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ngmin Park Mar 25. 2016

글을 쓰는 시간

순간의 나를 박제하는 법

글을 쓰는 것이 좋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자주 썼다. 야간 자율학습 중간 쉬는 시간에 우리는 아무한테 들키지 않게 쪽지를 주고받았다. 지금 보면 유치한 내용이 가득한 쪽지가 그때는 세계의 전부였다. 집에 돌아오면 쪽지를 반듯하게 펴 파란 상자 안에 차곡차곡 모았다. 3년이 지나자 상자 안에는 꼬깃꼬깃 접은 쪽지가 머리를 드러낼 정도로 수북이 쌓였다.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그때의 냄새와 불빛들만 남았고 문장들은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되었다. 그때부터 글이 싫었다.


답답한 교실을 벗어나고 싶어 미술을 선택했지만 세계는 이미지의 형태보다 단어와 문장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고 묵묵히 대학을 가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게서 글은 점점 멀어졌다. 


겨울을 지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자리는 난잡하고 불편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이 어색했던 나는 밖으로 나와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다녔다. 그곳에서 어떤 사람을 보았고 영원히 종속되었다. 그 사람은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아 문자로 학교에 대해 알려주었다. 날이 갈수록 매일 보고 싶었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나를 지나 바닥에 떨어졌고 내 속은 텅 비었다. 돌아오는 길에 새까만 하늘을 보다가 그 순간의 느낌들이 흩어지려 할 때 나는 편지를 썼다. 그렇게 다시 글에게 다가갔다.


지금도 누군가 숟가락으로 내 심장을 파먹는 것 같은 날이면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쓴다. 보여주기 위한 멋들어진 글이 되지 않게 조심하면서, 내가 온전히 문장 안에 담길 수 있게 애를 쓴다. 어리고 철없고 우울하다는 조롱을 받을까 봐 두렵지만 내가 정말 살아있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 한다.


천 번째 밤이다.

살아있지도 않은 밤을 지난다. 지독한 기침을 하며 한 번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선언을 한 순간 움직일 수 없다. 빛처럼 쪼개진 길 위를 걷는 다른 나를 본다. 낮과 밤을 지나 수십 개의 내가 수천 개의 내가 되고 더 이상 셀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다시 걸을 수 있다.

산책의 끝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절벽에서 막힌다. 발아래로 바람 소리가 들릴 때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수많은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 어깨에 메고 있던 찢어진 자루 틈새로 눈물이 쏟아진다. 아직 심장을 충분히 뱉어내지 못했다. 삼키지 못해 새어나온 까만 문장들이 나를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불행으로 만들 것이다. 기억 속에 박힌 동정 어린 눈빛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물이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찾아 절룩거릴 때, 오는 길에 내가 버린 것들을 모아 손에 쥐어주고 그만 멈춰도 된다고... 함께 쉬다 잠이 들어도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을 대답 없이 쳐다본다. 사랑을 말하기 위해 노력한 적 없는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어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터질 것 같은 마음으로 숨을 참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