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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하늘나라

분명 울지 않았는데 어떤 아침은 간 밤에 펑펑 운 것 같다.

by 망고빵


할머니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내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분명했다. 좀 더 명확하게 하자면 죽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라고 하고 싶다.

생에 대한 의지가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더 이상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없는 시기가 왔고, 요양병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할머니의 올케가 병문안을 다녀갔다. 그녀는 힘없이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이제 편히 쉬라고, 편안한 마음으로 쉬시라고 말했다. 그녀가 떠난 후, 할머니는 매우 화를 냈다.


“나보고 죽으라는 거야? 쟤가 나한테 뭐라고 한 거니?”


결국 할머니는 호스피스 병동으로 가게 되었다. 코에 꽂힌 호스에서는 짙은 녹색과 검은색의 액체가 빠지고 있었다. 숙이 이모가 병실을 찾아왔다.

“다 나으시면 집에다 두부 많이 가져다 드릴게요”

“알았어, 많이 가져와. 여기에서(코줄) 나쁜 거 다 빠지고 나면 싹 나을 거야.”

할머니는 총기 있는 눈빛과는 달리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할머니 병실에 갔던 날, 액체를 받아내고 있는 주머니를 봤다. 그것은 딱 봐도 나쁜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라도 불길한 마음이 들까 봐 재빨리 눈을 돌렸지만, 눈길이 닿은 곳에는 피딱지가 앉은 할머니 왼쪽 볼, 퉁퉁 부은 손가락, 링거 주사 바늘이 꽂혀 있는 얇고 질긴 피부, 어디에도 시선을 두기 어려웠지만, 무언가에 집중하지 않으면 병실의 냄새를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내 몸의 감각을 차단하려 애쓰며, 오로지 눈으로 보이는 것과 나의 의식으로만 그 순간을 받아들이려 했다. 이 날이 마지막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할머니를 웃게 해 드려야지. 나는 할머니 앞에서 천지분간 못하는 철부지가 되어 재롱이라도 부리고 싶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새롭게 보였다. 병원에 계시는 동안 계속 누워 계셨던 탓인지, 얼굴의 주름이 펴진 듯했다. 할머니의 골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 꼭 아기 같았다. 주름지고 늘어진 피부결에서는 볼 수 없었던 할머니의 얼굴형은 모난데 없이 작고 동그란 모양이었다. 살이 빠지기 전에는 할머니가 넙적하게만 보였는데.

“할머니, 주름도 다 펴지고 아기처럼 예쁜데?”

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는 정말 그렇게 바라보았다. 있는 그대로. 엄마와 이모는 근심과 슬픔이 눈빛에 그대로 어려있었다. 그럼에도 꼼꼼하고 다정한 손길로 할머니 온몸을 보살폈다. 할머니의 눈꺼풀에는 수분이 거의 없어 눈을 뜨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위아래 눈꺼풀 사이에 낀 얇은 눈곱을 닦아주지 않으면 금세 말라 붙었다. 속눈썹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살, 꼼꼼히 닦아야 눈을 뜨고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해 혀까지 바싹 말라 있었다. 엄마와 이모는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편안하길 바라며, 물에 적신 손수건을 입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세심하게 신경 써 줄 수 있는 존재는 결국 딸들이었다. 엄마와 이모는 병실 도우미의 손길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할머니의 숨에서는 병자의 냄새가 났지만, 이상하게도 조금도 불쾌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아마도 나의 할머니이기 때문이겠지. 싶다가도 왜 괜찮은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았어.”

”나는 정신이 멀쩡해, 이제 몸만 나으면 돼 “

아마 할머니는 생의 감사를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와 이모 역시 몸만 나으면 된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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