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by 복희

같은 상황이라도 사람마다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똑같은 자극이 주어졌을 때 반응이 다르다면, 문제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


공항에서는 예기치 못한 일이 자주 발생한다. 갑작스러운 정비 문제로 비행기가 지연되거나, 시스템 오류로 수속이 진행되지 않거나, 기상 악화로 항공편이 취소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은 예고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현장 직원들도 당황스럽지만, 승객들에게는 더더욱 불편하고 기분 좋을 리 없는 일이다. 일정이 틀어지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때로는 금전적 손실까지 겪게 된다.


최근에는 도착지 기상 문제로 항공편이 3시간 이상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잦았다. 그날도 한 항공편이 5시간 이상 지연되면서 승객들에게 안내를 드렸는데, 대부분의 승객은 보상을 요구하거나 지연 자체에 대해 불만을 표현했다.


그날, 나는 ‘품격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 한 승객을 만났다.


그는 프랑스 국적의 비즈니스 클래스 승객으로, 영국에서 열리는 중요한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반드시 당일 출국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인천발 항공편이 지연되면서 경유지에서 영국행 항공편 탑승이 어려워졌고, 결국 우리 항공사가 아닌 다른 항공사로 재예약을 해야 했는데 문제는 다른 항공사 비즈니스 클래스가 이미 만석이어서, 비즈니스석을 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코노미석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보통이라면 승객들은 이렇게 말한다.


“Are you kidding me?”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늘 같다.
“내 잘못도 아닌데 왜 내가 손해를 봐야 하나. 나는 이코노미석으로 못 간다. 지금 당장 비즈니스석을 내놔라.”


이에 나는 이렇게 대응하게 된다.
“엄밀히 말하면 항공사 잘못이 아니라 기상 문제입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손해에 대해서는 고객센터에 직접 접수해 주셔야 합니다.”

결국 언쟁만 오가고, 새로운 해결책 없이 서로 기분만 상한 채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승객은 달랐다.

“지금 상황에서 제안해주신 방법이 최선인가요? 그렇다면 그렇게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아.. 저희가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늘 정말 수고가 많으십니다. 다른 항공편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잠시 말을 잃었다. 이후에도 티켓 재발행이 지연되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 승객은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 주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 승객만큼은 더 빠르고 완벽하게 처리하고 싶었고, 결국 처음 제안했던 것보다 더 빠른 항공편을 찾아 직접 카운터까지 안내해 드렸다. 승객이 요구하지도 않았던 요금 차액은 본사에 요청해 환불까지 진행했다.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그 승객이 보여준 ‘어나더 레벨의 품격’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날 내가 가장 마음을 쓰고 적극적으로 도운 승객은 2시간 넘게 불만을 쏟아낸 승객이 아니라 바로 그 프랑스 승객이었다.


그는 현재 상황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제시한 항공사 직원인 나를 믿고 존중해 주었다. 분명 속으로는 화가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요인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거기에서 바로 그 승객의 품격이 나온게 아닐까 싶다.


돌이켜 보면, 그는 처음 카운터에 왔을 때 지었던 미소 그대로, 조금의 불편한 기색도 없이 카운터를 떠났다. 결국 나의 품격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나라는 항아리 안에는 매일 수많은 상황들이 들어온다. 어떤 것은 나를 화나게 하고, 어떤 것은 지치게 만들지만, 그것을 있는 그대로 화로 쏟아내는지, 아니면 내가 스스로 해석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내는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 있다. 결국 내 마음을 지키는 것도, 나를 무너뜨리는 것도 나 자신이다. 그래서 누구 탓을 할 이유도, 원망할 이유도 없다.


공항에서 일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 속에서 수많은 승객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반면교사가 되고, 또 어떤 이는 소중한 깨달음을 준다. 그날 내게 큰 가르침을 준 승객에게, 비록 직접 전하지 못했지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메르시 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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