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영화 2
이상하게 나는, 영화에서 어떤 인물의 죽음을 누구보다 빠르게 감지한다.
분명 현주는 등장하는 순간부터 건강한 육체의 표상이었는데도 자영과 현주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부터, 아니 현주가 높은 곳에 혼자 앉아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을 때부터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남은 생이 그리 길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그리고 아마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히려 다른 서사를 바랐다. 남성과의 섹스 대신 자영과 현주가 서로의 몸을 탐하기를,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공허하다면 손가락으로 육체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라도 살아가기를, 차라리 서로를 어루만지기를. 둘은 서로의 '기'를 빨아먹고, 또 내어 주며 함께 달리지만 불행하게도 자영은 현주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듣지 못한다.
카페에서 우연히 목격한 일을 하던 현주의 표정에서, 또 이상하리만큼 허전했던 현주의 집에서 자영은 분명 현주의 우울을 목격했다. 그러나 자영은 육체적으로 그렇게 건강한 현주가 감히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고 상상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동경하는 '건강한 몸'을 가진 존재였기에 현주가 더욱 단단해 보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현주가 죽은 이후에야 자영은 현주가 쓴 소설을 읽는다. 같이 달리던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현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대신 글을 쓰는 사람이었으니, 그제야 자영은 현주의 육체가 아닌 '현주'를 본 셈이다.
그 이후로 자영은 현주처럼 행동한다. 현주가 했던 말을 그대로 옮기거나, 현주의 성적 판타지를 대신 실현한다. 자영은 꿈에서 이미 죽은 현주를 쓰다듬는다. 현주의 바디 프로필을 가져다 두고 자신의 몸과 비교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자영은 현주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현주의 자아를 뒤집어쓰고 살아간다.
그러나 자영은 나아간다.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그렇기에 유의미하다. 호텔에서 비싼 룸서비스를 시켜 먹으며 섹스를 하는 것은 자영이 말했던 '자신'의 성적 판타지다. 금기시되던 여성의 자위는 역설적으로 몸에 대한 완전한 긍정이기도 하다. 현주는 그렇게 살아나가기로 한다. 다른 몸을 쓰다듬는 대신 비로소 직면하고 긍정한 자신의 몸을 쓰다듬으면서. 그리고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달리면서. 선명해진 심장 박동과 거친 호흡으로 살아있음을 감각하면서.
시간을 들여 다듬어나간 육체는 자영의 생을 연장시켜줄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남은 것. 내가 내 몸에 아로새긴 자아. 달리기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다만 자영은 살아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