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울지 않았는데 어떤 아침은 간 밤에 펑펑 운것같다
이 폴더에 이런 글을 쓰는 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돌아가셨다.’
나는 죽음에 있어서 ‘죽었다’ 이외에 어떤 말도 쓰고 싶지 않다. 이를 테면 ’ 하늘나라‘ 같은 것들. 그래서 ‘돌아가셨다’ 다는 표현 역시 그리 달갑지 않다. 여러 의미로 죽음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겠지만 대체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인가.
나는 가족에게 말할 때 높임말을 쓰지 않는 편이다. 식사하셨어요? 어디 아프세요? 정도의 존대는 하지만 ‘진지 드셨어요?, 편찮으신가요? 이런 말이 어색하다.
나는 외가에서 제일 먼저 태어난 아이여서 오냐오냐 자라기도 했더니와 엄마가 상당히 젊은 나이에 나를 낳았다. 이모와 막내삼촌이 20대였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인 나에게 이모와 막내삼촌은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형제 같았다. 그래서 격의 없이 지냈다.
그런데 할머니한테는 왜 그랬지?
할머니를 형제처럼 느낀 적은 없었는데. 아무래도 엄마를 비롯한 이모 삼촌 역시 할머니에게 반말을 하는 가풍이 나에게도 이어진 것 같다. 그렇다고 막돼먹은 건 아니었다. 화기애애했고 지켜야 하는 선은 있었다. 물론 그 선을 지키는데 미숙한 나는 엄마의 손에 붙들린 채 방으로 자주 끌려갔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모 삼촌 할머니를 친구처럼 편하게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누군가와 친해지는 것에 있어서 나이를 그리 따지지 않는 것은 그때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분명히 영향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언젠가 높임말을 해보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거리감이 느껴지고 영 어색했다. 무엇보다 입에서 높임말을 머금다 보면 애교도 어리광도 유머도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할머니, 밥 먹었어? 할머니 많이 아파? 할머니 사랑해~ 나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돌아가셨다라고 하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