었다. 


친구는 양조장 집 아들이지만 술을 만들기는 했지만, 잘 마시지는 못했다. 두 잔 정도만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체질이었다. 술이 먹고 싶으면 늘 도가에 가면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그때는 그렇게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고 친구들이 모이면 권하는 맛에 먹기도 하고, 그냥 도가에 친구들이 있어서 놀러 간 것이다. 

그곳은 어른들이나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면서 새 소식도 들을 수 있고, 아직 젊은 나이이니까 친구 만나서 즐겁던 곳이다. 불안한 미래를 그곳에서 걱정하면서 서로 정보도 나누던 곳이 도가였다. 

그곳에는 마을에 한 대뿐인 수동식 전화기가 있던 곳이어서 외지에서 전화가 오면 그곳에 와 받았다. 또 외지로 전화를 걸 때도 그곳에서 수동식으로 교환양이 연결해 주었다. 이때 전화를 친구가 방송하면 급하게 와서 받던 시절이었다. 


또 도가 거리에는 점방도 두 곳이 있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점방 중에 비슷한 또래 후자가 하는 곳은 친구의 단골집이었다. 저녁에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친구는 늘 후자네 점방에서 콜라를 사서 들어갔다. 같은 또래니까 후자네 점방에는 또래의 여자들이 모여들기도 해서 둘은 친하게 지냈다. 

어느 눈 내리는 날 후자네 점방에 장에 가서 양미리를 사다 놓은 적이 있었다. 이런 날은 늘 막걸리 안주로 소금만 먹다가 양미리 안주로 마시는 날이다. 양미리를 친구들과 연탄불에 구워서 막걸리와 같이 먹던 그 맛은 잊지 못할 것이다. 양미리를 막걸리를 마시지 않고 먹으면 친구들의 큰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눈 내리는 날 연탄불에 양미리를 구워서 컬컬한 막걸리 마시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즐겁고, 그리움이 밀려오며 입가엔 미소가 돈다. 


하루는 후자네 점방에 면 소재지의 청년들이 아랫동네 가마소에 단체로 야영을 와서 부근에 점방이 있는 곳은 도가 거리이니까 온 것이다. 

술도 사고 과자도 사면서 도가 거리에서 큰 동네에서 왔다고 거드름을 피운 것이다. 

평소 도가 거리는 친구가 터줏대감이라고 생각하는데, 면 소재지 청년들이 와서 동네를 얕보는듯한 느낌에 자존심이 상해서 동네에서 성질 있는 친구를 찾아간 것이다.

성질 있던 친구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과수원에 있었는데, 그곳까지 갔었다. 저녁에 손 보기로 하고 돌아와 동네 청년들을 수소문해서 모았다. 그래서 어느 여름 초저녁에 동네 청년들이 가마소에 야영하는 면 소재지 청년들을 갑자기 들이닥쳐 기선을 제압하고, 야영 도구를 챙겨 들게 하고 정렬시켰다. 

면 소재지 청년들을 가마소에서부터 2열 종대로 제식훈련을 하듯이 도가 거리까지 온 것이다. 이때 행진하면서 부른 노래가 “독도는 우리 땅”을 개작하여 “상청은 형님 땅”이었다. 그때 도가 친구는 겁 많고 기질이 순해서 가마소에 따라오지 못하고, 도가 거리를 행진해가는 면 소재지 청년들을 보면서 즐거워했었다. 그렇게 친구는 도가 거리를 오랫동안 지키면서 애착이 남다른 곳이다. 


도가 사무실에 전화기가 있으니까 교환들과 자주 전화할 기회가 많았다. 

도가에 모이면 오늘은 교환양 중에 누가 근무하는 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그중에 기억나는 아가씨가 금양이었다. 

친구 중에 금양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황군이었다. 금양이 근무하는 날에 도가 친구가 전화해 황군에게 바뀌어 주면 황군은 말도 별로 못하고 얼굴만 붉히는 친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금양이 면 소재지 위 마을에서 동네에 내려온 것이다. 금양은 후자네 점방에 앉아 있고, 도가 사무실에는 친구와 황군도 있고 여러 친구가 모여 있다. 

그때 친구는 도가에서 점방으로 다시 도가로 그러다가 집으로 가는 척하면서 다시 돌아오면서 도가 사거리에 왔다 갔다하는 사람이 되었다. 

당사자인 황군은 용기가 없어서 후자네 점방에도 가지 못하고, 그날 더 흥분하고 안절부절못했던 사람은 도가 친구였다. 

면무소 여직원이 내려와 후자네 점방에 있어도 도가 친구는 도가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도가 친구는 순수하고 아직 이성에 호기심이 많을 때였고, 그런 면에서는 순진했었다. 


그 뒤 황군은 금양을 따로 읍내에 가서 만났었다. 

만나러 가는 날 황군은 친구들에게 바지도 빌려 입고 한껏 꾸미고 나갔지만, 다시 만나자는 말도 못하고 그렇게 끝났다고 한다. 

친구는 도가 거리에 가면 늘 만나는 사람이고, 그곳에 오면 친구가 있었다. 도가 거리가 친구의 일터이고 

또래들이 모이는 사랑방이었다. 그 중심에는 친구가 늘 있었고, 맛있는 안주가 생기면 친구들을 불러 모우기도 했다. 친구는 도가 거리에서 집으로 들어가면 도가 문을 잠그기 때문에 막걸리를 팔지 않았다. 

간혹 술이 모자라는 친구들은 도가 뒷창문을 열고 들어가 술독에 술을 담아다가 마셨다. 아침에 나오면 술독의 모양새를 보면 간밤에 술을 훔쳐 간 것을 알았지만 도가 집 친구는 눈 감아 주었다. 


사시사철 붐비던 도가 거리에 군 제대하고는 친구들은 직장 따라 떠나면서 더 이상 모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막걸리를 먹던 어른들도 돌아가시고 젊은이들은 직장을 따라서 시골 마을을 떠나면서 막걸리 수요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친구네의 양조장도 다른 곳과 통합되고 양조장은 오랫동안 빈집으로 있다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가정집으로 개조되었다.

후자네 점방도 후자가 시집가고 동네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문을 닫았다. 그렇게 사람들이 붐비던 도가 거리도 예전처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늙은 느티나무는 여러 해 더 그 자리에 자리를 지키다가 죽고, 그 옆에 자라던 작은 느티나무가 커서 대신하고 있다.


수십 년이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은 서로 잊지는 않았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명절에 오면 만나는 친구도 있었지만 오지 않거나 와서도 부모님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 만나지는 못했다. 

도가 친구도 객지에 나가고 나이가 들어서 자주 만나지 못했다. 당료가 심해서 힘들게 투병한다는 이야기는 들었고 서로 사는 것이 바빠 연락도 자주 못하고 지냈다. 

소문은 도가 친구는 당료가 더 심해서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와 고향에는 거의 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고향에 있는 모친이 돌아가시면서 왔는데, 눈이 보이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부축하면서 산소에 올랐다. 그때 친구를 만났지만 적당한 위로의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안부만 물었다. 도가 친구의 그런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고, 도가 거리에 그렇게 활발하게 다니던 친구의 모습과 연상이 되지 않았다. 


도가 거리도 조용하면서 양조장 터 개인 집에 살던 사람들도 노인들만 남고 자식들은 도시로 나갔다. 노인 중에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할머니도 얼마 전에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빈집이 되었다. 

그 집에 멀리 외지에 나가 살던 도가 친구의 외삼촌이 이사를 왔다. 외삼촌도 도가 거리에서 살던 사람으로 조용히 여생을 보내려고 귀향한 것이다. 


도가 친구는 아직 당료병 치료와 투석을 병행하는 아프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 그래도 신앙을 갖고부터는 믿음으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간혹 전화가 연결되면 하나님이 기쁨이고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있다. 그리고 믿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고향에 돌아온 신앙이 없는 친구들에게 믿음에 관한 책도 보내주기도 한다. 

그래도 친구는 도가 시절에 양조장 집 아들이면서 반듯한 외모는 주변 처녀들의 선망이었고 성격도 고왔었는데, 이렇게 변한 것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예상치 못한 아쉬운 삶이다. 


동네에 이사 온 친구의 외삼촌이 안부 전화를 하니까, 고향에 한 번만이라도 가 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친구에게 얼마나 보고 싶은 고향이고 도가 거리일까? 

지금은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머리에는 선명하게 남아 있고 그려지는 도가 거리일 것이다. 그곳에 가면 그 옛날 풍경이 보일 것 같은 마음일 것이다. 

지금은 도가 거리에 후자네 점방도 없고 있는 사람들은 많이 변했지만, 함께 즐겁게 떠들고 놀던 “형님 땅” 친구도 돌아와 있고, 교환 금양과 데이트했던 황군도 시내버스를 운전한다고 하는데 다시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한없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그곳에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분위기를 느끼면서 옛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너무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다시 보고 싶은 도가 거리이다. 누구나 해보고 싶은 것이 있고, 예전의 추억을 느끼고 싶은 것이 있다. 도가 친구의 마음이 그런 것이다.

도가 친구는 다시 보고 싶고 느끼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다시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온다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젊은 시절을 보낸 도가 거리를 친구는 보고 싶은 것이다. 

마음속에 보고 싶은 고향의 도가 거리와 옛 친구가 있는 곳으로 오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도가 친구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고향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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