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 노인

by 안종익

마실 네거리를 지나는 경운기 소리가 오른쪽에서 나더니, 또 왼쪽에서도 들린다. 얼마지않아 황 노인이 모는 경운기에 뒤에는 할머니가 타고 간다. 이어서 꼬리를 물다시피 왼쪽에서 김 노인 경운기에 뒤에 할머니가 타고 간다. 모두 마을 가운데를 지나, 뒤편 들로 넘어간다. 나란히 탈탈거리는 거리며 가다가 큰 다리를 건넌다. 얼마 가지 않아 황 노인 경운기 우측으로 가고, 김 노인은 곧바로 도로 따라갔다. 점심때나, 하루 일이 끝내고 집으로 올 때도 비슷하게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황 노인 경운기가 지나가면, 이어서 김 노인이 온다는 것을 안다. 두 노인을 마을에서 “담비 노인”이라 부른다.


요즈음 야산에 담비가 자주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 사는 나이 든 노인들은 예전에 담비를 자주 보았다고 한다. 그때 담비 한 마리를 보면 반드시 주변에 한두 마리가 더 있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야산에 갈 일이 많았다.

담비는 귀엽게 생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야생동물이다. 담비는 여러 마리가 함께 다니며, 협동해서 사냥하는 동물이다. 삵 보다 크고 잡식성으로 행동이 민첩하다.

현재 우리 주변 생태계에서 호랑이가 멸종되었다. 그래서 가장 높은 곳의 포식자는 담비가 되었다. 귀여운 동물이지만 나무를 잘 타고, 협동으로 사냥하므로 멧돼지도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 담비는 항상 두세 마리가 붙어서 다니는 동물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두 노인에게 “담비 노인”이라고 부른다.


노인정 갈 때도 같이 가고, 한 사람이 집으로 가면, 조금 있으면 다른 노인도 따라 일어난다. 오일장 갈 때도 한 노인이 가면, 따라서 장에 간다. 별로 볼일이 없어도 같이 갔다. 옛말에 “거름 지고 장에 간다"라는 말이 이 노인들에게 해당된다. 같이 다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장 구경도 하고, 읍내 다방에서 차도같이 사 먹고 오는 것이다.

평소에도 한집에 모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할머니들도 자연히 친하게 지낸다. 친척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친한 것이다. 아마 서로 속 깊은 이야기도 하고, 먹을 것도 나누어 먹는다. 자식들도 명절 때 오면, 상대 노인 집에 인사 간다.


담비 노인들은 노인정에 화투할 때도 구별된다.

만약 황 노인이 화투 패, 비를 먼저 먹었다. 그러면 김 노인이 비가 있으면, 별다른 패가 없으면 비를 낸다. 황 노인이 비 바 하라는 것이다. 말을 안 해도 알아서 두 담비 노인은 한 편이다. 그러면 그것을 역이용도 한다. 담비 한 노인이 무슨 패를 쓰면, 다른 노인이 그 패를 낼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면 그것을 알고 기다린다.

그러다가 화투판이 담비 노인들이 옆에 붙어서 칠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둘 노인들은 서로 패를 슬쩍 슬쩍 보여준다. 그렇게 노인정 화투판에서 담비 노인들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담비들이 합동으로 사냥하듯이 ....


몇 해 전에 황 노인이 일하다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쳤다.

한적한 시골에서 갑자기 도시 병원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다. 그 후 두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그 시기가 고추를 따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혼자 남은 할머니가 고추를 딸 수는 있어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때 김 노인이 자기 농사를 하면서, 황 노인네 고추도 실어다가 건조기에 넣어주었다. 그 외에도 무거운 것이나 힘든 것을 김 노인이 대신해서 그해 농사를 다 지었다. 그다음에 두 노인은 담비처럼 더 붙어 다녔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수였던 던바가 말한, “던바의 수”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는 5명이라고 했다. 인간의 두뇌 용량을 감안할 때 그 정도라고 한다. 가까운 관계는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다. 그 5명이 최대의 숫자라서, 다른 친한 친구 한 사람이 생기면, 이제까지 5명 중에서 한 사람이 멀어지는진다고 한다. 인간 두뇌 용량이 그 정도인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은 그 5명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친구 2명만 있어도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5명 중에 배우자나 가족도 포함되는 숫자이다. 실제로 마을 노인 중에 담비 노인처럼 1명이라도 친구가 있는 노인이 없다.


담비 노인은 늙어가면서 그렇게 친한 사람이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자연적으로 안 것이다. 두 노인은 본능적으로 안 것 같기도 하다.

외로움도 많이 덜어지고, 아픈 것도 공유하니 치유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마음도 자기 편이 있으니 든든할 것이다. 늙어가면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노인은 “던바의 수”를 알아서가 아니고, 살면서 이것이 좋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다.


두 사람이 친하다면, 보통 두 가지 관계이다.

첫 번째 경우는 두 사람이 좋은 관계를 이어가다, 갈등이 생기면 어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주장에 맞추어 주어서 갈등이 해결된다. 여기서는 보통 한 사람이 주도권을 갖고, 다른 사람은 맞추어 가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경우는 두 사람이 서로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관계이다. 이 경우도 갈등을 해결될 수 있지만, 늘 감정을 절제하고 조심해야 한다. 전자보다 많지 않을 것이다.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갈등을 잘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갈등은 복잡한 감정이므로 조절이 쉽지 않다.


담보 노인의 관계는 평소에 서로 호의로 생활하다, 의견이 서로 부딪치면 황 노인의 주장에 김 노인은 슬며시 동조하거나 침묵하는 관계이다. 물론 황 노인이 동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감정의 골이 잘 생기지 않는다. 한 사람은 고집이 세고, 다른 사람은 순종적이니까 친구로 지내는 것이다. 아마 두 노인은 늙어가면서 친구가 자기감정보다 더 좋다는 것을 느꼈고, 그렇게 오래 늘 같이 다니는 것이 혼자보다 편하다는 것도 알았다. 이제 같이 있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


그래도 가장 이상적인 것은 서로를 존경하고 배려하는 관계이다. 실제 친밀하게 지내면 상대의 아집이 보일 것이다. 서로 한두 번 배려는 보통 할 수 있다.

오랜 시간 배려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친구로 오래 지내려면 아집을 자주 보이지 않아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참고 인내해야 한다. 이러한 것을 상대방도 같이 해야 하니까 오래 좋은 친구로 지내기 힘들다. 결국은 친한 친구도 서로를 배려하고 참을 수 있는 시간만 가능한 것이다.


누구나 늙어가며 친한 친구를 찾으려고 한다. 친구 찾는 것이 인생 노년을 준비하는 것 중에 매우 중요한 일이다.

“던바의 수”처럼 5명이 아니더라도 2명이라도 있으면 인생이 재미난 것이다. 담비 노인들은 할머니를 포함해서 2명의 친구가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있는 사람의 삶이 외롭지 않고, 만족한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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