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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종익 Jun 23. 2024

한 마리 개

장 시간 여행 뒤에 돌아온 집에서 익숙한 잠을 잤다. 

습관이 된 아침 조기 기상은 아침 걷기로 이어진다. 익숙한 도로 길을 따라 골짝으로 멀리 보이는 산으로 가는 것처럼 걷는다. 

장기간 집을 떠나 사이에 우리 논에는 모내기가 끝났고, 모들은 벌써 사림이 되어 잘 자라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모내기는 부탁했지만, 논둑은 그대로이니까 다른 논들과 구별되게 잡초가 무성하다. 논둑을 예전에는 풀을 베고 논흙으로 정리했지만, 지금은 제초제를 뿌려서 풀이 보이지 않게 한다. 그러다가 다시 풀이 올라오면 다시 제초제를 뿌려 풀을 말려버리는 것이다. 

풀이 무성한 논둑을 보면서 들판 길을 걸어갔다.


마을을 벗어나 한 절을 지나면 다음 마을이 보인다. 아직 사람들이나 차들이 다니지 않는 조용한 시골길을 심호흡하면서 멀리 보이는 산허리에 구름이 돌아가고 있는 광경도 구경한다. 

다음 마을에는 늘 부지런한 노인은 벌써 리어커를 앞세우고 들로 가는데, 오랜만에 인사하니까 반가워하면서 한동안 보지 못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른 곳에서 잘 있다가 왔다고 말하고, 다시 마을 앞길을 지난다. 이 마을 앞 다리를 지나면 다음 마을은 보이지 않고 산속으로 가는 듯한 도로길이다. 지나는 길 양파밭을 지나면서 멀리 보이는 곳에 눈이 고정되고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다.

두 마리 개가 아직도 잘 있는지 생각이 나고, 아직도 내가 가면 뛰어나와 반길지 궁금하다. 여기서부터 눈은 산 밑으로 고정되어서 걷는다. 두 마리 개가 아직도 이 들판에 살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있는지 눈으로 보고 싶어서 마음에 급해진다.


도로 길에서 논길로 들어갔다. 배추밭에 마지막에 본 배추는 겨우 자리를 잡았었는데, 지금은 배추에 알이 차려는 중이다. 머지않아 배추가 출하되고 그 자리에 콩을 심을 것이다. 

배추밭을 지나면서 수로 위의 강아지 포획 틀이 있던 곳이 보인다. 그 포획 틀이 보이지 않고 주변도 말끔히 정리되어 있다. 

예전 같으면 여기에서는 두 마리 개들은 벌써 나와 반갑게 꼬리를 흔들 때인데, 아직 개들은 나오지 않았다. 느낌은 이 들에는 두 마리 개들이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포획 틀이 없어진 것으로 봐서 개들이 포획되어 갔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두 마리 개들이 좋은 곳에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보이지 않으니까 아쉬운 마음일 든다. 논길을 나와 다시 도로 길을 돌아 집으로 왔다.


다른 날 아침 걷기에서도 두 마리 개가 살고 있었던 곳을 지날 때 생각은 났지만, 늘 돌아가는 다리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아침 걷기를 하는데, 개 한 마리가 밭 사이에서 보인다. 그런데 그 개는 나오지 않고 내가 두려운지 아니면 잊었는지 멀리서 지나가는 것을 쳐다만 보는 것이다. 가까이 가니까 숲으로 숨어 버리고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주변 논 주인들에게 많은 위협을 받아서 사람을 피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너무 오래 지나서 잊어버린 것이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 있는 것만 봐도 좋다는 생각하면서 한 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아침 걷기에서 돌아오다가 윗마을의 지인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들판에 살던 두 마리에 개 이야기를 했다. 

두 마리 개가 어디서 왔는지 누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고, 그때 버려진 강아지가 안쓰러워서 먹이를 주는 교회 장로님이 있다고 한다. 

보통 이틀에 한 번씩 농사용 트럭을 타고 가서 먹이를 주고 왔는데, 개들이 이 흰색 트럭이 나타나면 산에서 반갑게 내려왔다는 것이다. 

그 장로님은 농사를 많이 하기에 어떤 날은 피곤해서 가기 싫어도 먹이를 기다리는 개들이 눈에 들어와서 갔었다고 한다. 먹이를 주로 오는 장로님의 흰 트럭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두 마리 개들은 멀리서부터 알아보고 달려 나와서 맞이했다. 두 마리 개들은 트럭을 보면 너무 좋아서 움직이는 트럭에 깡총 깡총 뛰면서 달려들었다. 트럭에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 뛰면서 맞이했는데, 어느 날 낭패가 일어났다.

조금 활달하게 생긴 개가 서행하는 트럭 바퀴에 뛰어들다가 받친 것이다. 개 한 마리는 그렇게 해서 들판에서 먹이를 기다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들판에 한 마리 개만 남은 것이다.


남은 한 마리 개는 그래도 흰색 트럭을 기다리지만, 전처럼 과도하게 바퀴 부근에 오지는 않는다고 한다. 개들에게 먹이를 주던 선한 장로님은 생각지도 않은 사고가 생긴 것이다. 지금도 남은 개에게 먹이를 주지만 늘 죽은 개를 생각하면 아쉬운 마음이라고 한다. 개들이 불쌍해서 한 일이 한 마리 개를 죽이는 일이 생긴 것이다.

두 마리 개들은 버려져 장로님이 주는 먹이로 연명했지만, 주변 논 주인들이 작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몽둥이나 돌로 보기만 하면 쫓았다. 두 마리 개들은 해를 끼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별해야 하고 늘 사람을 피하기에 바쁘다. 그래도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사고로 죽은 것이다. 

이제 남은 한 마리 개는 거처를 산으로 옮기고 위협 주는 사람이 오면 산으로 피하고, 먹이 주는 사람이 오면 내려왔다. 


그 뒤로 남은 한 마리 개가 나를 기억하는지 지나가면 전처럼 가까이 오지는 않지만, 거리를 두고 따라 다녔다. 확실히 의심을 많이 하고 표정이고 밝아 보이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도 아직 주변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아서 농민들이 약을 놓거나 포획하려고 하지 않았고, 보이면 자기 논 가까이 오지 말라고 쫓기만 한다. 

개들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재능이 상당하다. 

며칠이 더 지나니까 이제는 예전에 따라다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완전히 알아차린 것 같다. 아침에 조심스럽게 산에서 내려와 걷기에서 돌아오는 다리까지 따라와서는 다시 돌아가는 길에도 따라 다닌다. 

온종일 혼자서 지니다가 아침에 자기에 관심을 보여주고, 쫓지 않는 사람을 다시 만난 것이다. 

예전에 두 마리가 같이 있을 때는 서로 장난도 치면서 심심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제는 혼자서 온종일 지낸다. 간혹 먹을 것이 없을까 찾기도 하지만, 늘 혼자 지내는 들판에 외로운 한 마리 개가 된 것이다. 


한 마리 개는 아침 걷기에서 늘 만나는 일정이 되었다. 

개는 조용히 뒤를 따라서 바로 아랫마을 입구까지 내려 왔다가 돌아간다. 얼마나 외로우면 아침에 따라 다닐까를 생각도 들면서, 그것 외에 먹이를 주지 않을까 해서 따라오는 것도 같다. 

매일 그냥 따라오는 개에게 미안해서 다음날에 먹이를 갖다 준다는 것을 생각하지만, 다음날 걷기 시작할 때까지 잊어버린다. 그러다가 먹이를 준비하려고 장날에 가서도 잊고 오기도 했다. 

어느 날은 아침 출발하면서 개 먹이 생각이 나서 급한 마음에 냉장고를 열어보니까 손질된 큰 굴비 한 마리가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개가 잘 나타나는 곳에 놔두고, 돌아서 조금 오니 개가 나타났다. 반가워하면서 달려오는 개에게 굴비를 직접 주지 않고, 적당한 곳에 굴비를 놓고 온 것은 너무 기다리는 것이 부담되어서 그랬다. 먹이를 자주 주지도 못할 것 같아서 그냥 알아보는 것에 대한 성의 표시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아침 들판에는 작은 개 한 마리가 살고 있다. 전에는 두 마리였지만 이제는 혼자서 살아가고 있다. 

이젠 포획하려고 하지도 않고, 어느 정도 들판에 적응되어서 포획하기 쉽지도 않다. 그 작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가서 키워줄 사람도 없을 것 같다. 

마음씨 좋은 장로님의 먹이로 살아가는 불쌍한 한 마리 개가 되었다. 그 먹이를 언제까지 줄지는 장로님의 마음이지만, 한 마리 개는 그렇게 홀로 살고 있다. 

두 마리 개가 살 때도 어렵게 살았지만 보기에는 서로 의지하고 살면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았는데, 이제 홀로 살아가고 있다. 

주는 먹이에 의존하지 않고 다른 버려진 개들처럼 야생으로 살 수 있는 들개가 되기에는 너무 작고 힘이 없어 보인다. 들판의 작은 한 마리 개는 사람들과 점점 더 멀어지면서 어떻게 살아갈지 염려스럽다.

아침에 걷는 들판 길에 홀로 사는 한 마리 개는 오늘도 걸으면 볼 것이다. 아침 걷기도 역마살 있는 사람처럼 떠나면 한 마리 개와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한 마리 개도 어떤 변화가 생길지 알 수 없지만, 좋은 방향으로 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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