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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자 할머니

분명 울지 않았는데 어떤 아침은 간 밤에  펑펑 운 것 같다

by 망고빵 Jan 2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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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너무도 고왔다. 그리고 아주 편안해 보였다. 분홍색 립스틱이 발라진 채로 누워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생전에 본 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언제나 서 계셨다. 움직이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앉아 있다가도 일어나 뭔가를 내오고, 드시고, 먹으라고 권유하던 모습들.

할머니는 표정이 많았다. 소소하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치아가 다 보이게 환히 웃으셨고, 놀랄 때는 눈이 휘둥그레지셨다. 할머니 얼굴의 주름은 언제나 온화해서 찡그린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눈을 아주 무섭게 뜨셨지만, 누구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낸 적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본 할머니는 그랬다.

작아진 채로 누워 계신 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1년 동안 투병하시면서 몰라보게 왜소해지고 활기가 없어진 할머니는, 찡그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얼굴에서조차 고통과 인내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런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내 마음은 시시때때로 무거워졌다. 삶의 허무함, 건강의 의미, 생의 의지, 인간의 연약함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복잡하게 얽히곤 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았고, 그저 살아 있는 자들의 안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아픈 몸으로도 움직이셨다. 평생을 그렇게 움직이며 사셨다. 편히 누워 계신 적이 있었을까? 모두가 만류했어도 멈추지 않으셨다. 병원에서 온종일 누워 계시던 할머니는, 얼굴에 주름이 다 펴져 있었다. 햇빛을 많이 받지 못해 얼굴도 하얘져서 아기 같아 보였다.

나는 그저 할머니께 “고맙다,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나에게 원하셨던 것은 그저 내가 잘 지내고, 밥 잘 먹고, 신랑과 행복하게 살고, 엄마에게 잘하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다. 그저 내 목소리를 들려주고, 얼굴을 내비치고, 밥을 먹는 모습을 보시면 좋아하셨다.

나는 할머니께 고맙다. 너무 고마웠다. 이제는 볼 수 없지만, 할머니에게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잘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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